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날치기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약속했던 육아수당 예산 등 서민.복지예산이 누락되고, 소위 여권 실세들의 예산은 끼워넣기로 증액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여론의 역풍을 맞은 것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GDP대비 복지 비중은 내년에 하락한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양지웅 기자
그러자 한나라당은 전체 예산에서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때보다 높다고 항변하며 여론을 달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대해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정부 총지출 증가율이 워낙 낮다보니 발생한 착시현상"이라며 "오히려 내년 복지증가율 6.3%는 경상성장률 7.6%에 못미쳐, GDP 대비 복지 비중은 내년에 하락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이 실제 체감하는 복지는 정부 총지출 대비 비중이 아니라 한해 부가가치 총량인 GDP 대비 비중인데, 이명박 정부에서 GDP 대비 복지 비중은 계속 떨어질 것"이라면서 "이명박 정부의 복지지출 규모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웃음거리"라고 일갈했다.
오건호 연구실장은 또 "지난 3년 내내 예산안 날치기를 했지만, 이번에는 예산의 세부내역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정부와 한나라당이 마음대로 예산을 깎고 올렸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라며 "이는 나라살림을 사유화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오 실장은 "이명박 정부의 재정운용의 첫번째 목표가 2013년 재정균형 달성을 위한 지출 통제"라면서 "정부는 대선을 앞둔 2012년 가을 재정균형 달성을 치적으로 내세우기 위해 날치기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이같은 정치전략에 맞서 진보진영은 지금부터 복지증세 프레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건호 연구실장은 민주노총 정책부장으로 활동하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자,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이던 심상정 의원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겨 일했다. 2007년에는 국민연금을 소재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계기를 마련하고자 '저소득층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사업(사회연대전략)을 추진했지만 내부 논란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2008년부터 공공노조 부설 사회공공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근 쉽고 종합적인 국가재정 문제에 대한 분석서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를 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단독처리하고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자기 마음대로 예산을 정해도 큰 문제 없을 거라는 정부와 여당의 오만함이 이번 사태의 뿌리이다. 3년 내내 날치기를 했지만, 이번에는 날치기 예산의 세부 내역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정부와 한나라당이 마음대로 예산을 깎고 올렸다. 이는 나라살림을 사유화하는 행위다. 정부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되는 돈인데, 이렇게 사용될 거라면 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 재정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해 있다. 재정운용에 대한 정부 나름의 정치전략도 날치기 무리수를 둔 원인이다.
-재정운용에 대한 정부의 정치전략이 날치기 무리수의 원인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근래 우리나라에서 재정건전성 문제가 떠올라 있다. 2008년 부자감세로 올해부터 20조원 이상의 세수 감소가 항구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2011년 재정적자 규모가 25조원 가량인데, 결국 2011년 재정적자는 대부분 2008년 부자감세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다. 부자감세를 원상회복하면 내년 재정수지가 거의 해소된다는 이야기인데, 이명박 정부는 강력한 지출통제로 재정균형을 달성하려고 한다.
정부는 내년도 경상성장률 7.6%, 정부 총수입 증가율 8.1%로 전망하면서도 정부총지출 증가율은 5.5%로 낮게 잡았다. 강력한 지출통제로 재정수지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궁극적으로는 2013년 재정균형을 절대적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2013년 이명박 정부가 공언한 재정균형이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부자감세로 재정수입에 큰 구멍이 생겼지만, 매년 재정지출 증가율을 재정수입 증가율보다 낮게 통제해왔기 때문이다.
이 의제는 2013년 예산안이 제출되는 2012년 가을, 즉 차기 대통령선거의 한복판에 등장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세계를 강타했던 금융위기 쓰나미에 주요 나라들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데 한국은 자신의 임기 5년을 거치면서 재정균형을 달성했다며 이를 치적으로 내세울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무리수를 두면서 재정지출을 옥죄고 날치기까지 감행하는 배경에는 향후 재정균형 달성 효과에 대한 정치적 기대감이 자리한다.
-부자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으로 지방재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력한 지출통제에 따라 피해를 입는 영역이 또 있을 것 같다.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지출통제로 최대 피해를 입는 쪽이 복지분야다.
-한나라당은 "내년도 복지분야 예산은 역대 예산총지출 중 그 비중이 최고다"라며 그만큼 한나라당과 정부는 친서민 복지예산에 아낌없이 재정을 투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양지웅 기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내년 복지분야 지출이 올해 81.2조원에서 86.4조원으로 6.3% 증가하며, 정부총지출 대비 비중도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이라고 변명한다. 맞다. 역대 최고이다. 하지만 이는 분모에 해당하는 정부총지출의 증가율이 5.5%로 워낙 낮다보니 발생한 착시현상이다. 여기에는 내년 복지 증가율 6.3%가 경상성장률 7.6%에 못 미친다는 것, 즉 GDP 대비 복지 비중이 내년에 하락한다는 사실이 가려져 있다. 국민이 실제 체감하는 복지는 정부총지출 대비 비중이 아니라 한해 부가가치 총량인 GDP 대비 비중이다.
OECD 기준 2009년 우리나라 복지지출 비중은 GDP 9% 정도로 추정된다. OECD 국가 평균 약 20%에 무려 11%포인트, 금액으론 약 110조원이 부족하다. 속도는 느리지만 우리나라의 GDP 대비 복지 비중은 점차 늘어 왔다.(2000년 4.7%에서 2007년 7.5%로, 2009년은 9%대에 이른다.) 그런데 내년 복지 비중은 거꾸로 하락한다. 내년 복지지출 증가율 6.2%가 명목성장률 7.6%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명박 정부에서 GDP 대비 복지 비중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복지 지출 규모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웃음거리'이다.
-이명박 정부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재정균형 성적표를 꺼내들면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재정균형을 맞추겠다는 걸 반대할 수는 없고, 진보진영은 무엇을 해야 하나.최근 한나라당에서 부자감세 꼬리표를 떼어버리기 위해 내세운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철회를 두고 약속대련이 벌어졌다. 정두언 등이 나서고 강만수가 악역을 맡고. 부자감세로 20조 이상 세수 감소는 여전히 피할 수 없는데, 20조원을 감세하고 이 중에서 1조원을 철회하는 것으로 부자감세 비판에서 빠져나가려는 일종의 약속대련이다.
우리는 복지 재정 규모를 늘리기 위한 재정수입 확충방안, 즉 '증세' 프레임을 만들어 만들어 가야 한다. 그냥 증세가 아니라 '복지 증세'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올해 예산안 논의에서 본격적으로 사회복지세, 사회보험료 등 복지연계 증세 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가 확대된다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는 국민들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진보진영에서 복지증세 방식을 둘러싸고 상위계층에 재원을 요구하는 부유세 방식(구 민주노동당의 부유세, 진보신당의 사회복지세)과 중간계층까지 참여하는 일반 직접세 방식(대중적 사회복지세, 건강보험 하나로 등)이 제안되고 있다. 어떠한 방식도 모두 소득재분배 효과를 낳는 진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상호 진취적으로 논쟁을 벌이며 복지 증세 프레임을 만들어 가야 한다.
-예산안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데 연말 지나면서는 잦아들지 않을까.아니다. 수정예산안을 만들어야 한다. 엄밀한 의미로는 국회 의결 전에 고치는 것인 수정예산안이고, 의결한 후에 고치는 것이 추경예산안이다. 편의상 수정예산안이라고 부르자. 날치기 과정에 문제가 있으니 일종의 시민참여재정운동으로 수정예산안을 시민사회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러한 흐름으로 가고, 하반기부터는 증세 프레임을 짜기 위한 활동으로 이어가야 한다.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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