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정부는 공중화장실의 여성용 변기가 남성용의 1.5배 이상이 되도록 공중화장실법을 고쳤다. 하루 화장실 이용 횟수가 여성은 7.7회로 남성의 5.5회보다 많다는 사실을 배려한 조처였다. 여성들의 화장실 1회 이용 때 걸리는 시간이 3분으로 남성(1분24초)의 두 배를 넘는다는 분석도 영향을 끼쳤다. 성별 차이를 정부 사업의 예산 배분에서 중요한 고려 대상으로 삼은 대표적 사례다.
올해부터 성별 영향평가를 미리 분석하고 정부 예산에 반영하도록 한 ‘성 인지 예산제’가 도입됐지만 적용 대상이 전체 정부 사업의 2.5%에 그치는 등 미흡해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공공노조 부설 사회공공연구소는 5일 ‘성인지 예산제 내실화를 위한 5대 방안’ 보고서를 내어 “올해 예산부터 성인지 예산제가 도입됐지만 정부가 사실상 이름뿐인 제도로 전락시켰다”며 제도 내실화를 위한 관련법 개정을 촉구했다. 성인지 예산제는 2006년 국가재정법 제정에 따라 도입된 뒤 시범사업 등을 거쳐 2010년 예산부터 적용됐다.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낼 때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 끼칠 영향을 미리 분석한 보고서를 첨부해야 하는 것이다.
연구소는 “정부가 전체 8000여개 사업 가운데 195개(2.5%)에 대해서만 성인지 예산서를 작성했다”며 “또 성별 격차가 생기는 원인과 해당 사업이 성 불평등 해소에 미칠 효과, 향후 목표 등이 담겨야 하는데도 과거 성별 수혜 실적 정보를 제공하는 단순 설명자료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연구소는 일부 사업만 제외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성인지 예산제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국회법 개정을 통해 성인지 예산서가 단순 첨부자료에 그치지 않고 국회 심의 대상으로 격상돼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도입 첫해여서 예산이 성별로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계량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적용 대상도 점차 넓혀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60여개 나라가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정부 공식 문서로 성인지 예산서가 작성되는 곳은 프랑스와 북유럽 국가 등 10여개국뿐이다. 노르웨이에선 성인지 예산제를 도입한 뒤 농업발전기금의 남성 편중 현상을 해소해 농촌에 정착하는 여성 비중을 늘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