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폭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국민연금 기금을 동원해 주가를 떠받쳐야 한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이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연기금을 주식시장의 불쏘시개로 써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입장을 내세운 반면,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금융위원회 홍영만 자본시장정책관은 지난 2일 증시 동향 설명회에서 “국민연금이 10조원 이상 주식 매수 여력이 있다”면서 “수익률을 높여야 하는 국민연금엔 주가가 하락한 지금이 저가 매수 타이밍”이라며 국민연금의 동참을 독려했다. 그는 “이 10조원이 들어왔으면 하는 것이 희망사항이고 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8일 박해춘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012년까지 주식투자 비중을 40%까지 늘리겠다”고 밝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무려 160조원 규모다. 나중에 논란이 확산되자 박 이사장은 “지난해 기금 운용위원회가 검토하는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방안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물러섰다. 주목할 부분은 관련 언론보도의 논조다.
상당수 언론이 금융위 주장을 여과없이 전달하는데 그쳤고 파이낸셜뉴스는 “증시가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국민연금이 구원투수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면서 이를 거들었다. 한국경제는 3일 “국민연금이 위탁매매를 맡고 있는 일부 증권사에 1300억원의 자금을 풀어 1400선 회복을 이끌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4일에는 국민연금의 올해 주식투자 손실이 5조2천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발표됐지만 이를 보도한 곳은 많지 않았다. 한나라당 유재중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7월말 기준 국민연금의 주식 평가액은 30조8704억원에 이른다.
7월 한달에만 1조원 이상 손실을 기록한데 이어 8월에도 그 이상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비판적으로 접근한 신문은 경향신문밖에 없었다. 경향신문은 5일 사설에서 “국민연금이 주식매입을 확대할 수 있고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문제는 외부 간섭없이 기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자율성을 보장해주겠느냐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이번에 정부는 증시를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기금의 증시 투입을 종용함으로써 자율성 보장이라는 기본 원칙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한편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4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의 요청으로 투자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외국의 경우는 우리보다 주식투자비율이 더 높은 나라도 많지만 유동성이 큰 우리나라 증시 상황을 감안하면 30% 비율은 과도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오 연구위원은 “주식투자를 늘릴 수는 있지만 사회책임투자라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