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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시사인: 국민 혈세 담보로 '위험한 도박'
번호 170 분류   뉴스 조회/추천 1901  
글쓴이 사회공공연구소    
작성일 2009년 03월 27일 09시 26분 11초
국민 혈세 담보로 ‘위험한 도박’
한국투자공사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운영 실적이 형편없다. 수익률은 마이너스이거나 제로이다. 국민연금과 외환보유고가 볼모로 잡혀 있다.
 
[80호] 2009년 03월 24일 (화) 12:37:52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미국 월스트리트발 금융 위기가 터진 지난해 ‘악몽의 9월’.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글로벌 금융 허브’를 꿈꾸며 설립한 한국투자공사(KIC·사장 진영욱)의 첫 번째 투자 야심작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투자공사는 지난해 1월 ‘전략적 직접 투자’라는 이름으로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되는 신세가 되었고, BOA 주가는 곤두박질쳐 5달러 안팎 수준이다. 투자할 당시 주가는 주당 52.4달러였다. 미국 정부가 BOA를 국유화할 경우 투자공사의 손실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투자공사는 글로벌 금융 위기라는 대외 상황을 그 원인으로 돌리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성식 의원(한나라당)은 메릴린치에 투자를 감행한 홍석주 전 사장을 상대로 “일주일 동안 급하게 (투자 결정이) 이루어진 이유가 뭐냐”라고 따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1월, 최종 투자 결정에 임박해 열린 운영위원회 회의에서는 신중론이 적지 않았다. 당시 회의록(비공개)에는 “경기 침체에 따른 주가 하락, 서브프라임과 관련해 미국에서 집단 소송이 발생할 수 있으니 이런 점을 감안해 투자를 자제해야 한다”라는 구체적인 지적까지 담겨 있었다. 게다가 2007년 8월 터진 서브프라임 사태로 해외 투자은행의 실적이 급속히 나빠지고 금융시장의 불안이 증폭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홍 전 사장은 “좋은 투자 기회는 촉박한 시간 안에 결정을 요한다”라며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같은 투자공사의 무리수에 대해 ‘조직의 과도한 생존 논리’를 지적하는 견해가 많다. 출범 3년차인 투자공사가 수익률 성과를 내기 위해 위험부담이 큰 주식투자로 손실을 더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국투자공사는 태생부터 말이 많았다. 2003년 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2000억 달러가 넘어 세계 4위 규모. 외환보유고의 운용수익률을 높여보자는 것이 그 첫째 설립 이유였다. 외환보유고를 운영해온 한국은행에서는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또한 한국투자공사 폐지 법안을 준비하던 심상정 전 의원은 “외환 위기의 경험을 벌써 잊은 것이냐”라며 외환 부족에 따른 유동성 위험을 강하게 경고했다. 그런데도 투자공사는 참여정부가 내세운 ‘동북아 금융 허브’ 육성 방안과 연계 추진되었다. 외환보유고를 재위탁하는 ‘미끼’로 세계적인 투자은행과 금융 인재를 국내로 끌어들이자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2005년 6월 설립된 투자공사는 ‘국민자산 집어삼키는 블랙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자본금 1000억원(기획재정부 100% 지분)으로 출발했지만 지난 3년 동안 누적 손실액은 2008년 상반기까지 103억원. 그 와중에도 임원들의 고액 연봉과 성과급 인상은 논란이 되었다. 주 업무인 자산운용 분야의 손실은 더 컸다. 한국은행이 외환보유고에서 170억 달러를, 기획재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에서 78억 달러를 위탁해 투자공사의 운용자금은 248억 달러에 이르지만 성적은 저조했다. 특히 2008년 실적은 급전직하였다. 200억 달러를 투입해 거둔 수익률은 -13.71%를 기록해 27억4200만 달러 손실을 입었다. 여기에 메릴린치 투자 손실분 14억5000만 달러를 보태면 성적은 더욱 나빠진다. 투자공사의 존폐 논란이 다시 제기되는 건 그 때문이다. 외환보유고가 불안하고 경상 수지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여유 외환자산을 가지고 ‘돈놀이’를 해보자는 당초 설립 취지가 무색해진 것. 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는 정부 처지에서 새로운 국책금융기관을 키운다는 것 또한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 국회에는 한국투자공사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다. 제정안 수준의 대폭 손질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자기자본의 30배(3조원)까지 채권 발행이나 차입을 허용하고, ‘외화표시 자산 운용’ 조항을 삭제해 국내 투자도 가능하도록 열어두었다. 일각에서는 국내 연기금의 위탁 운용까지 노리는 것 아니냐는 염려도 나온다(44쪽 상자 기사 참조). 투자공사는 자산 규모를 1000억 달러 수준으로 높여 투자 파이를 키우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여당에서조차 투자공사 무용론이 나온다. 외부 환경이 나빠진 것은 물론이고 투자공사의 마이너스 실적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규모를 늘리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통과될 리는 난망해 보인다. 그런 와중에도 투자공사 설립을 강력히 추진하고 그동안 위탁 규모를 꾸준히 늘려온 기획재정부는 올해 외평기금에서 50억 달러를 추가 위탁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미, 한·중·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는 마당에 투자금으로 빼돌릴 외환 여력이 어디 있느냐는 시선이 따갑다. 한국은행은 추가 위탁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국민 자산만 삼켰다? 수업료다?


올해 국민연금공단(NPS·이사장 박해춘)은 연말 결산을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상 최초 마이너스 수익률’이라는 오명을 간신히 비켜가 ‘수익률 제로’로 맞췄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사상 최악의 실적이긴 마찬가지다. 공단 측은 “세계 금융 상황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라고 위안을 삼지만 투자 내역을 들여다보면 위험천만한 요인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마디로 주식에서 왕창 까먹고 채권으로 메운 결과였다(아래 표 참조). 2008년 말 기준 국민연금공단의 자산 규모는 236조원. 올해 예산 규모가 284조원이니 국가 재정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수익률을 높여 기금 고갈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가 주식이나 채권 투자에 국민연금을 동원해온 이유다. 투자 방식은 99%가 금융 투자다(2008년 말 기준, 국내외 채권 81.9%·주식 14.4%). 문제는 안전 자산인 채권 투자는 줄어들고 ‘고위험·고수익’을 노리는 주식 투자 비중이 증가해왔다는 점이다.

지난해 주식 투자에서 19조원을 날린 국민연금공단은 2009년 기금운용계획안에서 국내 주식의 투자 목표치를 20.3%에서 17%로 낮춰 ‘위험률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지난해에 국내 주식 투자 목표치는 17%였지만 주가 폭락으로 시가평가액이 급감하면서 주식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2%로 줄어든 상태. 이 기준에서 보면 올해 목표치는 5% 증가한 셈이고, 최근 다시 기금운용위원회에 제출된 수정안대로 ±7.0% 허용범위를 반영하면 올해 국내 주식에 실제 투자 가능한 연금 비중은 10∼24%에 이른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국민연금을 주식 투자에 동원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커진 셈이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정부가 국민연금을 증시 부양책으로 활용한다는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목표치’를 낮춰야지 ‘변동폭’을 늘리는 건 연금이 정책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를 높이는 꼴이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위험성은 이미 지난해 상반기에 신호가 왔다. 5월 주식 투자 수익률이 국내 주식 -0.6%, 해외 주식 -3.7%를 보였던 것. 상황은 그 뒤 더 나빠졌다. 그런데도 무슨 일인지 공단은 주식 투자 비중을 줄이기보다 더 늘렸다. 이에 대한 의혹은 최영희 의원(민주당)을 통해 제기되었다. 정치 외압설이다. 최 의원은 “박해춘 이사장이 기금운용이사와 함께 8월27일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을 면담한 이후 국민연금기금이 9월 한 달 동안 국내 주식시장에서 1조9654억원 순매수해, 하락하는 증시의 안전판 노릇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1월부터 8월까지의 매수액을 모두 합쳐 1조4667억원에 그친 것에 비하면 9월 한 달 동안의 매수 규모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8월 중에 1500선이 무너지고 9월 들어 1400선이 차례로 붕괴된 정황을 복기해보면 더욱 의아하다. 9월 중순, “나라면 펀드에 가입하겠다”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연금공단의 매수를 부추긴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물론 공단 측에선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해 단지 목표치일 뿐, 시장 상황에 따라 매수와 매도가 이뤄지는 것은 기본 원칙이라고 항변하지만 국민연금이 나 홀로 남아 주식을 떠받치는 ‘외통수 운명’은 염려를 사왔다.  
 
정부의 국민연금 고수익 전략은 좀더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한마디로 ‘민간위탁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투자 결정은 각부 장관과 가입자 대표들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이뤄졌지만 이를 ‘민간투자 전문가’로 구성된 별도의 기금운용공사로 독립시켜 운영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와 가입자 대표들의 전문성 부족과 정치적 독립성을 이유로 국민연금을 민간 투자회사에 맡기겠다는 발상이지만 반발이 거세다. 정치의 품을 떠난 국민연금이 자본의 품에 안기는 처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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