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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를 찾는 한 구직자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장교동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생활정보지의 구직난을 뒤적이며 취업 정보를 메모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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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삭감 압박 앞서 노·사·정 공감대 필수 사회안전망 강화·고용불안 덜 대안 내놔야
‘일자리 나누기가 결국 임금만 깎자는 거 아니야?’
이명박 대통령이 임금을 낮춰 고용을 유지하는 ‘일자리 나누기’를 강조한 데 대한 노동계 반응은 차갑다. 노동자한테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서다.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 논의 확산에 팔을 걷어붙일 태세다. 노동부는 오는 19일 세제 혜택 등 구체적인 일자리 나누기 지원 대책을 발표한다. 노동계와 진보 진영의 고민도 깊다. 지난 8일 전국금속노동조합의 대사회선언에 이어, 진보신당은 지난 16일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 정부 ‘임금 삭감’ 압박만 해고 대신 일자리를 나누자는 주장은 1998년 외환위기 때 노동계가 먼저 꺼냈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더 적극적이다. 대량 실업으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갈등만 키웠다는 지난 10년 동안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노동부는 임금 삭감과 고용 보장을 맞바꾸는 ‘양보교섭’을 개별 기업들한테 독려하고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일자리 나누기’의 첫번째 전제조건은 임금 삭감이다. 정부나 기업의 고통 분담은 보이지 않는다. 노동계가 반발하는 이유다.
논의 방식도 문제다. 일자리 나누기는 노·사·정의 공감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네덜란드나 독일도 정부가 실질임금 보장을 위한 세금 감면 등 지원책을 내놓고 노사정 대타협으로 일자리를 나누는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정부는 양보 교섭만 강조할 뿐, 노동계와의 대화엔 소극적이다.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이 “교섭 자리에서 임금 동결을 논의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정부와 사용자단체는 시큰둥하다. 노사정위원회가 추진하는 일자리 관련 노사정 대타협도 지지부진하다.
노동계가 이런 논의에 선뜻 나서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해고 유연화 등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는 정부 태도가 그것이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친기업적인 정부가 노사정 협약을 지킬 의지가 없어 보이니까, 노동계도 자기 검열을 통해 적극적인 제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노·사·정 대화 먼저 ‘일자리 나누기’ 논의가 본격화하려면, 임금, 노동시간 단축, 교대제 개편 등을 놓고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노사정위원회뿐 아니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끌어들일 또다른 교섭 틀로 산별 교섭이나 지역별 교섭 등이 있다.
임금 삭감만 강조해서는 사회적 합의의 첫 단추조차 꿸 수 없고, 정부가 저임금 노동자 보호나 사회안전망 강화 등 ‘최소한의 울타리’를 쳐줘야 한다는 게 다른 나라의 경험이자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독일 폴크스바겐은 급격한 생산수요 감소를 주 4일제(주 28.8시간 노동) 도입이라는 실험을 통해 대처하면서 임금 삭감을 보너스로 보전해 줬다”며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분을 노동자, 기업, 정부가 어떻게 메울 것인지 사회적 비용분담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자 쪽도 말로만 고용 보장을 약속할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을 덜어 줄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본급 등 고정 임금 비중을 늘리거나, 업종별로 고용안정기금을 조성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10대 그룹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43조원에 이르는 만큼,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도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노조도 현실적으로 임금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연대’ 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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