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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조합 부설 싱크탱크 현황/ 자료:한겨레경제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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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사무국 역할 이상 못해”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현재 개점휴업 상태이다. 올해 2월 이후 원장은 공석이며, 누리집조차 운영되지 않고 있다. 두명의 상근연구원은 정책실과 협력하고 있으며, 연구원과 정책실 통합 논의도 있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의 사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노진귀 원장과 행정인력을 포함하여 총 10명이 상근하고 있고, 외부 연구자들의 프로젝트 수행 결과가 연구원 성과의 상당 부분을 이룬다. ‘협력’과 ‘네트워킹’의 성과라고 평하기엔 내부 연구역량이 취약하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초대 원장을 지냈던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 역시 “정책연구원이 프로젝트 사무국 역할 이상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두 노총 모두 전체 노동계급의 ‘전국적 중심’이라는 위상에 맞는 연구, 정책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산별 노조들이 설립한 연구소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열악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공공노조가 설립한 사회공공연구소,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공무원노조 정책연구소,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금융노조 금융경제연구소 등이 자료조사, 정책개발, 여론형성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 상근연구원이 5명 안팎에 불과하며, 해당 노조 상황에 따라 다음해 사업과 운영이 큰 영향을 받는다.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공공노조가 준비하고 있는 대산별로의 전환 여부, 철도노조에 대한 민사소송 등으로 인해 내년 상황이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정부 부처, 국책연구소와 기업연구소, 한국경제연구원 등이 내는 자료를 빠짐없이 모니터링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반박 보고서나 논평을 적시에 내는 것은 어려운 여건이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중심은 노조…분명한 목표 설정을
점점 낮아지는 노조가입률, 계속 약화되는 노동운동의 사회적 위상, 여전히 미약한 진보정당의 정치적 지위 등을 고려할 때, ‘노조 부설’ 또는 ‘친노동’ 성향의 연구소들이 지금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현 정부 들어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국책연구기관 한국노동연구원은 물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같은 ‘친노동’ 성향의 독립 싱크탱크들 대부분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노동조합이 중심을 잡고 정책역량 결집과 발전을 위한 목표와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역시 “한국 진보 진영의 정책역량은 결국 정당과 노동조합 중심으로 모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정책적·대중적 영향력 획득을 목표로 삼았고, 그것에 성공하였다. 노조와 시민사회 연구소들 역시 분명한 ‘목표’와 영리한 ‘전략’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대 노총과 산별노조의 지도부, 현장 활동가들 중 상당수는 정책적 영향력 확보와 연구역량 결집에 소극적이다. 김태현 실장은 “노조는 지나치게 단기성과적 정책연구를 기대하는 경향이 크다. 더욱이 정파적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같이’ 하기보다 ‘따로’ 하는 데 익숙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책연구를 수행할 사람과 연구소를 키우기 위해선 시간, 돈,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금속노조 이상호 연구위원 역시 “업종별 의제와 공동 의제를 종횡으로 엮어 연구할 수 있는 전략적 연구단위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선 조직적 투자와 배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것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등의 기업연구소, 전경련의 한국경제연구원, 경총의 노동경제연구원이 ‘친노동’의 정책연구를 수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중요한 지원군 노릇을 해 왔으나, 조직의 존폐가 거론될 정도로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양대 노총이나 산별노조가 국가와 자본의 공세에 맞설 수 있는 ‘숫자와 대안’을 만들어낼 제대로 된 연구소를 빠른 기간 내에 만들 가능성 역시 거의 없다. 어기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정부가 거의 포기한 한국노동연구원을 양대 노총 산하로 돌리고, 이를 매개로 양대 노총의 통합까지 고민해 보자”고 제안한다. 제대로 된 규모와 능력을 갖춘 ‘친노동’의 두뇌집단을 만들어 가는 길이 결코 평이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그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점에서 귀를 기울여 보게 된다. ‘친노동’의 연구소 전부를 합쳐도 삼성경제연구소 규모에 전혀 못 미친다는 사실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