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한 22일 한미 FTA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전문가들이 한미 FTA가 미칠 악영향을 조목조목 경고했다.
22일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연 '치명적 독, 한미 FTA 비상 국민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한미 FTA는 심각하게 잘못된 협상"이라고 규정하고 "한미 FTA의 경제효과는 설사 있다 해도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12월 정부의 재협상에 따라 "한미 FTA는 더욱 더 잘못된 협상"이 됐다며 "대미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불안하게 만들고, 이는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식 경제시스템 도입으로 인해 한미 FTA 발효 시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적 불안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이 교수는 특히 "'복지국가' 시대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 이어 각 분야별 토론자로 나선 이들은 △정부재정 △공공부문 민영화 △농업 △문화ㆍ예술 △건강ㆍ보건 △부동산 △입법ㆍ사법 △인터넷 △쇠고기 등에 미칠 한미 FTA의 악영향을 강조했다. 분야별로 토론자들의 주장을 정리했다.
공공요금 인상 불가피정부는 "한미 FTA가 체결되더라도 공기업 민영화 관련 권한은 정부가 지닌다"며 "가스, 전력, 상수도 등 공공분야는 개방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그러나 "이미 1998년 한미투자협정 때부터 공공부문은 정부 스스로 적극적으로 문호를 연 '자발적' 개발 대상이지, 협상에서 지켜낸 대상이 아니"라며 "전력, 가스, 수도, 철도 등은 기 개방 대상이기도 하며, 나아가 한미 FTA 협정에 따라 단계적ㆍ부분적 개방의 수순을 밟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전력산업의 경우 정부 민영화 정책에 따라 발전부문은 분할ㆍ경쟁 체제로 돌입한 지 오래다. 이에 따라 발전 설비의 15% 이상이 국내외 자본에 개방돼 있다. 송 연구위원은 "특히 발전의 화력 부문 5개사는 경쟁력 제고 명목으로 언제든 매각 추진이 가능하다"며 "한미 FTA 협상에 따라 (전력) 판매 부문의 50%는 외국인 지분 소유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가스산업은 경쟁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스산업 선진화 법안'이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이미 도시가스 산업은 SK와 GS가 과점하고 있다. 송 연구위원은 "이 상황에서 도매ㆍ도입 분야를 개방하게 되면 특히 도입 분야에 외국 자본의 개입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가스산업 도입ㆍ도매 부문 요금규제 완화는 겨울철 도시가스 요금 폭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민간 부문에 대한 정부 규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상수도 사업은 2001년 수도법 개정으로 민영화 정책이 시작됐으며, 2006년 이후 수도사업구조개편로드맵, 물산업 육성 5개년 계획 등에 따라 물 시장 개방, 물 상품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미 FTA의 미래유보 분야를 보면 '음용수 처리ㆍ공급서비스'에 대한 국가의 권한 채택이 가능하다. 그러나 "상기 서비스에 대하여 사적공급을 허용하고 있는 경우 민간 당사자 간 계약에 의하여 공급되는 해당 서비스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
송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현재 수도사업에서 하수도는 사적공급이 광범위하게 이뤄져 있고, 상수도는 공사화 형태를 통한 민간 개방이 정부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결국 향후 제한조치가 없다면 수도 서비스에 대한 제한 조치는 무력화된다"고 지적했다.
또 전력과 가스, 철도, 수도 등에 정부는 외국인 지분제한 조건을 걸어 두었지만, 이는 투자자-국가 중재권(ISD) 제도에 따라 제소거리가 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1998년 외환위기 이래 역대 정부에서 줄곧 진행된 공기업 민영화는 현 정부 들어 공기업 선진화 방안으로 재포장돼 진행 중이며, 이는 한미 FTA 발효에 따라 '되돌릴 수 없는' 민영화의 길로 접어든다는 게 송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쌀 시장도 열린다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정부가 쌀 이외의 4개 품목(식용감자, 식용대두, 천연꿀, 분유)에 대해 현행관세를 유지했다고 강조했으나 "'무관세쿼터'를 허용해 사실상 관세철폐 효과가 발생한다"며 한미 FTA 발효에 따라 "향후 애그플레이션 사태가 닥쳐올 경우 식량주권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 부소장은 또 "한미 FTA의 관세철폐 규모가 과거 어떤 FTA보다 더 크다"며 "이에 따른 농가 피해규모도 정부가 축소 발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농업 보호장치로 도입했다는 세이프가드에 대해선 실효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장 부소장은 "한미 FTA 협정상 세이프가드는 관세철폐기간이 종료되면 발동할 수 없거나, 불과 2~3년 더 지속될 뿐"이라며 "그나마도 농산물 세이프가드 조치가 가능한 품목은 30개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 역시 현실적으로 발동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쇠고기 분야 세이프가드 발동을 위해서는 FTA 발효 15년 차에는 쇠고기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수입물량이 36만 톤을 넘어야만 발동 가능토록 했다. 장 부소장은 "우리나라 국민의 연평균 전체 쇠고기 소비량이 35만8000톤"이라고 지적했다.
돼지고기는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수입한 물량이 7500여 톤인데, 1차 연도에도 8250톤 이상 수입해야만 세이프가드 발동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평균 8톤 정도를 수입한 고추는 한미 FTA 발효 첫 해에 수입물량의 100배 이상인 827톤을 넘어야만 발동 가능하다.
장 부소장은 "종래 정부가 발표한 22조 원 규모의 농어업피해보전대책은 기만적"이라며 "특히 독소조항에 따라 농가를 지원하려 해도 ISD, 비위반제소 등에 따라 효과적인 지원이 어려워진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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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최형락) |
'일자리 35만개'는 어디서 나왔나그간 정부가 한미 FTA 발효 효과로 가장 강력히 강조해 온 게 한미 FTA 발효 시 국내총생산(GDP)이 5.97% 증가하고 일자리 35만 개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전망치는 KIEP가 계산한 연산균형모델(GCE) 결과를 바탕으로 나왔다. 그러나 신범철 경기대 교수는 계산 자체가 잘못 돼, 모든 결과가 허구로 채워졌다고 비판했다. CGE모델은 현재 경제가 균형이 잡혀있다고 가정한 후, 한미 FTA와 같은 외부충격을 가해 이에 따른 2차 균형 상태를 추정하는 모델이다.
신 교수는 "이른바 '생산성 증대'를 고려해 CGE 모형을 경제성장 예측치로 활용한 것은 CGE 모형을 완전히 오용한 것"이라며 오히려 "지난해 기준 재정추계 결과를 따 CGE 모형을 계산하면 모든 모형에서 한미 FTA 발효 후 세수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당시 KIEP는 CGE 연산결과 최초 한미 FTA 발효 후 GDP 0.3%포인트가 추가로 늘어나는 수준에서 균형이 이뤄진다고 예측한 후, 이에 따라 국내 모든 산업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가정을 더해 이른바 '생산성 증대효과를 고려한 장기모형'으로 새로운 균형이 만들어지며 이 지점의 GDP 성장수준은 5.97%포인트라고 보고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정태인 새사연 원장은 "CGE 모형에 따른 계산 결과가 적게 나오니,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국민을 설득하기 어려우니 다시 계산해 오라'고 해 KIEP가 한미 FTA로 모든 산업이 성장한다는 가정을 집어넣어 CGE 모형을 한 차례 더 돌려 5.97%포인트라는 결과를 뽑아냈다"며 "이 결과를 바탕으로 일자리 35만개 신화가 나왔다. 이런 식으로 CGE 모형을 사용한 사례는 전례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KIEP가 한미 FTA 발효에 따라 경제가 거의 성장하지 않는다는 연구보고서를 내놨으나, 정부가 이를 발표하지 않은 것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이해영 교수와 국제통상연구소가 지난해 경제통계를 사용해 CGE모델을 적용한 결과, 한미 FTA 발효에 따른 향후 10년간 GDP 성장률 효과는 연평균 0.08%포인트에 불과했다.
신 교수는 나아가 정부가 CGE 모델에 한미 FTA 발효로 인해 10년간 연평균 2조2000억 원의 세수가 관세철폐 효과로 감소하고, 생산성 제고 효과로 연평균 8조5000억 원의 세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가정을 사용했으나, 이마저도 통계조작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우선 정부가 정확한 산식을 제시하지 않아, 연평균 8조5000억 원의 조세수입 값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FTA에 의한 세수 증가액은 복리식으로 계산한 반면, 관세수입 철폐에 따른 세수감소분은 단순 계산으로 산출했다"고 비판했다.
세수증가액은 과장하고, 세수감소분은 축소하는,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꼼수'를 썼다는 얘기다.
그는 "정부가 예상한 GDP증가율 5.97%포인트를 적용한다손 치더라도 조세수입은 정부 예상과 달리 매년 9000억 원이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문화다양성협약 무너져한국은 지난해 국회의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으로 세계 110번째 문화다양성협약 비준국가가 됐다. 이 협약 제20조 1항은 "당사국은 이 협약을 다른 어떤 조약에도 종속시키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당사국인 다른 조약들을 해석, 적용하거나 다른 국제적인 의무를 부담할 때 이 협약의 관련 규정들을 고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화다양성협약은 문화가 일반상품과 똑같은 기준으로 취급돼 이윤창출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되고, 문화생태계 복원, 문화 본연의 가치 회복 등을 강조한 협약이다. 특히 문화의 특수성을 인정하자는 대표적 국제 협약이다.
양기환 문화다양성포럼 상임이사는 그러나 "한미 FTA 협정문이 완벽히 문화다양성협약을 한미 FTA 체제에 종속"시킨다며 그 사례로 "문화다양성협약이 유네스코에서 채택된 다음 해 정부는 한미 FTA 4대 선결조건의 하나로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했고, 이후 한미 FTA 협상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고 비판했다.
한미 FTA 발효로 인해 영화, 방송, 음악 등 모든 한국 문화가 자유롭게 거래되는 상품이 돼, 결과적으로 한국 문화의 특수성이 무너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양 상임이사는 이로 인해 "미국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국내 콘텐츠 제작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라며 "특히 협정 발효시점부터 3년 유예기간을 거쳐 외국인에게 종합편성ㆍ보도전문ㆍ홈쇼핑 채널을 제외한 일반채널에 대해 간접투자가 100%까지 허용된다"고 우려했다.
양 상임이사는 또 "한미 FTA 발효로 문화산업에 대한 적절한 보호조치(시장진입금지)가 제한받아, 미래의 황금시장을 통째로 미국에 넘겨줄 수 있다"며 "주권국의 문화정책 자주권을 포기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