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서비스노동조합의 사회보험분과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사회질서 재편과 경제공황이후 진보적 사회보장전략 모색을 위한 새로운 기획이 시작되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단계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보험의 역사를 가진 독일과 20세기 후반부터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네덜란드 모델을 살펴보기 위해 두 나라를 방문하였다. 사회보험분과의 정책위원 3인과 사회공공연구소의 연구위원인 필자는 10월 17일부터 열흘간 독일과 네덜란드에 체류하면서 사회보험 관련기구, 사회복지시설, 노조, 정당 등에 방문하여 시찰 및 관련 전문가들과의 면담을 가졌다.
독일의 경우 지난 9월 27일 제 17대 연방의회선거(총선)를 치렀다. 방문팀이 현지에 도착했을 때 선거결과에 대한 매우 비판적인 평가와 새로운 연립정부로 기독민주/기독사회연합(CDU/CSU)과 자유민주당(FDP)이 구성한 흑-황연정의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심각한 우려의 소리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 글은 10월 20일 독일 좌파당(DIE LINKE.)의 의료 및 수발정책 담당자인 멜라니 베어하임(Melanie Wehrheim)과 사회보장 및 연금 담당자인 카트린 모어 박사(Dr. Katrin Mohr)와의 면담결과, 10월 21일 방문한 독일 통합서비스노조 베르디(Ver.di: Vereinte Dienstleistungsgewerkschaft)의 연방보건의료정책 담당자인 가브리엘레 펠트-프리츠(Gabriele Feld-Fritz)와의 면담결과, 그리고 독일에서 수집된 총선결과 평가 자료 등을 기초로 작성되었다.
이 글은 두 면담내용을 바탕으로 사민당이 수행해왔던 신사민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실용주의 노선에 대한 비판과 좌파당이 제시하고 있는 노동 및 사회정책을 소개하는데 그 목적을 둔다. 또한 베르디와 좌파당이 제시하고 있는 시민보험(Bürgerversicherung)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한다.
2009년 독일총선 결과 가장 수혜를 받은 당은 새 연립정부의 한 주체인 자유민주당(FDP)이고 가장 큰 실패를 본 당은 사회민주당(SPD, 이하 사민당)이다. 사민당에 대한 득표율은 지난 2005년 16대 총선보다 무려 11.2%p 하락한 23%에 그쳤고 이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불릴 만큼 사민당에게 충격적인 결과로 평가되었다. 20세기 이후 1953년 선거에서 28.8%의 득표율이 최저 득표율로 기록되었는데 이번 선거결과로 이 기록이 바뀌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기권층은 신자유주의체제 구축 이후 정당 정책 간 차이가 모호해지면서 서서히 증가되었다. 두 번째는 사민당의 득표율 변화에 대한 조사결과이다. 사민당은 총 5,490,000명의 사민당 지지자로부터 외면당하였다. 이중 39%는(약 213만 명) 투표하지 않았는데 이는 전체 기권자의 약 12%에 해당한다. 그 외에 약 20%는(약 111만 명) 좌파당으로, 약 15.8%는(86만 명) 녹색당으로, 약 15.9%는(87만 명) 기독민주/기독사회연합으로, 그리고 약 9.5%(52만 명)는 자민당으로 투표하였다. 정치적 성향으로 볼 때 전 사민당 지지자 중 약 36%는 좌파 성향의 정당으로, 약 25%는 보수 성향의 정당으로 그들의 지지 정당을 바꾼 것이다.
특이할 사항들은 보수당인 기독민주/기독사회연합에 대한 투표율이 녹색당에 대한 투표율보다 높았다는 점과 자민당이 획득한 증가 된 지지율 중 33%가 전 사민당 지지자로부터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정당별 이전 추이로 보면 좌파당으로의 전환이 가장 높게 나왔지만, 사민당을 지지해왔던 유권자들이 보수 및 자유주의정당으로 전환했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지난 10년 동안의 사민당 정치에 대한 대중의 엄중한 평가이자 사민당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로 해석된다. 독일의 일간지인 「타츠(taz)」의 9월 29일자에서 2009년 사민당의 패배는 ‘아젠다 2010에 대한 영수증(die Quittung für die Agenda 2010)'을 수령한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민당 패배의 원인은 1982년부터 16년 동안 유지되었던 콜(Kohl)정권을 물리치고 집권정당이 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제시되었던 ‘신중도 노선(Neue Mitte)’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통해 사민당은 집권정당의 권좌에 오를 수 있었지만 11년 만에 사민당의 육체는 심각하게 상하였다.
사민당의 딜레마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대해 보수당과는 다른 전략으로 대응했어야만 하였지만 그들은 그 어느 정당보다도 모범적으로 사회복지에 대한 축소를 과감하게 진행하였고 노조의 지위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킴으로써 그들 존재 기반을 서서히 잃어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베르디의 펠트-프리츠(Feld-Fritz)는 집권여당으로서 사민당은 사회국가(Sozialstaat)를 가장 획기적으로 축소하였다고 평가하였다.
펠트-프리츠는 총선에 대한 베르디의 평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슈뢰더 이후 사민당은 구사민당이 대변해왔던 사회정책과 노동정책의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회국가를 해체해 왔다. 그 결과 사회국가를 중심으로 한 사회연대는 약화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적 책임은 축소되었던 반면 개인의 책임은 더욱더 강화되었다. 그러나 장기실업 및 청년실업은 해소되지 못했고 사회복지 영역에서의 민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져 왔다. 지난 9월 총선에서 사민당 지지자 중 절반이 사민당 지지에 대해 중단하였는데 이는 사민당의 신중도노선에 대한 거부이자 아젠다 2010에 대한 평가이다. 아젠다 2010의 내용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실업지원정책의 획기적 축소와 실업자에 대한 강제노동을 주도했던 '하르츠(Hartz)IV'와 '리스터(Riester)연금' 및 연금수령연령의 67세 상향조정과 같은 연금개혁이었다.
사민당은 지난 11년 동안 정부여당으로서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역할에 충실하였다. 그 기간 동안 노동사회 및 시민사회 내에서 사민당을 지지해왔던 이들은 그들의 지지 정당을 잃기 시작하였고 사민당은 이에 대해 대비하지 않았다. 사민당은 그 무엇과도 투쟁하지 않으면서 다만 과거의 영광만으로 보수당과의 차별성을 주장하였다. 매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사민당이 야당으로서 사민당의 ‘재사회민주주의화(Resozialdemokratisierung)’에 대한 성공여부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120년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사민당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한 자기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한때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에 투쟁했었던 과거와의 분리이후, ‘누구를 대변하고 무엇에 투쟁해야하는지’ 모두가 모호해진 현재를 되짚어서 그들의 정체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1) 좌파당의 11.9%의 득표율이 가지는 의미
좌파당은 2007년 6월 구 민사당(PDS)과 선거대안정당(WASG)의 결합으로 사민당과 차별화된 좌파정당으로서의 역할을 펼쳐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2005년도 선거연합을 통해 8.7%의 득표율을 얻어 연방의회 의석 중 54석을 얻었고, 2008년 지방선거에서 헤센주(Hessen)에서 5.1%, 함부르크(Hamburg)에서 6.4%의 지지를 얻었다. 구 민사당과의 결합으로 인해 구서독지역에서 좌파당의 지지율을 올리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으나 보수지지층이 두터운 헤센주에서 5%이상의 득표를 얻은 것은 상당한 성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좌파당의 베어하임(Wehrheim)은 좌파당의 정치를 경험하게 된 지역에서는 서서히 구 동독당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베르디의 펠트-프리츠(Feld-Fritz)역시 베를린(Berlin)과 브란덴부르크주(Brandenburg)의 예를 들면서, 이 두 곳의 지방정부에서 좌파당이 연정파트너로 참여하면서 시민들의 좌파당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다고 한다. 구 민사당에게 가졌던 시민들의 부정적 인식은 좌파당의 정치활동을 통해 변화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좌파당은 4년 만에 3.2%p 증가한 11.9%의 득표율로 의회 의석수를 54석에서 76석으로 확대하였다. 이는 전체 의석수인 622석 중에서 12.2%에 머물지만 보수와 자유주의 연정이라는 정국에서 새로운 좌파성향의 당이 펼친 의회정치에 대한 기대는 득표율의 수준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기존 보수당을 지지했던 4만 명이 17대 총선에서 좌파당을 지지했다는 사실 역시 곱씹어 볼 만하다.
좌파당은 지난 대연정(기민/기사 연합당-사민당)시기 사회적 정의 실현과 삶의 질 향상을 중심으로 정부정책에 비판을 가해왔다. 특히 실업정책의 판도를 바꾼 하르츠IV의 폐지와 최저임금관철이 당의 주요 정책이었다. 좌파당은 사민당이 ‘외적 강제(Sachzwang)’로 내세우며 개혁했던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에 대해 전면적인 비판을 제기한다. 이러한 당 정책과 입장이 사민당과 다른 좌파 성향의 정당으로서 입지를 굳히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민당이 주도한 개혁 중 가장 지탄을 많이 받은 하르츠VI의 내용과 결과 그리고 이에 대한 좌파정당의 비판을 살펴보기로 한다.
2) 사민당의 하르츠IV가 남긴 중대한 오류
2005년부터 시행 중인 하르츠IV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실업급여(Arbeitslosengeld)와 실업부조(Arbeitslosenhilfe)를 통합한 실업급여II(Arbeislosengeld II)에 있다. 실업급여II는 더 이상 과거 임금에 연동하지 않으면서 2006년 기준으로 구 서독지역 독신자의 경우 월 345유로, 구 동독지역 독신자의 경우 331유로로 균일하게 지급하게 되었다. 이전의 실업급여의 경우 총임금의 60%에 해당하는 급여수준과 12개월-18개월의 수급기간을 가졌고, 실업부조의 경우 총임금의 53%(자녀가 있을 경우 57%)로 과거 소득에 연동시켰다.
그러나 실업급여II는 과거 소득뿐만 아니라 자녀유무나 사회적 약자의 최소한의 조건을 제외한 부분의 개인의 차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정액의 실업급여로 전환되었다. 이는 우선 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급여가 대폭 축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수급권자 선정에서도 실업자의 수입 및 저축정도와 배우자의 소득까지도 평가되어 대상자에 대한 선별성을 강화시켰다. 그러므로 수급권자와 수급권에서 탈락된 사람들은 더욱더 강제적으로 노동시장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특히 직업알선센터(job center)에서 제안한 일자리를 거절할 경우 급여액의 일정액 또는 전액을 삭감당할 수도 있다. 더욱이 실업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방안으로 정부는 ‘1유로 일자리’를 만들어서 현실 임금 수준과는 전혀 별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면서 ‘최저임금제’ 도입 논의가 촉발되었다. 이러한 강압적 실업지원정책의 개혁으로 실업률은 해마다 한 자리씩 감소되었다. 독일의 실업률은 2005년 11.7%, 2006년 10.8%, 2007년 9.0%, 2008년 7.8%, 그리고 2009년 5월 8.25%로 나타났다. 2005년 4,460,880명이 2008년 말 3,267,943명으로 26.7%(1,192,937명) 매우 감격스럽게 실업률은 감소하였다. 그러나 이와 실업률의 감소는 일자리와 삶의 질 안정으로 연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빈곤의 정도가 매우 심화되었다.
하르츠IV 개혁이후 2007년 말 사회부조 수급권자 중 빈곤율에 속하는 비율이 50%에서 66%로 무려 16%가 증가하였다. 이들은 중위소득의 60% 미만의 소득 생활자이고 특히 구 동독지역의 수급권자들의 경우 개혁 이전 연평균 10,400유로 수준의 소득이 개혁이후 8,800유로 수준으로 18%이상 하락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결국 하르츠IV와 1유로 일자리라는 강제적 조치는 가시적으로는 실업의 축소와 고용창출을 위한 정부 비용을 감소시켰지만, 실질적으로는 임금수준의 하락과 구조적 실업의 희생자와 빈곤층에게 심각한 빈곤의 덫에 걸려들게 하였다.
2009년 5월 24일자 일간지인 벨트(Welt)지에서는 월평균 소득의 60% 수준을 기준으로, 1인 가구원의 경우 765유로, 4인 가족의 경우 2065유로로 빈곤선을 잡을 경우 전체 독일인의 15%가 이에 해당한다는 충격적인 빈곤보고 결과를 보고했다. 또한 사회정책학자인 크리스토프 부터베게(Christoph Butterwegge) 교수의 조사에서도 국민의 약 13%가 빈곤선에 놓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여기서의 기준은 1인 가구 평균 월소득이 781유로(현재 환율 대비 약 133만원) 이하로 설정했다. 그러나 부터베게 교수는 생필품 및 주거비용의 물가인상을 고려했을 때 빈곤층은 약 2천만(독일 국민의 약 24%에 해당하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와 같은 빈곤율 증가는 실제로 독일인들에게 생의 위협으로 다가왔고 공급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민당이 주도하더라도 그 결과는 보수당의 그것과는 다르지 않다는 비극적 경험을 공유하기에 이른다.
좌파당은 이와 같은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하르츠IV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공공부문에 50만개의 일자리 창출과 시간당 10유로라는 최저임금 법제화를 선거기간 동안 홍보하였다. 이 공약에 유권자들의 마음이 미동했는지, 사민당에 대한 실망으로 당적을 옮겼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하려는 좌파 정책의 한계는 불과 10여년 만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좌파당의 10대 긴급강령의 내용
선거이후 좌파당은 총선과정 중에 공약으로 약속했던 정책들을 정리해서 ‘10대 긴급강령(10-Punkte-Sofortprogramm der LINKEN)’을 발표하였다. 정책은 크게 평화, 좋은 노동, 사회적 안전, 노후보장과 빈곤, 경제위기 책임, 기본권 보호, 그리고 에너지 전환으로 구분된다.
•평화
① 아프가니스탄에서 즉각적인 독일군의 철수와 독일 내 미 핵무기의 철수 요구
• 좋은 노동(Gute Arbeit)
② 수평적 법적 최저임금과 ‘동일노동-동일시간-동일임금’ 도입: 시간당 10유로의 최저임금 법제화와 여성, 남성, 동․서 지역, 비정규직(특히 도급노동자), 장애인 등에 대해 차별 없는 동일 임금
③ 대량실업 대신 2백만 일자리를 위한 해고보호법과 공동결정(Mitbestimmung) 강화: 해고보호를 위해 과거 해고보호법으로의 회귀, 도급노동 자유화 폐지를 위한 기업의 대량해고 금지 입법화, 경기부양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건강, 교육, 인프라 및 공공 영역의 적극적 투자
• 사회적 안전
④ 단기노동자급여(Kurzarbeitergeld) 및 실업급여I(Arbeitslosengeld I)의 연장: 단기노동자급여의 36개월 연장과 실업급여I 역시도 수급자 모두에게 24개월로 연장
⑤ 하르츠IV 전면 폐지
•노후보장과 동서간 형평성
⑥ 67세로 연금 수령연령을 상향하기로 한 개혁취소와 동서 지역의 연금 가치 동일화
•경제위기 책임
⑦ 저소득자 및 중간소득자의 부담경감과 신용경색(Kreditklemme, credit crunch) 해소: 저소득자 및 중간소득자를 위한 부가가치세 증대 거부, 연간 평균 3만 유로(약 5천만 원 이상) 소득자에 대한 월 평균 100유로 수준의 세금경감, 평균 월소득이 6천 유로(약 1천만 원 이상) 소득자에 대해서는 우선적인 과세, 재산세 및 사적 소유세에 대한 세율강화, 은행에 대한 국가적 통제 강화 및 은행의 사회화
⑧ 사회적 보호시스템을 위한 보호필터: 경제위기로 인한 국가재정 불안정성으로 개인의 추가적 비용과 보험료 상승이 예상되지만 사회보험 가입자와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원칙 구축
• 기본권 보호
⑨ 효과적인 노동자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법안 상정
• 에너지전환 달성
⑩ 원자력출구전략이 후퇴 또는 전환되지 않도록 함
이처럼 ‘10대 긴급강령’은 노동정책과 사회정책의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좌파당은 사민당의 집권기간 동안 약화된 사회연대와 노동권 강화를 주요한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우경화된 사민당의 11년 집권이 남긴 빈곤, 실업자 지원 축소 및 강제노동, 나쁜 일자리 증가에 대해 ‘신자유주의라는 어쩔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우지 않고 이와 대응해 싸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좌파당은 신자유주의와 개인주의화와 민영화에 대응하겠다고 밝힌다. 이들의 정책과 관점은 상당기간 ‘현실가능성’의 잣대로부터 배제되어 소수집단의 요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민당의 공급중심의 정책으로도 시민들의 삶이 나아질 수 없다는 경험은 소수 집단의 정책에 귀 기울이게 했고, 시민들에게 다른 가능성과 기대를 품게 하였다. 이에 좌파당의 새로운 도전은 향후 좌파적 성향의 정당들의 신자유주의와 시장에 대항한 21세기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주체로 유의미하다.
3. 결론: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치와 대응 가능한 사회복지 정치
독일의 사회국가는 1982년대부터 1998년까지 보수정권에 의해, 1998년부터 2009년 까지 사민당 정권(2005-2009년은 기민/기사 연합이 주도하였으나 슈뢰더 정권이 추진했던 아젠다 2010이 그대로 유지됨)에 의해 서서히 그 연대의 원칙이 최소화되면서 사회복지정책이 축소되어왔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시대 이전까지 사회복지 확대가 당의 주된 노선이었던 사민당의 우경화는 사민당 스스로 복지국가를 해체시키게 하는 우를 범하게 했다.
우경화된 사민당 스스로가 거부하지 못했던 ‘신자유주의의 외적 강제(neoliberalistische Sachzwang)'로 진행되었던 일련의 개혁조치의 결과로 인해 독일 시민들은 노동조건과 임금수준은 더욱 악화되고, 삶의 질은 하향화 되었으며, 사회보험을 통한 사회급여 역시 최소화되거나 민영화되었다. 사민당 지지자들은 그래도 보수당보다는 사민당이 그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11년 만에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기대였다는 점이 공론화되었다. 사민당의 최대 실책은 사회복지의 축소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지자들의 정치적 기대와 희망을 짓밟았다는 점이다.
새로이 형성된 흑황연정의 연정협약서(Koalitonsvertrag)가 공개되면서 독일 사회는 다시 한 번 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중심에는 세제 개혁과 의료개혁이 자리하고 있다. 세제개혁의 주된 내용은 소득세를 2011년부터 뚜렷하게 축소하여 해마다 2,400만 유로를 감세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의료개혁의 내용으로는 기업의 보험료부담을 경감하며 동시에 모든 가입자에게 정액제(Kopfpauschale, flat-rate System) 원칙을 도입해서 보험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세제개혁의 경우 소득세의 축소로 득을 볼 대상은 고소득자이고, 그 결과 국가 수입이 축소되어 국가는 복지정책에 대한 긴축재정을 강화하여 시민들과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갈 복지 혜택이 축소되고 더욱더 복지의 민영화를 가속화 시킬 전망이 높다. 의료개혁의 경우 독일이 126년 동안 유지해 오던 사회보험에 대한 노사간의 균등 책임원칙을 해체하면서 결국 가입자 및 시민 개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러한 개혁에 대해 보수주의적인 조세 전문가, 보수당 내 사회정책 담당자들 역시도 상당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흑황연정의 한 주체인 자민당(FDP)에 대해 선거운동을 후원하던 집단들을 살펴본다면 이러한 연정협약서가 체결된 배경이 짐작된다. 자민당의 주요 정치 지지세력들은 의사, 치과의사, 민간보험회사, 약사, 제약회사, 민간병원자본과 같은 의료계 인사와 변호사와 같은 고소득 전문가 집단이다. 전자의 경우 공적 시스템의 역할이 아직 강한 독일의 의료시스템을 최대한 시장화하여 의료자체를 상품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민당은 이들로부터 적극적인 정치지원 자금을 받아왔고 자민당의 의료정책의 주요 로비스트들 역시 이들로 구성된다. 더욱이 흑황연정에서 보건부장관이 자민당의 필립 뢰슬러(Philipp Rösler)라는 점이다. 그는 의료개혁을 제안하면서 신자유주의에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경쟁’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미 사민당 정권에서 수용했던 질병금고조합의 경쟁원리에서 얻었던 결과는 가입자에 대한 이층화 전략이었다. 즉 위험이 높은 그룹(소득이 낮고 질환위험율이 높은 대상자)과 위험이 낮은 그룹(소득이 안정적이고 젊고, 건강한 대상자)으로 보험 가입자들이 분류되어 이미 시민들로부터 원성을 사왔다. 자유주의자들의 일관된 시장화 논리는 자유와 경쟁을 통해 보다 좋은 서비스가 달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독일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보다 좋은 서비스’가 아니라 ‘보다 안정적이고 보장성 높은’ 공적 의료시스템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기본적 요구는 당분간 연방 의회 내에서 관철되기 힘들어 보인다. 연방의회의 총 의석수 622석 중 집권여당의 의석수는 332석이고 야당 모두의 의석수는 290석이다. 한국과 같이 야당의 의석수를 모두 합해도 여당의 의석수를 견제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러한 상황일수록 노동조합 및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개입이 더욱 중요하다고 베어하임과 펠트-프리츠는 말했다. 사민당과의 불편한 동거를 노동조합은 평가하고 정리하여 노동자와 시민들을 위한 노동정책과 사회정책을 위해 투쟁해야 할 시기라고 밝혔다.
좌파당과 베르디가 공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민보험(Bürgerversicherung)은 이미 독일노총인 DGB의 모델로 제안된 바 있다. 시민보험은 보수 및 자유주의자들이 공적 의료보험제도를 다양한 방식으로 약화시키려는 시도에 대응해서 제안되었다. 시민보험은 재정확대를 통해 기존 사회보험의 원리를 더욱 강화시키고자 한다. 현재까지 고소득자, 불노소득자, 공무원 등은 공적 의료보험체계로 흡수하는 강제적 규정이 없었다. 사회보험이 민간보험과 다른 큰 차이는 납부한 보험료와 상관없이 동일한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누구나 그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인 의료보험 개혁은 꾸준히 보험 급여를 통한 혜택을 줄여왔고 보험료 재정형성에 있어 자본의 책임부분을 축소시키려는 꾸준한 시도가 진행되어 왔다. 결국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시민일수록 의료부분에서도 불평등한 조건에 놓이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그러므로 의료보험의 안정적인 재정 확보를 위해서는 위에 언급된 대상자들을 강제적으로 사회보험으로 가입시켜야만 한다. 또한 이들이 보험료 부과기준은 소득뿐만 아니라 재산에도 부과기준을 적용하여 의료보험제도를 통한 실질적이고 수직적인 소득 재분배 기능을 확대를 목적으로 한다. 이제까지 독일의 사회보험은 직종 및 직업에 따라 또는 지역에 따라 모두 다른 금고에 가입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정치인과 고소득자로부터 불안정고용층에 이르는 시민까지 단일 체계내로 통합하려는 것이다. 이제까지 사회보험개혁에서 사회적 약자가 점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개악되어왔다. 그러나 시민보험에서는 보험의 수입구조에서는 소득과 재산에 따른 누진률을 강력하게 적용하는 반면, 보험 급여에서는 보험료 수준과 관계없이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고 본인부담부분을 폐지하려고 한다.
더불어 좌파당은 실업자와 빈곤층을 위한 '필요지향적 최저보장(bedarfsorientierte Mindestsicherung)'을 요구하고 있는데 월 860유로(약150만원미만)의 사회적 급여가 최저 임금도입(시간당 10유로)과 함께 도입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사회복지 정치는 더 많은 시장화를 통한 복지의 재상품화 및 민영화를 위한 질주를 계속하고 있고, 이에 대응하는 사회복지 정치는 ‘사회적 연대 가치’의 복원을 통한 사회보험의 공적 기능 강화와 불안정 고용층 및 빈곤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노동연계복지의 전략으로부터 구출해 내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다층화와 사회계층의 다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정책 모형은 비단 독일의 경우뿐만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에 고전적 사회복지 모델이 가지고 있었던 가치의 복원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극대화된 시장에 대응하고 새로운 계급지형과 계층지형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 전략의 발전이 요구된다. 독일의 좌파당 역시 가치의 복원수준에서 멈춘다면 사민당이 겪었던 오류를 반복할 수 있다. 더욱 왼쪽으로 가는 것 역시도 이 시대의 요구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