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공연구소 Public Policy Institute for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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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작은책: 공기업 민영화와 공기업 노동조합
번호 20 분류   조회/추천 1501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09년 09월 02일 10시 34분 43초

공기업 민영화와 공기업 노동조합

 

작은책 2009년 7월호

오 건 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이 우리사회 곳곳을 헤집어 놓고 있다. 하는 일마다 국민들의 속을 썩인다. 이러다간 이 정부가 오래가지 못할 거란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런데 간혹 이 사람들이 ‘참 치밀하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다. 공기업 민영화에서 그렇다.

 

내가 일하는 연구소는 이름이 말해주듯 사회공공성을 제대로 세워보고자 노력하는 곳이다.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큰 마음 먹고 작년에 우리 연구소를 만들었다. 당연히 연구소에 주어진 임무 중 하나가 이명박정부의 공기업 선진화에 맞서는 일이다. 그런데 썩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 좀 부끄럽지만 현실이 그렇다.

 

다른 나라를 보더라도 공기업 개혁에선 보수세력들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종주국 영국에서 대처 수상이 집권하며 부르짖은 것도 공기업 개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대정권들이 자신의 개혁성을 과시하기 위해 이 카드를 사용해 왔다. 그만큼 공기업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해 온 탓이다.

 

이명박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기업 개혁에 대한 야심찬 계획을 준비했다. 국민들이 못마땅해하는 공기업을 강하게 때릴수록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당선 이후 청와대가 주도하여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300개가 넘는 공공기관을 구조조정하고 그 중 50~60개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큰 작품이었다. 국민의 지지도 얻고 감세에 따른 재정 부족도 메울 수 있어 일석이조이고, 여기에 공기업노조들이 파업까지 해주면 국민을 볼모로 삼는 이기주의적 행동이라 몰아세우며 노사관계까지 평정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 작품을 공개할 디데이는 집권 백 일이 되는 작년 6월초로 정해졌다. 이를 위해 미리 공기업 임원들을 자신의 사람들로 갈아치우고, 강도 높은 감사원 감사를 벌여 분위기를 띄워 갔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복병이 나타났다. 5월부터 촛불이 커진 것이다. 촛불은 의료, 물 등 공공서비스 민영화에 대한 비판으로 번져갔다. 시민들은 물었다. 정말 공기업이 민영화되면 경쟁을 통해 좋은 서비스가 제공될까? 사기업들이 벌이는 경쟁은 ‘이윤’을 향한 다툼이 아닌가? 의료 민영화? 영화 식코에서 본 미국에 비하면 그나마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훨씬 낫지 않은가? 물? 비록 수돗물 질은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요금은 저렴한 편인데, 기업 이익을 위해선 요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물이 민영화된 많은 다른 나라들처럼 말이다.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한국전쟁 이후 시장이데올로기가 지배해온 우리사회에서 이는 ‘사건’이다. 결국 이명박정부는 눈물을 머금고 작전을 수정해야 했다. 일방통행 이명박정부에서 보기드문 일이다. 내가 이 사람들이 공기업 정책에서는 치밀하다고 평가하는 이유이다. 몇 가지를 보자.

 

첫째, 정부는 공기업 개혁의 상표를 민영화에서 선진화로 바꾸었다. 민영화는 관료의 손에 있던 공공부문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그래서 정부는 ‘민영화’를 선호하고 비판자들은 공공시설을 사기업에 넘긴다는 의미에서 이를 ‘사유화’로 불러 왔다. 그런데 근래 영국철도, 캘리포니아전력, 중남미 상수도, 미국 의료 등 외국의 민영화 실패 사례들이 알려지고, 우리나라에서도 의료, 물까지 파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생겨나면서 민영화 용어에도 부정적 의미가 담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명박정부는 용어를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선진화’ 그럴듯하지 않은가? 물론 알맹이는 그대로다.

 

둘째, 공기업 민영화를 한번에 단행하려던 것을 단계적 추진으로 바꾸었다. 민영화를 종합상품으로 쏟아내며 자신의 개혁성을 뽐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한판에 밀어 붙이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걱정이 생긴 것이다. 지금까지 공기업 선진화는 6차례로 나누어 발표되었고, 앞으로도 더 남아 있다. 공공부문을 사기업에게 팔아 넘긴다는 이미지를 남기지 않으면서 큰 소리없이 추진되고 있다. 정치적 상징성은 약해졌으나 실리를 얻어가겠다는 셈법이다.

 

셋째, 자신에게 유리한 물건을 먼저 내놓고 있다. 의료, 물과 같이 서민과 친숙한 공공서비스는 뒤로 미루어 놓았다. 청와대 뒷산에 홀로 앉아 촛불집회를 바라보며 심기일전한 대통령은 의료, 물, 가스, 전기 등 국민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서민, 중소기업에게 원성을 듣는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민영화,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통합 등을 앞으로 배치했다. 공기업 민영화의 선봉장이었던 대처수상도 국민들의 원성이 높았던 순서대로 민영화 대상을 정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렇게 이명박정부는 치밀해졌다. 그리고 1년 동안 조금씩 자신의 본색을 구현하고 있다. 의료민영화는 지난해 제주도 영리법인이 주민투표로 거부당했음에도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영리법인화 재추진, 의료채권 허용 등 여러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물 민영화는 지자체별로 수자원공사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진행되고 있다. 전기의 경우 한국전력공사, 발전회사 대신 한국전력기술, 한국난방공사 등 핵심 관련기업들을 먼저 매각할 예정이고, 가스산업도 가스공사를 손대지 않는 대신 재벌대기업에게 가스 도입권을 허용하는 우회 민영화방식을 채택했다. 한국철도는 내년까지 영업적자를 절반으로 줄이지 않으면 민영화가 검토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철도의 적자가 대부분 선로건설비, 지방노선 운행, 취약계층 요금 할인 등 사회적 이유에서 발생한 것이고 내년까지 경영이 개선될 여지도 없는 걸 너무 잘 아는 정부가 내린 민영화 예고장이다.

 

다시 내 일터 이야기로 돌아오자. 예전에 비해선 상황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민영화에 맞서는 게 버겁다. 아직도 시장이데올로기가 만만치 않고 이명박정부도 교묘해졌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공서비스를 누려야할 시민들이 공기업 민영화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지만 동시에 공기업 노동조합, 공공부문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썩 내켜하지 않는다. 공기업이 시민들과 함께 해오지 못한 것에 노동조합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서민들이 대출을 받지 못해 아우성칠 때, 해당노동조합이 이들을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었는가? 어려운 사람들이 의지하는 곳이 공공임대주택인데, 해당노동조합은 공공주거운동에 얼마나 관심을 가져 왔는가? 노동조합들이 전력민영화, 가스민영화가 불거질 때면 큰 목소리를 내지만 도시가스 미보급지역, 에너지빈곤계층을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무상의료를 외치지만 정말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위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활동했는가?

 

공기업 민영화는 지금도 성큼성큼 밀려오고 있다. 비록 방향은 다르지만 이 엉성한 정부도 촛불을 경험하며 자신을 챙겨 가는데, 우리는 자신에게 향한 비판에 대답하기 위하여 얼마나 힘을 쏟아 왔을까?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자와 싸우려는 사람치곤 안이하지 않았는가? 이명박의 역주행을 보며 내가 일하는 곳을 곰곰이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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