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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위클리경향: 단협해지가 공기업 선진화 방안?
번호 342 분류   뉴스 조회/추천 1678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09년 12월 19일 06시 32분 16초

[커버스토리]단협 해지가 공기업 선진화 방안?

2009 12/22   위클리경향 855호

ㆍ이명박 정부의 노사정책, 공공기관 단체협약 일방적 해지 통보 잇달아

12월 2일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제3차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에서 “단협 해지를 철회하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단협 해지’를 무기로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공공기관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남호진 기자>

“공공기관장들은 기존 환경과 관습을 바꾸는 것이 매우 힘들고 고되겠으나 현장에서 적당히 넘기려 하지 말고 책임감을 갖고 서민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 달라.… 수십 만 명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평생직장을 보장받은 공기업 노조가 파업하는 것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해서도 안 될 것이다. 적당히 타협하고 가서는 안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월 28일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 참석해 한 말이다. 이날은 철도노조의 파업이 사흘째 되던 날이다. 철도노조는 준법파업을 고수했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가 요구한 필수유지업무 유지 수준에 따라 필수유지업무 대상자를 참여시키지 않은 준법파업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철도노조의 파업은 불법파업으로 낙인찍혔다. 이후 검찰은 노조집행부 15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고, 경찰은 철도노조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파업 8일째 김기태 위원장은 업무 복귀를 결정했다. 철도노조 역사상 가장 긴 8일 파업은 얻은 것 하나 없이 패배했다.
철도노조는 파업하면 여론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파업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공사의 일방적인 ‘단협(단체협약) 해지’ 때문이다.

단체협약은 노동조합이 사측과 함께 체결하는 자치적인 노동 법규다. 임금, 근로 조건, 노조의 전임 임원 수와 활동, 기업경영과 인사 등에 노조 참여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사측에서 갑자기 단협을 해지하면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진다. 노조는 단협을 계속 요구하면서 교섭이나 파업을 벌일 수밖에 없다. 단협 해지로 인해 노조나 사측이 치러야 할 비용은 매우 크다. 그동안 일방적인 단협 해지가 드물었던 이유다.

노조 받아들이기 힘든 개정 요구
그런데 상황이 돌변했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단협 해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공공노조 100여 개 지부 가운데 사측으로부터 단협 해지 통보를 받은 사업장은 노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가스공사, 철도공사 등 10여 곳이다. 사측에서 단협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 공공기관도 60여 곳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연구원은 노조에 단협 해지를 일방적으로 요구했고,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다. 연구원은 직장 폐쇄로 맞섰다. 국책 연구기관 가운데 직장이 폐쇄된 곳은 노동연구원이 처음이다.

단협 교섭 과정에서 공공기관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은 아닐까. 철도노조 권종현 조사국장은 “철도공사 측에서 교섭 중에 단협 170여 조항 가운데 100여 개를 수정 내지 삭제하자고 했다. 사측은 지난해 노조와 잠정합의한 내용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사측이 갑자기 단협 해지를 통보한 것이다”면서 “노조가 파업을 하라고 유도한 것이다. 우리가 파업에 들어가자 불법으로 몰았다. 노동자를 잡겠다는 의도인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국가스공사지부 민정태 사무처장은 “예전에는 단협 과정에서 노조가 사측에 많은 요구를 했다. 올해에는 사측에서 퇴직금 지급 특례나 조합원 범위 축소, 휴가 축소 등을 노조에 요구했다. 그런데 우리의 요구 사항은 안된다는 말만 했다”면서 “노조는 사측과 충분한 협의를 했으면 하는데 사측에서 전혀 움직임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한국가스공사 노조도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다른 공공기관도 상황이 비슷하다. 사측은 노조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단협 개정이나 수정을 요구하고,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단협 해지를 통보한다. 노조는 사측에 계속 교섭을 요구하지만 사측은 교섭을 피하고 있다. 노조는 파업이라는 선택만 남은 것이다. 공공기관이라는 특성상 파업하면 여론이 불리하기 때문에 노조는 파업을 결정하지도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조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단협 해지라는 신종 노동 탄압에 대응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과거에 경험 못한 신종 노조 탄압
이런 사태의 배경은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있다는 게 노동계 분석이다. 이수연 새사연(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은 ‘철도파업, MB공기업 선진화 정책이 문제’라는 글에서 “2008년 8월 11일부터 2009년 3월까지 공기업 선진화 계획 6차까지 발표되었다. 정부는 30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민영화, 통폐합, 기능 재조정, 경영효율화라는 네 가지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핵심 내용은 효율성과 수익성을 근거로 한 인력 감축과 공기업 자산 매각으로 압축된다”고 설명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실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4월까지 제1기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실시됐다”면서 “현재는 2기 과정으로, 핵심은 노사관계 선진화다. MB식으로 보면 집단적인 노사관계를 무력화하는 것이고, 그 수단이 단협 해지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공공기관장 물갈이, 인력 감축, 임금 삭감 등이 모두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일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올 하반기에 이명박 정부는 노사관계 선진화를 명분으로 노조 길들이기에 나섰다. 정부는 면밀하게 움직였다. 노동부가 산하기관의 단협을 분석해 전체 공공기관의 개정 방향을 제시했고, 기획재정부는 올해 공공기관장 평가 때 ‘노사관계 선진화 부분’에 대한 배점을 15점에서 20점으로 높이기로 했다. 과거 공공기관장들은 파업이 발생하면 평가 때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단협 해지 카드를 내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본부장은 “공공기관장들은 다른 자리로 영전을 노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노사관계에 불협화음이 생기면 좋지 않으니까 과거에는 좋게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원칙에 따라 공공기관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높이 평가한다. 공공기관 선진화는 일을 제대로 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협 해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단협 해지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건호 실장은 “노동운동의 힘은 약한데 노동운동을 향한 도전은 무겁기만 하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에서 시작된 단협 해지 폭풍이 민간 부문으로 확대될 조짐도 보인다. 12월 7일 현재 금속노조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민간 사업장 8곳에서 단협이 해지됐고, 4곳의 노조가 사측으로부터 단협 해지 통보를 받은 것. 민간 기업에서도 일방적인 단협 해지 때문에 노조와 기업이 일전을 벌이는 상황이 임박한 것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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