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증시 `스위퍼`에서 `리베로`로 변신
누적 순매수 1조..수급 공백 메워
연기금 주식 비중 점진적으로 확대 될 것
입력시간 :2010.07.04 10:00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연기금이 변했다. 미드필드 넘기를 두려워하던 소심한 모습은 간데 없고, 주식시장의 `리베로(공격형 수비수)`로 맹활약 중이다.
지난달부터 2일까지 11일째 `사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순매수 누적 금액은 1조원이 넘었다.
특히 연기금의 대표 주자인 국민연금의 경우 공격적으로 주식 투자 비율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어 연기금의 투자 확대가 장마처럼 지루한 장세에 활력소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구원 투수`의 변신..공격적인 매수세 연기금은 주식투자 비중 유지를 위해 시장 급락시에 저가 매수세를 확대하다보니 `하락장의 구원 투수`라고 불린다.
그러나 최근 연기금의 행보가 달라졌다. 지수가 박스권 상단을 맴돌며 추가 상승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하는 가운데 닷새 연속 일 평균 1500억원 이상의 매수세를 지속하기도 했다.
연기금의 이러한 적극적인 매수세는 국민 연금의 자산 배분 전략의 변화와 국내 증시의 밸류에이션 매력이 겹쳐지면서 나온 결과로 분석된다.
현재 국내증시는 단순히 지수 레벨 측면에서는 박스권 상단에 위치해 있지만 주가수익비율(PER)측면에서는 하단부에 있기 때문이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경험적으로 연기금의 투자 자산 비중은 가계 자산의 비율과 비슷하게 맞춰가는 경향이 있다"며 "가계 자산 중 주식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만큼 연기금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연기금 매수 여력 아직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연기금의 매수세가 좀 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치환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민연금이 발표한 중장기 목표와 과거 투자 내역을 살펴보면 앞으로도 국내 시장에서 매수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과거 금리가 하락하는 시기에 연기금 매수세가 두드러졌다"며 "최근의 저금리 환경에서는 연기금 매수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경우 주식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투자 자금의 규모 자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하영 국민연금공단 차장은 "포트폴리오에서 채권의 비중이 높은데 요즘 채권 수익률이 3~4% 정도"라며 "올해 기대 수익률인 6.3%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식과 대체 투자의 비중을 일정 부분 늘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차장은 "올해 운용 자금이 290조원인데 내년에는 336조원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같은 연기금의 주식 투자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국민 연금이 주식의 비중을 늘릴 수 밖에 없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점진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며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 사실상 통제 밖에 있는 국민 연금 관리 공단의 자금 집행 시스템을 보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의사 결정 구조에서는 주식의 매매 시기나 종목 선택의 권한이 모두 기금 운영본부에 일임돼 있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버핏식 투자`로 고수익 노린다그렇다면 수급 주체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기금은 어떤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일까.
김세중 팀장은 "연기금은 장기적인 투자자이기 때문에 모멘텀 플레이 경향을 띠는 외국인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연기금은 평소 안정적이면서도 우량한 대형주를 주시하다 상대적으로 주가가 떨어지거나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아졌을 때 매수에 나선다.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워렌 버핏이 강조하는 `가치 투자`전략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는 최근 두 달간 연기금 매수세가 이어졌던 기간 동안의 순매수 상위 종목을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IT 대표주들 및 포스코와 KT 등 대형 경기 방어주들이 공통적으로 눈에 띈다.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 관계자는 "국민 연금은 우량주, 대형주 중에서 저평가 주식들을 우선적으로 매수 한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주식들은 언젠가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는 때가 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