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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시사인: 직장폐쇄 노동연구원의 '옥새' 소동
번호 338 분류   뉴스 조회/추천 1761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09년 12월 14일 23시 22분 20초
직장폐쇄 노동연구원의 ‘옥새’ 소동
철도노조가 파업을 접었다. 정부는 노사관계 선진화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감사원이 감사를 예고했고 기관장 평가에서 노사관계 부분을 주요하게 평가할 방침이다.
 
[117호] 2009년 12월 04일 (금) 20:29:35 고제규 기자 unjusa@sisain.co.kr
 

11월30일 월요일, 한국노동연구원에서는 아침부터 ‘옥새’ 찾기 소동이 벌어졌다. 행정실(경영지원국)에서 관리하는 기관의 직인이 사라진 것이다. 월말에는 대외 보고서를 제출하거나 밖으로 공문을 보낼 일이 잦아 직인을 쓸 일이 많았다. 기관장인 박기성 원장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

사라진 직인의 행방은 오후 늦게 확인됐다. 이날 오후 5시, 서울지방노동청 남부지청에 직장 폐쇄 신고서가 접수됐다. 박 원장이 직인을 가지고 노무사와 함께 직장폐쇄를 신고한 것이다. 다음 날 노동연구원은 1989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직장이 폐쇄됐다. 노조도 연구위원도 본부장도 예상하지 못한 직장폐쇄였다. 지난 9월부터 파업 중이기는 했지만, 직장폐쇄 이틀 전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잠정 합의안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노사는 지난 11월16~26일 집중 교섭을 벌여 28개 핵심 쟁점 가운데 27개 사안을 합의했다.  노사 양쪽 말을 종합하면, 합의를 보지 못한 ‘고용안정위원회’ 구성 조항도 11월27일 구두 합의를 끝냈다. 타결이 임박한 상황인데도 박 원장은 초강수를 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조합(위)은 12월1일자로 직장폐쇄를 당했다.

도대체 박 원장에게 11월27~30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노조뿐 아니라 연구위원들은 지난 11월28일 공공기업 선진화 워크숍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의 공기업 다잡기 발언이 불심지 구실을 한 것으로 보았다. 이 대통령은 “(공공기업 파업에 대해) 적당히 타협하고 가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평생직장을 보장받은 공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해서도 안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공기업 파업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이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황에서 박 원장은 합의보다 과잉 충성의 길을 택한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노동계에서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인 노사관계 선진화의 ‘선도투’를 자임한 장본인으로 통한다. 성신여대 교수인 박 원장은 지난해 8월 원장에 부임했다. 그는 대선 당시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 시국선언’에 참여하기도 했다. 박 원장 자신도 소신파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박 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장에 나와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야 한다”라고 소신을 밝혀, 여당 의원한테도 사퇴 요구를 받았다.

12개 공기업 단협 해지 도미노

소신은 행동으로 나타났다. 노동연구원은 지난 2월6일 정부출연기관·공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단체협약을 해지했다. 단체협약 해지는 사용자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권한이지만 노사 간 극단적인 대립을 불러오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단체협약 해지를 주저했다. 카드로만 만지작거렸을 뿐이다. 하지만 박 원장은 선뜻 카드를 던졌다. 노동연구원의 선도투에 다른 공기업도 뒤따랐다. 지난 5월 해양수산개발원, 6월에는 직업능력개발원, 7월에는 예금보험공사, 11월에만 5개 발전회사(3일)·한국가스공사(11일)·한국철도공사(24일)가, 12월 들어서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지금까지 12개 정부출연기관이나 공기업이 단체협약을 해지했다.

   
정부의 압박에 철도노조(위)는 8일 만에 파업을 철회했다.

단체협약 해지 도미노는 이명박 정부가 내건 노사관계 선진화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는 데 노사 모두 동의한다. 정부출연기관의 한 관계자는 “단협 내용을 정부가 체크하고 기관장 평가에 반영하는 상황에서는 노동연구원처럼 우선 단협을 해지하는 게 최선의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노사관계 선진화 정책의 실행은 치밀하고 일사 불란했다. 지난해부터 진행된 선진화 과정은 기관장 교체→경영계약제 도입→기관장 평가→단협 해지로 요약된다.

먼저 지난해 3~6월 기관장을 교체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공공기관 305개 가운데 236명의 사표를 요구했다. 동시에 ‘공공기관운영법’을 손질하고 ‘경영계약제’를 도입해 기관장을 평가한 뒤 언제든 해임할 수 있게 했다. 실제 지난 6월 ‘2008년 기관장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기관 고유 과제’와 ‘공공기관 선진화·경영효율화’를 50%씩 반영한 평가 결과 기관장 4명이 해임됐고 17명은 경고를 받았다.

공공기관 기관장 평가를 분석한 박용석 사회공공연구소 객원연구원에 따르면, 기관장 평가에서 기관 고유 과제 항목보다 정원감축·보수조정·노사관계 등 선진화와 관련한 항목이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기관 고유 과제가 ‘보통(B등급)’을 받았더라도 선진화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A등급’을 받아 기관장은 자리를 지켰다. 반면 노사관계 선진화나 경영효율화 항목에서 낮은 점수(D등급)를 받은 기관장 2명은 해임됐다.

지난 국정감사 때도 자의적인 노사관계 평가가 도마에 올랐다. 권선택 의원(자유선진당)은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08년도 공공기관장 경영계획서 이행실적 평가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는 기관장에 대해서는 노사관계 선진화 항목의 평가점수를 일률적으로 낮게 매긴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폭로했다. 권 의원에 따르면 한국노총 소속인 근로복지공단·산업인력공단·산업안전보건공단 기관장의 노사관계 등급은 A등급이었고 노조가 민주노총 소속인 장애인고용촉진공단·산재의료원·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관장의 등급은 C등급이었다.

이런 지적에도 노사관계 선진화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던 철도노조가 파업 8일 만에 깃발을 내리면서 노동계 방어선마저 무너진 형국이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철도노조의 백기투항은 노조 선진화에 맞설 노동계의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또 한국노총은 12월4일 경영자한국경영자총협회·노동부와 복수노조 시행을 2년6개월 늦추고, 전임자 임금지급은 내년 7월1일부터 ‘타임오프제’(노사 업무 종사자에 대해 근로시간을 면제해 주는 제도)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민주노총과 공조를 파기한 것으로 노동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날 노동부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가 제출한 노조설립신고서의 보완을 요구하며 돌려보내기도 했다.

정부의 노동계 압박은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김황식 감사원장은 11월28일 노사관계 선진화 워크숍에서 “올해 공공기관의 부당한 노사관계 등을 점검·권고했지만 내년에는 본격적인 감사를 실시해 감사 결과에 따라 책임소재를 분명히 물을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도 내년에 있을 기관장 평가점수 가운데 노사관계 부분을 15점에서 20점으로 늘렸다. 박용석 사회공공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공공기관장을 사병집단으로 전락시켜 노사관계 선진화를 일방통행으로 진행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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