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방안에 따르면 오는 2012년까지 27개 공기업이 민영화되고, 69개 기관의 인력 1만9천명이 줄어든다. 공기업 개혁에 대한 논의보다는 인력축소와 경영효율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공공연구소(소장 강수돌·고려대 교수)가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 ‘아르헨티나 민영화의 교훈’은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98년 집권한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사울 메넴 대통령은 세계 초유의 속도로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1년,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 사태를 겪었고 지금은 재국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03년 우정사업, 2006년 상수도사업, 지난해 항공과 연금 분야까지 재국유화 대상이 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무엇보다 아르헨티나 공기업 개혁 과정에서 설득력 있는 대안의 부재가 민영화 지상주의로 이어졌다는 것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이용해 경제적 번영시대를 보낸 아르헨티나는 1929년 대공항으로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졌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워 공기업체제를 형성했다. 1922년 국영석유회사가 창설됐고, 1928년 석유산업이 국유화됐다. 건설·철도·가스·통신이 잇따라 국유화되면서 국가독점기업체제가 형성됐다.
그러나 70년대 말 군사정부가 공기업 명의로 외채를 들여온 후, 80년대 국제적인 고금리로 정부의 공공외채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게 된 아르헨티나 정부는 공기업 지출을 대폭 축소시켰다. 다수 공기업의 자산이 침식상태에 이르고 서비스 질이 급격히 나빠졌다.
이런 가운데 89년 메넴 정부가 집권했다. 그는 행정부의 명령으로 공기업 매각이 가능토록 한 ‘국가개혁법’을 통해 강력한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공기업 개혁에 대한 다양한 대안은 논의되지 못한 채 민영화 정책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채택된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공기업 민영화는 일자리를 파괴하고 실업을 급증시켰다”고 지적했다. 민영화 시대 이전인 85년 공공부문 일자리는 아르헨티나 전체 일자리의 36.11%를 차지했다. 92년에는 21.35%, 97년에는 불과 6.5%만 공공부문 일자리였다. 연구소는 “85년 35만개에 달했던 공공부문 일자리가 10년 만에 2만7천개로 줄었다”며 “공공부문 일자리 파괴는 공기업 민영화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다.<표 참조>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공공부문 고용규모 축소는 민영화 도입시기인 91~92년 사이 가장 심각했다”며 “공기업이 민영화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인력 합리화라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정훈 연구원은 “민영화 정책은 아르헨티나 국가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며 “대외 의존적인 경제구조가 심화됐고, 저소득층의 공공요금 부담은 더욱 늘어 사회양극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진영이 공기업 개혁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