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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경향: 고용난민 시대, 일자리 없나요?
번호 432 분류   뉴스 조회/추천 1614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0년 09월 06일 09시 36분 49초
[고용난민 시대, 일자리 없나요?]노동 취약계층 ‘방패’삼아 정규직 밥그릇에만 골몰

ㆍ노동계, 실패한 일자리 분배

2000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사측과 ‘사내하청을 16.9% 선에서 유지한다’는 데 합의했다. 구조조정시 비정규직을 우선 해고한다는 전제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대법원은 지난 7월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사용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결국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위해 ‘불법적인 담합’이 이뤄진 셈이다.

지난 10년간 노동계는 일자리를 지켰을까. 그렇지 못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최근 들어 비정규직 확산 등 불안정 노동이 크게 늘고 있지만 노동계는 제동을 걸지 못했다. 대량실업 등 위기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 등 대안을 관철하지 못한 채 정부와 사용자의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선 비정규직 문제. 물론 불안정 노동 확대의 1차적 책임은 비용을 절감하고 정규직 노조를 피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확대시켜온 기업에 있다. 하지만 노동계 스스로 사내하청 등 비정규 노동을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범퍼’로 활용한 측면도 없지 않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한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은 우리 방패막이인 동시에 우리를 위협하는 대상이란 인식들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공장에서 22년째 일하고 있는 권모씨(45)도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면 ‘내 일자리가 위협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취약노동계층과 함께 제조업의 정규직 근로자들도 주요 해고대상이었다. 반면 2008년 금융위기 때에는 제조업 생산직 비정규직이 집중적인 해고 대상이 됐다. 금융위기 이후 대우조선은 8개 사내하청 업체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현대자동차는 구형 에쿠스 공장 폐쇄에 따라 사내하청 노동자 115명을 정리해고했다. 현대자동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이상수 지회장은 “구형 투싼 단종에 따라 사측이 오는 17일자로 사내하청 노동자 70여명에 대해 해고를 예고한 상태”라고 말했다. 손정순 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은 “대공장내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 심리와 이에 기반한 노조의 고용안정 전략이 간접고용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잃으면 그대로 미끄러지는 한국사회에서 정규직 노동자의 불안심리를 나무란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현실논리는 결국 노동운동의 고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노동계 내부에서는 ‘총고용을 보장하는 전략’을 실질화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조직노동이 ‘일자리-복지’를 축으로 취약 노동계층 보호에 나서지 않는다면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되고 조직노동과 취약계층 사이의 벌어진 간극이 부메랑이 돼 노동운동을 겨누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기간 중 노·사·정위원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이 일자리 지키기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소장은 “대다수의 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제도·정책적인 개입이 필요했다”며 “하지만 정부의 역할을 강제할 수 있는 노·사·정 대화공간을 스스로 닫아버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형식적으로 산별노조의 틀을 갖췄지만 지역단위의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노력이 미흡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구자현 금속노조 서울남부지회 지회장은 “노동계가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려는 활동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나누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계는 외환위기 이후 대량실업 국면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이슈를 제기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08년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256시간으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2004년 7월부터 법정 노동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는 데 성공했지만 법 규정의 허점으로 노동시간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울산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권씨는 “고령 노동자가 많아지고 있어 원칙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에 공감한다”며 “하지만 22년차인 나의 기본급만 따지면 180여만원이다. 중학생인 두 자녀의 교육비, 노후 준비, 부모님 의료비 등을 생각해보면 임금보전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잔업, 특근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임금구조를 만들어 뒀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슬로건이 먹혀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조가 연장근로에 반대하기보다 잔업과 특근의 보장을 통한 임금보전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측면이 크다”며 “현장 노조에서는 사업부 대표가 되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주말근무 몇 개를 따겠다’고 약속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노동계가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구조를 바꾸는 의제를 병행해서 제기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고용문제가 사회이슈로 등장한 외환위기 이후 10여년은 노동계에 위기이자 기회였지만 해법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면서 사회적 신뢰마저 약화된 셈이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노동운동이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전략적인 로드맵을 통해 장시간 노동체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위원은 “자동차 등 대공장의 노동시간 단축은 관련 부품업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산업 전체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지도력과 집중력이 취약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작업장 혁신차원의 일자리 나누기가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 노조가 수년간 주간연속 2교대제의 시행을 놓고 사측과 줄다리기를 해왔다”며 “하지만 아직도 교착상태인 것은 노동시간 단축분에 대한 임금보전에 너무 많이 신경을 쓴 노조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들이 재충전과 교육훈련의 시간을 갖고 이것이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임금보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 서의동·권재현·김지환(경제부), 전병역(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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