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촛불은 어두운 곳을 밝히지 못했나 |
촛불은 기적인 동시에 트라우마였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가장 많은 이가 정치적 행위를 벌였다는 점에서 기적이고, 그 에너지가 일순 사그라졌다는 점에서 트라우마였다. ‘촛불은 과연 무엇이었나’를 자문하는 논의가 뜨겁게 분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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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2009년 04월 27일 (월) 14:30:34 |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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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촛불집회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촛불은 용산 철거민 참사(위)처럼 사회적 약자의 곁을 지키지는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
촛불은 아름다웠다. 10대 소녀들의 손에서 점화된 작은 촛불이 삽시간에 물결이 되어 퍼져나가는 모습은 경이로운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먹을거리를 나누고, 쓰레기를 함께 치우는 솔선수범은 연대와 나눔의 아름다움이었다. 촛불집회를 통해 “때에 찌든 일상이 정화되었다”라거나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고백한 이들도 있다.
“수백만 시민이 주권자로서 분명한 자의식을 갖고 그토록 오랜 기간 거대한 하나를 이룬 것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이었다”(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태어나면서부터 시장 원리를 철칙으로 배워온 구성원들이 마침내 교육·의료·물·공영방송 등 공공성을 제기한 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라는 학자들의 지적도 옳다. 박영선 참여연대 기획위원장의 말처럼 촛불에 대한 사회적 기억은 이제 한국 사회 ‘정체성의 토대’로 작용할 만하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 앞에서 촛불은 일순 흔들린다. ‘왜 비정규직 문제나 용산 참사 때 촛불은 그렇게 미약했을까?’ ‘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후보가 승리했을까?’ ‘촛불집회의 탈정치적 분위기는 무얼 말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2008년 촛불의 한계를 과감하게 지적하고 나선 이들이 있다. 최근 출간된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를 통해서다. 앞다투어 촛불 예찬에 나선 지난 비평들과 달리 촛불에 거리두기를 시도한 책이다.
‘명박산성’ 넘은 다음 할 일이 없었다
“촛불집회의 전개 과정에서 놀라운 점은 그토록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올 수 있었던 점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와서 저항을 했음에도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어떤 담론도 체계적으로 형성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학계에서 운동권, 그리고 저널리즘에서 누리꾼에 이르는 2008년의 불문율 가운데 하나는 ‘촛불을 사랑하라’는 명령이었다. 모두가 촛불을 사랑했다. …그러나 촛불 이후 우리 사회가 진보하기는커녕 촛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더욱 악화되는 현실 앞에서 그저 쓴웃음만 짓게 할 뿐이다.”(정용택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회원)
실제로 담론은 물론이고 현실 정치의 영역에서도 촛불은 그 엄청난 열기를 반영할 만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촛불 지지자들이 가장 좌절했던 사건 중 하나가 지난해 7월30일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후보가 당선한 일이다. 당시 촛불 시민에게 뜨거운 지지를 얻은 주경복 후보는 근소한 표차로 떨어졌다. 강남구·서초구·송파구 등 강남 3구에서 공 후보가 크게 앞선 탓에 ‘강남 몰표의 승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탈정치’ 징후를 포착한 이들도 있다. 가령 <88만원 세대> 공저자 박권일씨는 “MB는 꼴 보기 싫어하면서도 정작 교육감 선거에는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이 너무 많았던 것, 그것이 진짜 원인일 듯하다. 건조하게 말해서, 이들에게는 MB를 향한 분노보다 교육감 선거의 기회비용이 더 컸다”라며 정치 냉소주의가 창궐할 것을 염려했다. 실제로 당시 촛불시위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20%까지 떨어지는 와중에도 한나라당 지지율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MB OUT’ 구호가 ‘야당 지지’로 이어지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정치 이야기만 꺼내도 회원을 ‘강퇴’시키던 메이저리그 야구 동호회나 패션 카페 등이 촛불집회에 나온 것은 사실 정치적으로 뜻 깊은 사건이었다. 문제는 그런 촛불 시민 상당수가 여전히 현실 정치를 깊이 혐오한다는 점이다. ‘민주당 재수 없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설치지 마라’로 집약되는 다음 아고라 분위기는 오프라인 촛불집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확성기를 통해 집회 참가자를 선동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민중운동 단체 ‘다함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택광 교수는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대립구도는 ‘좋은 정치 대 나쁜 정치’라기보다 ‘정치가 대 국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민이 정당정치 내로 들어가서 자기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와 국민의 힘 겨루기로 촛불집회를 파악하는 경향이 다분했다”라고 분석했다.
이런 ‘탈정치화’ 경향은 시위 내내 ‘비폭력’ 구호와 맞물리면서 더욱 깊어갔다. 예컨대 촛불집회에서 드라마틱한 순간 중 하나였던 6월10일 ‘명박산성’ 점령 때만 해도 그랬다. 당시 명박산성을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참가자 사이에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산성을 넘는 순간 폭도로 몰릴 테니 그만두자는 쪽과, 산성 자체가 폭력인데 왜 가만히 있느냐는 쪽으로 갈렸다. 격론 끝에 스티로폼을 쌓고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깃발을 흔드는 것으로 이날 집회의 대미를 장식했지만, 이들에게 명쾌한 정치적 선택지는 없었다. 유영주 인터넷 매체 ‘참세상’ 편집장은 “산성을 넘어야 한다는 절박함은 강렬했지만, 우리에게는 장벽을 넘은 다음 뭘 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100만명이 모인 날 밤, 시민들은 대안 부재에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6월10일 이후 이명박 정부는 강경 진압을 펼쳤고, 시위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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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문제로 모였던 촛불 시민(위)이 이제는 ‘언론 공공성 수호’ 같은 범사회적 의제로 모이고 있다. |
촛불의 또 다른 ‘어두움’은 촛불이 비정규직과 용산 철거민 등 사회 약자가 있는 곳을 밝히지 못했다는 데 있다. “비정규직 이슈가 촛불에 묻히는 걸 보면서 절망스러웠다”라는 김경욱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의 말은 진보 진영 내에서 두고두고 회자됐다. “10년 뒤 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는 쇠고기 수입 반대에는 그렇게 열정적인 시민들이 당장 생존권을 박탈당한 비정규직 문제에는 의외로 차가웠다. 촛불은 아름다웠지만 계급 문제에 대해서는 무력하고 둔감했다”라는 이랜드 노조원의 말도 듣는 이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혹자는 이를 통해 촛불 시민의 ‘정체성’을 파악하기도 한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비정규직 노동자 여러 명을 인터뷰한 결과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들을 찾기 어려웠다며 이렇게 말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동 형편이나 삶의 지위만 한국 사회에서 주변부인 것이 아니다. 촛불집회에 대한 인식이나 참여 역시 주변부였다. 촛불집회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결코 참여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내가 촛불집회 참석자 상당수가 중산층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게 그때부터다.”
여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촛불시위의 주된 참가자는 여성이었다. ‘촛불 소녀’가 그랬고, ‘82cook’ ‘소울드레서’ 따위 참여 단체가 그랬다. 하지만 촛불은 여성 내부의 불평등은 비추지 못했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촛불집회에 나올 수 있는 여성은 하루 12시간씩 일해야 간신히 월 1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최소한 중산층 여성은 되어야 그 시간에 촛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에 여성이 거론되는 건 강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촛불이 비추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어디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촛불 평가, 과도한 상찬 일색이었다”
촛불에 대한 이런 염려는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에 동의하는 일부 학자의 것만은 아니다. 촛불의 스펙터클을 ‘긍정적으로’ 기록한 책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에서도 차병직 변호사는 “촛불집회 평가 작업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과도할 정도의 상찬 일색이었다. …우리 학자들은 시민권이 발동되는 역사의 현장을 구경하고 감상할 줄만 알았지. 정확히 평가하고 다수가 수긍할 만한 지침이라도 제시했는가”라며 촛불과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지식인들이) 촛불집회에서 나타나는 대중 자율성의 낙관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그 자율성이 넘어서지 못하는 경계들을 지적하고 그 한계를 드러냈어야 했다”라는 백승욱 교수의 지적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런 지적은 결국 2008년 촛불의 의의를 새롭게 환기해준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촛불의 양질 전환’을 기대하는 이들이다. 촛불이 비정규직을 외면했다는 지적에 대해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애초 가족 이기주의로 시작한 미국 쇠고기 문제가 정부의 책임을 묻는 공공성 영역으로 확장됐듯이, 비정규직 문제도 사라지고 마는 게 아니라 앞으로 다른 사회 의제와 결합해 큰 이슈가 될 것이다”라며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신진욱 교수 역시 “하나의 저항 행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짊어진 문제를 다 담으려는 건 무리다.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다. 오히려 쇠고기 문제 때문에 거리에 나온 시민 중 일부가 추후 기륭전자 투쟁이나 미디어 공공성 문제에 대해 후원금을 내는 등 변화된 양상을 보이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라며 촛불시위를 성급하게 재단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신 교수는 특히 촛불집회에 참가한 중산층에 대해 해석을 달리한다. “촛불시위 참여자를 분석한 통계를 보니 지난 선거 때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찍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그들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뉴타운 공약에 반대했다. 이들에게 이기적 중산층 이미지를 덧씌우는 건 정치적으로 옳지 못하다”라는 게 신 교수의 의견이다. 일부 비평가의 지적처럼 촛불 시민이 ‘부동산’과 ‘내 새끼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소시민은 아니라는 것이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잠시 흩어졌을 뿐
물론 촛불은 ‘청산’ 대상이 아니다. 촛불은 보이지 않는 ‘무형 자산’을 많이 남겼다. 윤여일 ‘수유+너머’ 연구원은 지난해 ‘레디앙’에 기고한 글에서 “아고라를 통해 국민이 사회 이슈를 학습하면서 뉴라이트, 조·중·동 등 우리 사회의 권력 관계에 대해 총체적으로 읽어내기 시작한 점이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은수미 연구위원도 “불과 2~3년 전만 해도 파업 노동자에게 욕설을 퍼붓던 ‘아고라’ 누리꾼이 지난해 화물연대와 YTN·MBC 노조의 파업이 정당하다며 지지하는 걸 보며 격세지감을 느꼈다”라고 털어놓는다. 민노당의 한 관계자도 “촛불이 아니었다면 의료 민영화나 공교육 문제 등에서 진보 정당이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후보가 당선한 것도 그동안 축적된 촛불의 힘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택광 교수도 “그동안 정치적으로 배제돼 있던 10대나 직장인 여성이 대의제 민주주의에 한계를 느끼고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왜 촛불을 들었는지, 그들을 대의하는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지식인의 몫이다”라고 지적한다.
결국 양쪽의 생각은 비슷하다. 어찌해야 촛불의 힘이 구체적인 정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촛불이 계속 타오르기를 기대하는 이라면 다음과 같은 신진욱 교수의 생각에 희망을 걸어야 할 것 같다. “촛불은 워낙 스펙터클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은 촛불이 꺼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흩어진 것뿐이다. ‘언론소비자주권연대’ ‘진실을 알리는 시민’ 등 촛불집회 이후 새로 생긴 운동단체가 무척 많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흩어진 이들이 ‘촛불 민중’으로 다시 모여 새로운 정치적 힘을 만들어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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