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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말에 간판을 내린 인디스페이스. ‘공모’로 극장을 잃은 구성원들은 이렇게 다시 돌아올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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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것도 많았지만 잃어버린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제는 익숙해져 언제나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다시 그것을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만이 아니다. 때로는 물건도, 심지어 제도도 그것이 사라질 위기에 놓일 때에야 ‘아차’ 싶은 경우가 있다. 어쩌다 1년에 한두 번 독립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도 독립영화 전용관이 있다는 것은 지나고 보면 큰 위로가 되고, 영화를 찍고 싶은 이에게 카메라를 드는 방법부터 편집하는 기술까지 거의 ‘공짜’로 가르치는 영상미디어센터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에 중요한 기회가 된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짧게는 지난 10여 년, 멀리는 20여 년 사이에 그래도 문화적 접근의 기회를 확장했고, 문화적 다양성을 넓혀왔다. 이렇게 구축된 문화사회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설 연휴를 즈음한 2010년 셋쨋주에 들려왔다. 작금의 사태를 요약하면, ‘독립영화 습격사건’ 혹은 ‘보수 진영의 극장 환수운동’ 되겠다.
이름만 바꿨을 뿐인데, 5등에서 1등으로
2월17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건물 5층 복도에서 30여 명의 남녀노소가 옹기종기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유인촌 욕심쟁이 유인촌~ 나이는 먹었는데 하는 짓은 ×초딩~.” 동요 <내 동생>을 패러디한 노래를 부르는 이들 옆에는 ‘됐고, 미디액트 돌려내!’라는 피켓이 서 있었다. 이들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복도 너머의 강의실에서 영화 강의를 들었고, 강의를 했던 사람들이다. 이날도 이들은 복도가 아니라 이 건물의 강당 사용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래서 복도에서 ‘시민영상문화기구, 질문 있습니다’라는 주제의 퍼포먼스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돌려달라는 미디액트는 무엇이고, 질문을 받는 시민영상문화기구는 어떤 곳일까? 이들이 퍼포먼스를 벌인 건물엔 영상미디어센터가 있다. 미디액트는 이곳에서 2002년부터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하며 시민에게 영상 관련 교육을 해왔다. 이들의 활동을 통해 한국에선 추상적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퍼블릭 액세스(시민이 직접 영상물을 만들고 유통·상영하는 방식)가 현실의 날개를 달았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에 운영을 위탁하는 형식이었지만, 영상미디어센터 설립을 먼저 제안한 것은 한독협이었다. 다양한 독립영화인으로 구성된 한독협은 이전부터 퍼블릭 액세스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운동을 벌여왔다. 미디액트의 설립은 이러한 흐름을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귀결된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국가가 문화적 협치를 하는 호시절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끝났다. 2009년부터 독립영화 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등에 대한 ‘공모제’ 도입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유지되던 지정위탁 형식을 공모제로 바꾼다는 것이다. 공모제는 투명한 방식이란 외피를 둘러썼지만, 영상미디어센터의 역사성 등에 비추어 적합한 방식이 아니란 비판에 부딪혔다. 그러나 영진위에 조희문 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며 공모제는 강행됐다. 2009년 말, 영진위는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자를 공모를 통해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11월20일 1차 공모에서 심사 결과 적정한 단체가 없자 2010년 1월12일 재공모가 공지됐다. 결국 2차 공모에서 시민영상문화기구가 운영자로 선정됐다.
공모제가 과연 적합한지에 대한 논란이 끝나기도 전에, 공모제가 투명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방증이 나왔다. 2월4일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영진위에서 입수해 공개한 공모 신청 서류에 바탕하면, 시민영상문화기구가 제출한 사업계획서가 1차 공모에 참여한 문화미래포럼의 서류와 거의 같은 것으로 드러났다. 1차 공모에 신청한 5개 업체 중에서 꼴찌를 했던 계획서가 참여단체의 이름만 바꿔 2차 공모에서 1등으로 둔갑한 것이다. 더구나 1차 공모에 참여한 문화미래포럼의 영화분과 회원인 복환모 호남대 교수가 2차 공모에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문화미래포럼은 현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이 설립한 뉴라이트 계열의 문화단체다. 미디액트의 맥을 잇는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는 공모에 참여했지만, 운영자로 선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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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1일 영상미디어센터 공모제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는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에게 미디액트 수강생들이 질문을 하고 있다. <씨네21> 오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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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감독들 전용관 보이콧 선언
이것은 속편에 불과했다. 앞서 한독협이 영진위의 위탁을 받아 운영해오던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도 지난해 말 문을 닫았다. 2007년 11월 개관한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했고, 때로 사회단체가 여는 영화제 장소로 활용됐다. 인디스페이스가 문을 닫은 2009년 말까지 2년여 동안 850편의 독립영화가 상영됐고, 300만 관객 동원의 독립영화 흥행 기록을 세운 <워낭소리>도 이곳에서 개봉했다. 이렇게 운영되던 공간은 영상미디어센터처럼 지난해 11월 공모제로 바뀌었고, 역시나 2차 공모 끝에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이하 한다협)가 운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최문순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바탕하면, 한다협도 1차 심사평가에서 참여한 4개 단체 중에서 3위에 그쳤지만, 1차와 비슷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도 2차 공모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역시 인디스페이스의 맥을 잇는 독립영화 단체인 인디포럼작가회의는 공모에 참여했지만 운영자로 선정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감독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2월18일 한다협이 운영하는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자신이 만든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는 독립영화 감독 100인의 선언이 나왔다.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등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졸속·편파 심사로 얼룩진 독립영화 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업체 공모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영진위의 납득할 만한 응답이 있을 때까지 논란 속에 선정된 단체가 운영하는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우리의 창작물이 상영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립영화 감독들이 독립영화 전용관을 보이콧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보수 진영의 극장 환수 3부작은 이날 저녁에 완성됐다. 이날은 독립영화 진영의 마지막 보루인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자 공모 접수가 끝나는 날이었다. 앞서 2월10일 영진위는 ‘2010년 서울아트시네마 운영자 사업’ 공모를 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가 2002년부터 운영해왔다. 전국 15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연합해 결성한 한시협은 결성 직후부터 서울아트시네마를 열었고, 영진위는 영화문화 다양성을 활성화하는 취지에서 서울아트시테마를 지원해왔다. 시네마테크는 예술영화와 고전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영화의 도서관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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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영화 감독 100인의 보이콧 선언.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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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준비에 1~2년 걸리는데 1년 단위 공모
서울아트시네마 공모설이 흘러나올 때부터 한시협은 이의를 제기해왔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서울아트시네마 운영비의 70%가량을 후원 등을 통해 한시협이 자체 조달해왔다”며 “극장 임대료를 지원해왔을 뿐인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 운영자를 공모해 선정하는 것은 월권 행위”라고 말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상미디어센터처럼 위탁사업도 아니고 운영비의 일부를 지원해온 것일 뿐인데,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의 이름을 명기하고 이곳의 운영자 공모에 나선다는 건 어불성설이란 것이다. 시네마테크에 1년 단위 공모제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걸작을 만든 외국 감독의 기획전을 열려면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해외 시네마테크와 접촉하고 저작권 문제까지 해결하는 데 최소한 1~2년은 걸린다”며 “1년 단위로 시네마테크가 영화제를 준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파행적인 공모로 문화시민권은 위축되고 관료주의는 심화됐다고 2월2일 나온 사회공공연구소 박정훈 연구위원의 ‘이명박 정부의 문화시장화 비판과 진보적 문화시민권 모색’ 연구보고서는 지적한다. 정부 기구와 시민사회의 협치의 모범 사례로 꼽히던 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 전용관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면서 오히려 운영자 선정·평가·감독의 주도권이 문화부 관료로 넘어갔다는 지적이다. 영화 관련 예산을 보면 공공성의 약화가 더욱 드러난다. 장애인 관람 환경 개선, 찾아가는 영화관 서비스 등이 포함된 ‘영화 향유권 강화’ 사업의 예산이 지난해 40억5500만원에서 올해 15억6500만원으로 61.4%나 깎였다. 공모 과정에 논란이 불거진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지원 예산도 여기에 포함된다.
기구는 그대로, 주인만 바꿔라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의 무리한 해임에서 시네마테크 공모제 도입까지, 이명박 정부의 문화부가 일관되게 유지하는 방식은 ‘기구는 그대로, 주인만 바꿔라’로 요약된다. 이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주요 기관뿐 아니라 독립영화 전용관 같은 풀뿌리 문화 공간까지 점거하고 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같은 원칙은 그렇게 이명박 정부 2년을 지나며 머나먼 옛 얘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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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문화 행정 파행
예술인센터, 환수에서 갑자기 지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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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헌 위원장이 법원의 해임처분 정지 결정을 받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출근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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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2주년을 지나며 문화 행정이 ‘핫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1월26일 서울행정법원은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문화체육관광부를 상대로 낸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해임처분에 대한 본안 소송 판결 확정까지 그 집행을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유인촌 문화부’의 무리한 해임이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파열음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2월9일 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긴급토론회에서 발제에 나선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문화 행정 파행의 사례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지난 1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10여 년 동안 공사가 중단됐던 서울 목동 예술인회관(일명 대한민국예술인센터 건립사업)에 국고보조금 100억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예술인회관 건립을 위해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예총)에 지원된 166억원의 국고를 환수하기로 한 것을 순식간에 뒤집고 오히려 지원을 결정한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 사업으로 진행된 예술인회관 건립은 1994년 166억원의 국고보조금이 지급됐으나 예총이 건축에 필요한 자기 부담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시공사의 손해배상소송, 예총 간부의 비리 혐의 구속, 감사원 조사 등 파행이 이어지며 1998년 공사가 중단됐다. 예술인회관은 20층 건물 가운데 6~20층을 일반 오피스텔로 임대하는 계획서 등에서 보듯이 예총의 임대사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파행적인 문화 행정과 함께 문화시장화도 가속화됐다. 국립극단은 2010년 4월까지 법인화가 예정돼 있다. 사회공공연구소 박정훈 연구위원의 ‘이명박 정부의 문화시장화 비판과 진보적 문화시민권 모색’ 연구보고서는 “국립오페라단 합창단 소속 예술가들이 전원 해고됐고, 2010년에는 정규직 단원이 한 명도 없는 ‘신개념’ 국립현대무용단이 창단될 예정”이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시장화가 본격화되면서 예술 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악화되고, 문화예술의 공공성은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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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