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칼럼> 대한민국 소한민국 강한민국 (2009. 3. 6)
(서울=연합뉴스) 채삼석 편집위원 = 겨울 가뭄 끝에 봄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렸다. 그런데 생활속에 마음속에 봄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이 땅에도 경제적 한파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 2007년부터 한계에 이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부실 사태가 대출 은행을 위기로 몰아넣더니 패니메이, 프레디맥에 이어 리먼 브러더스, 메릴린치 등이 잇따라 파산했다. 월가가 공황 상태에 빠지고 주식, 펀드가 폭락했다. 여태껏 미국에서만도 파산한 은행이 십여 곳에 이르고 앞으로 줄도산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은행들이 채권을 매개로 파생상품을 만들어 '돈이 돈을 낳는' 작업을 마구잡이로 하더니 결국은 '돈이 돌지 않아' 덫에 걸리고 말았다. 고려대 경영학과 강수돌 교수(사회공공연구소장)는 4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사순절을 맞아 마련한 '경제와 소비, 그리고 가난' 주제의 특강에서 "마침내 올 것이 왔다."며 이렇게 진단했다. 강 교수가 최근 출간한 '사람도 살리고 자연도 살리는' <살림의 경제학>에 연결되는 내용이다.
얼마 전부터 미 연방정부는 시장만능주의 논리를 스스로 깨며 7천억 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구제금융으로 시장에 개입했다. 유럽에서도 무려 1조 7천7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으로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그럼에도, 현재의 세계 금융 위기와 그에 따른 실물 경제 위기, 고용 위기 등 전반적 상황은 불확실성 그 자체다. 우리도 안팎의 정황이 거의 마찬가지라 그간 유용했던 수출 해법으로도 타개가 쉽지 않게 됐다.
세계경제 부실화의 주범격인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이란 무엇인가? 신용 등급이 낮은 이들을 상대로 고금리의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집을 담보로 잡고 집 시세의 100% 수준으로 대출한다. 이때 돈을 빌리는 자와 돈을 빌려주는 자는 어떻게 이익을 얻는가? 빌린 자는 집을 담보로 집에 투자(투기)를 한다.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집을 되판다. 빌린 돈을 갚고도 시세차익이 생긴다. 빌려주는 기관은 고객에게서 높은 금리를 챙기고 고수익 채권도 팔아 돈을 번다. 언뜻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장사다. 마술 같은 일이다. 돈이 없어도 은행에서 빌려 집만 사면 돈이 쏟아진다. 은행도 벌고 나도 벌고 나한테 집을 산 사람도 또 시간이 지나면 돈을 번다.
이 게임이 잘 작동하기 위한 전제는 무엇인가? 두 가지다. 하나는 집값이 부단히 올라야 한다. 그래야, 시세차익이 생긴다. 둘째는 새로 집을 사려는 자가 부단히 나와야 한다. 그래야, 먼저 산 자가 차익을 남기고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다. 나중에 산 자는 비록 고금리 대출로 비싼 집을 샀지만, 또 다른 뒷사람에게 더 고가에 팔아 차익을 남길 수 있다. 그런데 계속 집값이 오르고 집 살 사람이 계속 나올까? 물론, 아니다. 따라서 결과는 부동산 거품의 붕괴다. 이번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돌고 돌아야 할 돈이 못 돌아 세계적 투기 게임이 끝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조각난 펀드 열풍의 후유증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회주의도 문제지만 이번 세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주의의 맹점들이 명백하게 드러난 만큼 제3의 길을 대안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문구에 현혹됐다 깨어나 냉혹한 현실에 눈뜨기 시작했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오래전부터 '자발적 간소함'이나 '비움과 나눔' 또는 '청빈과 청부'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종교적으로 덕이 높은 스님들이나 수도자들은 직접 이를 실천해오고 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산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누군가 물질적으로 잘 살려면 대개 낭비속에 쓰레기가 양산되고 다른 사람이나 자연 생태계가 희생을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자연 자원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인간의 삶 자체도 위협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때문에 아예 섬나라 투발루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한 경우는 가장 실감이 나는 사례다. 게다가 매일 136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세계 곳곳에서 3초마다 1명이 굶어 죽고 있다는 통계도 있지 않은가.
녹색연합과 생협전국연합회, 전국귀농운동본부 등이 4일 서울 장충동 2가 우리함께회관에서 주최한 '경제위기와 民의 대안' 토론회에서도 여러 제안과 방법론이 나왔다. 한살림의 박재일 회장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는 생활양식으로는 이제 더는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라며 "도시와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가 협동해 생명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공동체 운동을 확대하는 등 근원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실천을 위한 방법론은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하겠지만, 경제현실에 대한 이들의 문제의식은 경청할 만하다.
요즘의 경제 위기는 우리가 부자든 아니든 모두가 검소하고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동구식 공산주의가 몰락한 데 이어 서구식 자본주의도 이번에 큰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평소 검박하게 절약하는 생활을 해온 사람들은 오늘날 거품경제의 후유증을 상대적으로 더 잘 견뎌 낼 것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라는 성경의 글귀와 함께 옛 선비들의 안빈낙도 정신도 새겨 볼 때다. 다른 제3의 바람직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우리가 땅덩어리가 큰 나라는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강한 국민은 될 수 있다. 우리 실정에 적합하게 대한민국 대신 소한민국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 않은가. 작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국민이 사는 강한 나라를 꿈꾸며 실현해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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