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다소 '뜨악'한 말을 했다.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에 들어가고 있다." 22일 청와대에서 보건복지부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길거리에서 지나는 시민 붙잡고 '대한민국이 복지국가인가' 질문 던지면...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새해 업무보고에서 "내년 복지 예산은 역대 최대"라며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에 들어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청와대
지금 당장 길거리로 나가 넥타이를 맨 직장인에게, 취업 준비를 하는 대학생에게, 아이를 키우는 주부에게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렇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직접 해보지 않아 모르긴 몰라도, 장담컨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국은 복지국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답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한국이 복지국가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국민의 체감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인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무슨 근거로 이런 생뚱맞은 인식을 하는 것일까? 대통령이 빈소리를 하지는 않을테니, 뭔가 근거는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예산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부의 복지 예산은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내년 복지 예산은 역대 최대"라고 말했다. 역대 최대의 복지예산 규모를 근거로 한국이 복지국가의 문턱을 넘어섰다고 말한 것이다.
복지예산이 역대 최대라는 이 대통령의 말은 맞다. 그러나 언제 짤릴지 모를 불안감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에게, 아이 키우는 게 전쟁인 직장맘들에게 대한민국은 복지국가라고 할 수 없다. 역대 최대의 예산인데도 복지 혜택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복지예산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가만 있어도 매년 최고기록 갱신하는 복지예산이 대통령의 복지예산 역대 최대 발언부터 시작해 그 비밀을 풀어보자. 2011년 복지예산의 총 규모는 86조3천억 원이다. 정부 총지출 309조6천억 원의 27.9% 규모로 역대 최고 비중이다. 정부 총지출 중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규모는 매년 최고 기록을 갱신해왔다. 2005년 24.2% -> 2006년 25.0% -> 2007년 25.9% -> 2008년 25.7% -> 2009년 26.2% -> 2010년 27.7% -> 2011년(안) 27.9%로 한 해를 제외하고는 계속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텐데, 이는 복지지출은 다른 분야와 달리 매년 자연적으로 늘어나는 제도적 증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국민연금 가입자가 만 60세가 되면 연금을 수령하게 되면서, 매년 연금지출이 증가한다. 노인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기초노령연금 지출액도 증가한다.
공적연금, 실업급여, 기초노령연금, 보훈보상금 등은 복지예산 중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할 분야다. 복지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제일 크고,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등은 매년 자연적으로 증가한다. 복지예산은 2010년 81조2천억 원에서 2011년 86조3천억원으로, 5조1천억 원 증가한다. 증가분 5조1천억 원 가운데 의무지출 증가분이 3조6천억 원에 이른다.
결국, 복지에 적극적이던 소극적이던 상관없이 매년 복지지출은 거의 자연적으로 역대 최고치를 갱신할 수밖에 없는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가짜 서민정책, 가짜 서민예산! 국민은 피곤하다?ⓒ 민중의소리
이게 복지예산? 복지와 무슨 상관이람!복지예산에는 또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성격상 복지예산이라고 분류하기 어려운 항목도 포함돼 있는 것. 바로, 국토해양부 소관 주택부문 지출이다. 국민임대주택 건설 융자, 주택구입 자금 및 전세 자금 융자 등 국민주택기금의 융자 사업이 대부분이다. 융자금은 주거자나 건설 사업자에게 빌려주는 돈으로 정부가 이후 회수하는 돈이다.
빌려줬다가 받는 돈을 복지예산이라고 분류한다는 건 다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굳이 복지예산에 포함하고 싶다면, 상식적으로 은행 대출의 이자보다는 정부 융자금의 이자가 쌀테니, 그 차액을 복지예산에 포함시키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국토해양부 소관 복지지출이 전체 복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2009년 추경예산을 기준으로 하면, 16조8천억 원으로 당시 전체 복지 지출 80조4천억 원의 21%나 된다.
연금지출 등 자연적 증가분과 복지예산에 포함하기에는 성격이 다소 안 맞는 주택부문 증가분을 합하면, 전체 복지예산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앞서, 밝혔듯 복지예산은 2010년 81조2천억 원에서 2011년 86조3천억 원으로 5조1천억 원 증가했는데, 5조1천억 원 중 자연적 증가분과 주택부문 증가분이 4조9천억 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결국, 정부 재량권이 개입되는 다른 복지사업들의 예산은 동결되거나 삭감됐다는 얘기다. 복지 예산이 역대 최고라고 하나, 국민들은 전혀 체감할 수 없는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 좋아하잖아? OECD 선진국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데!또 한 가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글로벌 스탠다드. 정부여당의 높으신 양반들이 항상 강조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세계적 표준)이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의 분석에 따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2009년 우리나라 복지지출 비중은 GDP(국내총생산) 9% 정도로 추산된다. OECD 국가 평균 약 20%에서 무려 11%포인트, 금액으로는 약 110조원이 부족한 현실이다.
더욱 중요한 포인트 하나. 한국의 GDP 대비 복지예산 비중은 꾸준히 늘어왔는데, 내년에는 하락할 것이라는 사실. 2000년 4.7%에서 2007년 7.5%로 늘어온 GDP 대비 복지예산 비중은 2009년 9%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내년 복지지출 증가율은 6.2%로 명목성장률 7.6%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GDP 대비 복지지출은 하락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오건호 연구실장은 "이명박 정부의 복지 지출 규모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웃음거리"라고 일갈했다.
#이 기사는 'MB의 지출 통제와 진보의 복지 증세-2011년 예산안을 읽는 다섯 가지 질문'(2010.11.8)-오건호/'대한민국 금고를 열다'(오건호 지음)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