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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경향: 세금을 내자
번호 529 분류   뉴스 조회/추천 1294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1년 10월 18일 17시 31분 51초
[창간 65주년 특집]8대 제안 ⑧ 세금을 내자

여기 ‘상식’을 벗어난 통계가 있다. 변호사·회계사·세무사·변리사·관세사·건축사·법무사·평가사 등 8대 전문직 사업자 100명 중 15명은 지난해 월 평균 매출이 200만원도 되지 않았다. 임대료,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이들의 수입은 지난해 4인가족 기준 한달 최저생계비인 136만원에도 못 미치는 극빈층 수준이다. 전문직 중 변리사가 가장 돈을 많이 번 것으로 조사됐는데, 변리사 ㄱ씨는 “우리는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일을 하니까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는데 다른 데는 현금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데’는 의도적으로 소득이나 이익을 누락(탈루)시켰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2009년 국세청이 8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중 세금 탈루 의혹자들을 기획 세무조사했더니 소득 탈루율이 37.5%였다.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더하다. 2005년부터 10차례에 걸친 세무조사 결과 평균 소득 탈루율은 48%였다. 최근에는 연예인 강호동·인순이·김아중씨가 탈세로 거액의 추징금을 냈다. ‘선박왕’으로 불리던 권혁 시도상선 회장은 수천억원대의 탈세·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세금 회피’는 고소득자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이 소득세를 내지 않아 국세청이 받을 수 없다고 보고 결손처리한 금액은 월급 생활자의 40배에 달했다. 원가를 부풀리고, 바지사장을 내세워 개·폐업을 반복하고 차명계좌까지 쓰는 등 탈세도 만연하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것은 사실상 탈루에 속한다. 일반 국민들의 조세저항도 낮지 않다. 과세대상이 극소수 부유층인 종합부동산세를 ‘세금폭탄’이라고 규정한 것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 좋은 예다. 작은 상점에서는 일부러 현금을 내는 소비자들도 있다. 사실상 탈루 방조에 다름 아니다. ‘가렴주구(苛斂誅求)’가 횡행하던 시절에 나온 “세금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속담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조세박물관에 1980년대 세금 항목을 분류할 때 사용하던 고무도장이 전시돼 있다. 현재 국세는 직접세 5개 항목, 간접세 8개 항목, 관세 등 14개 세목으로 구성돼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한국의 세금은 외국에 비해 낮다. 국내총생산에 대한 조세 총액의 비율인 조세부담률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2009년 현재 조세부담률은 19.7%,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08년 기준)은 25.8%다. 복지제도가 발달한 덴마크는 47.2%, 스웨덴은 34.8%에 이른다. 조세부담률에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까지 합친 국민부담률은 더 차이가 난다. 사회공공연구소는 국민들이 소득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을 국제 평균치만큼만 낸다면 100조원의 복지재정이 확보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금 납부 기피풍조는 상당 부분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 부족에서 비롯된다. 월급이 300만원밖에 안되는 사람이 세금을 몇십만원 냈는데, 연봉 2억~3억원 하는 사람이 1만원밖에 안 냈다면 세금을 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공평하게 내고, 낸 만큼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금을 낼 때는 내 것을 빼앗기는 것이라는 생각부터 하고 세금 내지 않는 것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세금 내지 않는 것을 정당화할 이유를 국민들이 갖고 있는 한 세금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지금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국가로부터 응당 받아야 할 것들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경제규모는 세계 11~13위권이지만 높은 교육비, 평생을 벌어도 감당할 수 없는 거주 비용, 불투명한 노후에 대한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지난 10월 ‘보건복지정책 국민의식조사 결과 분석’을 보면 우리 경제수준과 복지수준을 비교하는 질문에 응답자의 37.5%는 ‘낮다’, 또는 ‘매우 낮다’고 답했다. ‘보통’이 49.9%, ‘높다’는 대답은 12.6%에 불과했다.

반면 세금을 늘려 복지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물음에 동의하는 의견은 29.1%에 그쳤다. 복지확대에 세금 확충은 필수요건이다. 세입을 늘리지 않으면 복지 강화는커녕 무슨 방도를 써도 재정파탄의 길에 가까워질 따름이다. 올해 초 한 포털사이트가 설문조사를 했다. 이민이 가능하다면 우리나라를 떠나겠느냐는 질문에 80% 가까이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미흡한 복지정책’이 1위였다. 세금은 내려 하지 않으면서 복지 수요는 높은 이중성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세금을 내는 만큼 내 삶에 튼튼한 울타리가 쳐질 수 있다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에 안전망이 갖춰지면 높은 등록금, 실업 같은 문제로 개인이 홀로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개인의 부족한 소득으로만 버티지 않아도 된다.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국가가 삶을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재원은 물론 내가 낸 세금이다. 세금에 대한 새로운 계약이 필요한 이유다.

여기저기 세금을 깎아주지만 더 받을 데서 더 받아오지 못하는 이 현실을 극복하려면 우선 새는 세금부터 막아야 한다. 새는 곳을 막으면 그만큼 더 내는 효과가 있다. 탈세, 탈루뿐만이 아니다. ‘너무’ 깎아주고 있는 세금 감면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 연구개발(R&D)·고용창출 투자세액 공제 등은 투자여력이 있는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된다. 전체 대상 기업의 0.0013%에 불과한 169개 대기업이 누리는 법인세 감면 혜택이 전체의 54%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정 계층에 부담을 몰아 지우자는 얘기는 아니다. 버는 만큼 공평하게 내면 된다. 더 버는 사람은 더 내면 될 것이다. 지금은 상위계층의 부담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가볍다. 대표적인 직접세인 소득세의 법정 최고세율은 1990년대 40%에서 2010년 현재 38.5%로 내려왔다. 스웨덴은 2009년 기준 56.5%, 일본이 50%, 미국도 41.9%다. 최근 외국에서는 ‘버핏세’로 대표되는 부유층의 증세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미국에 이어 프랑스·독일·영국·벨기에 등 유럽과 호주에서도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상위계층일수록 세금 감면액도 매우 커진다. 1년에 2000만원을 못버는 사람의 총감면액은 1인당 30만원이지만 1억원 넘게 버는 사람은 770만원을 감면받는다. 고소득자, 자영업자는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부자에게는 세금을 깎아주다보니 형평성을 위해 근로소득자들에게 광범위한 면세, 세금감면 혜택을 준다. 결국 나라 금고는 비고 복지를 위한 돈은 줄어든다. 국민의 삶이 더 힘들어지면 세수는 그만큼 줄어든다. 악순환이다.

더 낸 세금은 우리 가족과 이웃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데 쓰인다. 낸 세금을 돌려받는 선순환은 우리 사회에서도 가능하다. 물론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는 국민이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세금을 내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김다슬 기자 amorfa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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