발제문 요약
성장만으론 행복 못늘려…분배로 ‘행복역설’ 넘어야
정의는 철학자들도 선뜻 나서기 꺼리는, 무겁고 골치 아픈 주제다. 그런 묵직한 주제를 다룬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사실에 우리 학계가 적잖게 충격받고 있다. 수많은 학회들이 정의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놀랍게도, 전통적으로 정의의 문제를 외면해온 경제학계까지 정의 논쟁에 가담하는 양상이다.
정의란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낳는 사회적 갈등을 원만하게 해소하기 위한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브라이언 배리는 정의의 개념을 ‘상호이익’으로서의 정의와 ‘불편부당’으로서의 정의로 구분한다. 상호이익으로서의 정의는 이해당사자 모두를 이롭게 함으로써 갈등을 푸는 것이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시장이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시장은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자발적인 합의를 이뤄내는 제도적 장치이므로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과 소득분배는 공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경쟁시장에서 결정된 소득분배는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게 된다. 그러나 정의는 그 이상이다.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합의라도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역시 중요하다. 당사자들이 정말 대등한 입장에서 거래하고 합의하였는가 짚어봐야 한다. 시장은 공정하지 않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시장 거래가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환경문제는 시장에서 수많은 자발적 합의가 누적되면서 나타난 사회적 폐해다. 정의가 권위와 힘을 갖고 사회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모든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곧 불편부당으로서의 정의다. 존 롤스의 <정의론>에 따르면, 정의는 바람직한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기 위한 기본원칙에 관한 것이다.
소득분배에서 흔히 거론되는 정의의 원칙은 “각자에게 정당한 몫을 준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생산에 기여한 정도’가 곧 각자의 정당한 몫이며, 이 원리에 힘입어 경제가 성장하고 그 결과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득수준이 높아지는데도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관찰된다. 이른바 ‘행복의 역설’이다. 영국 런던정경대의 리처드 레이어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그다음부터는 소득수준의 향상만으로 국민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는 건 매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 ‘수준’은 대략 2만달러 정도로 알려진다. 소득과 행복이 따로 움직이는 이 ‘결별점’을 지나면 경제성장의 약발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경제성장의 효용을 오히려 체감하게 된다는 얘기다.
한국도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 진입하면서 ‘경제성장 효용체감’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행복의 역설이 작동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제 가난한 사람의 소득을 확 늘려줄 때만 국민이 누리는 행복의 ‘총량’도 증가한다. 이것이 ‘정의’이다. 소득재분배와 복지국가 건설은 이렇게 정의와 만나게 된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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