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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한겨레21: [오건호복지부동] 누려야 깨치는 복지열망
번호 61 분류   조회/추천 950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1년 04월 18일 20시 27분 32초
누려봐야 깨치는 복지의 열망 [2011.03.23. 제853호]
 
 
 
[오건호의 복지富동] 무상급식이라는 ‘복지 체험’이 불러온 복지 담론의 만개…
진취적인 논쟁 통해 복지국가로 가는 기회 잡아야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복지를 이야기한다. 복지재원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담론의 봇물 속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는 오히려 부족한 상황이다. 복지국가로 가는 차원 높은 로드맵을 제시하기 위해 줄곧 복지정책에 대한 연구와 모색을 해온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의 칼럼을 연재한다. ‘오건호의 복지富동’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서구 복지국가의 성공 과정과 복지의 지평을 넓힐 사회연대 전략, ‘세금폭탄론’의 허구성, 증세 해법 등을 제시할 예정이다. _편집자

 

복지를 주제로 강연할 때마다 청중에게 하는 질문이 있다. “여러분이 살아 있는 동안 우리나라가 복지국가가 되리라고 자신하세요?”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복지국가라 함은 스웨덴이나 독일처럼 병원비·노후 걱정 없이 사는 나라라고 설명을 곁들인다. 안타깝게도 손을 드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내가 강연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지역복지 활동가, 시민단체 회원, 노조 조합원, 사회복지학과 대학생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이어 내가 말한다. “복지 일선에 있는 우리조차 자신하지 못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복지국가를 물려주긴 어렵겠네요….” 다소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수강생을 탓하려는 질문이 아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확인하려는 강연 절차다. 복지국가를 향한 ‘꿈’과 우리가 서 있는 ‘현실’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다.

 

이제 이런 이야기는 지난해까지만 유효하다. 올해 들어 몇몇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절반 가까이 손을 들기도 한다. 강연장에도 복지국가를 향한 기대가 흐른다. 단순히 복지를 공부하는 자리가 아니라 복지국가를 구상하는 희망터가 된 듯하다. 1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을까?

 

 

보수마저 끼어들려는 복지 대열

 

 

무상급식이 있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에게 주는 점심 급식일 뿐이었다. 한 끼 점심이 대한민국에 ‘복지 체험’을 선사하며, 복지가 가난한 아이들만이 아니라 모두 누려야 할 권리라고 일깨웠다. 순식간에 사회복지 전공자들만 주고받는 ‘보편 복지’라는 말을 세상에 전파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복지국가를 대한민국 미래상으로 제안한다. 복지를 이야기하면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우려하던 보수세력조차 요사이는 ‘맞춤형’ ‘한국형’ 운운하며 복지 대열에 끼려 한다.


 
 
» 복지 논쟁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20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사회보장기본법 전면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연설하고 있다(왼쪽/ 사진 한겨레 탁기형). 1월20일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복지는 세금이다’ 토론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가운데/ 사진 한겨레 김경호). 3월4일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시민단체 인사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삭감된 민생·복지 예산의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사진 한겨레 탁기형)
 
 
 

‘모델 사례와 복지 체험!’ 강연할 때마다 내가 강조하는 단어다. 복지국가 논의는 그에 걸맞은 복지재정을 확보하고, 정책 로드맵을 갖추었을 때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힘은 복지 체험을 통해 사람들이 갖게 되는 열망과 자신감이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에도 ‘모델 사례’는 위력을 발휘했다. 과연 그를 지지한 서울 강남 주민은 동료들이 모인 교회 행사에서 “난 아파트값을 올려줄 후보를 찍었다”고 공공연하게 말할까? 마음속 계급적 본능이야 그러하겠지만, 공중이 보는 앞에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명박 후보는 아파트값 상승 기대에 가슴이 부푼 그에게 열린 광장에서 발언할 충분한 근거를 제공했다. 지금까지 어느 시장이 서민을 중심에 두고 교통체계를 개편해본 적이 있는가? 숨 막히는 서울 도심에 개울을 만들어본 적이 있는가? 정동영 민주당 후보가 ‘대한민국 정통 야당’을 강조하고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노동자 서민의 벗’이라 아무리 자임해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체험’만큼 강한 건 없다. 아침저녁으로 시민들은 지하철역 게이트에서 나오는 “환승입니다!” 기계음에서 “이명박입니다!”를 확인하고 있다. 사람들은 아예 이명박 후보에게 청계천을 관리할 서울시설관리공단 이사장, 교통체계를 감독할 국토해양부 장관이 아니라 나라를 운영할 대통령직을 기꺼이 부여했다. 이것이 대중정치에서 모델 사례가 지니는 폭발력이다.

 

무상급식은 진보세력이 일군 흔치 않은 성과다. 당위적인 거대 진보 담론에 식상한 국민에게 그래서 더욱 신선하다. 나는 이 체험이 강연회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언젠가는 복지국가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주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강연장에 앉아 있었다면, 나 역시 손을 든 수강생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연재 칼럼을 통해 독자와 복지국가를 향한 열정과 비전을 공유하고 싶다.

 

 

재원 마련 위해 지출 개혁과 증세 모두 필요

 

 

현재 복지 논쟁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논쟁에서 다뤄질 핵심 논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복지재정 방안, 복지공급 체계 혁신, 복지주체 형성’이라고 답한다. 칼럼을 시작하는 이 글에서 복지 논쟁의 3대 논점을 대략 살펴보겠다.

우선 복지재원 방안이 뜨거운 논점이다. 일부는 ‘돈’만 이야기한다고 지적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논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취약한 복지재정 조건에서 첫 번째 질문은 ‘그럴 만한 돈이 있느냐’일 수밖에 없다.

 

정당마다 복지재정 추계에 바쁘다. 진보신당은 총 59조원에 달하는 사회연대 복지국가 구상을 발표했고, 민주노동당도 ‘55조+α’ 규모의 노동 중심 평화복지 초안을 내놓았다. 민주당은 ‘3무1반’(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반값 등록금)에 필요한 돈으로 16조4천억원을 제시했다. 이후 주거·노후·일자리 등 분야가 추가되면 30조원에 이를 것이다. 결국 보편 복지를 주창하는 정치세력이라면 2013년 집권 이후 연 30조~60조원의 복지재정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막대한 복지재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현재 정치권은 ‘지출개혁론’과 ‘증세론’으로 양분돼 있다. 민주당 주류는 증세 없이 복지재정을 마련한다고 하고,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복지는 세금”이라며 증세를 강조한다.

 

나는 보편 복지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선 지출 개혁과 증세 모두 필요한 방안이라고 판단한다. 국민의 조세 저항을 우회하고 싶겠지만, 30조원 이상의 재원을 지출 개혁만으로 마련하기는 어렵다. 예산 지출에서 대표적 개혁 대상이 국방(올해 31조4천억원)과 사회간접자본(SOC·올해 24조4천억원) 분야인데, 국방은 한반도 평화체제 진행과 연동돼 독자적인 예산 논리를 가졌고, SOC 지출도 근래 민간투자사업으로 대체되면서 절대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증세론도 지출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국민이 우선 원하는 건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지금처럼 양자가 지나치게 주도권을 다투는 모양으로 비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복지 논쟁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복지 논쟁은 ‘돈 이야기’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복지 서비스는 지나치게 민간 부문이 공급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복지재정이 제대로 쓰일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복지공급 체계 혁신이 두 번째 논점이다.

 

 

대중적 복지주체 세력을 형성하자

 

 

무상의료에 필요한 재정 규모를 두고 8조원(민주당), 12조원(건강보험하나로 시민회의), 30조원(보건복지부) 등 큰 차이가 나는 까닭도 근본적으로 의료기관 대부분이 민간 소유여서 무상의료가 되었을 때 민간 병원이 보일 진료 행태에 대한 평가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의료만이 아니다. 제5대 사회보험으로 선보인 장기요양서비스도 민간 요양기관이 독점하고 있고, 무상보육이 전면화돼도 지금처럼 민간 보육시설에 계속 의존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서서히 복지 논쟁이 공급체계 논점으로 확산되고 있다. 무상의료가 부상하면서 지금까지 성역으로만 여겨졌던 의료비 지급 방식이 사회적 토론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진료 행위마다 비용을 지급하는 까닭에 과잉 진료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이제는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료, 요양, 보육, 주거 등의 영역에서 복지공급 체계의 대수술이 점차 사회적 토론거리로 등장할 것이다.

 
 
» 복지국가 논의는 복지재정을 확보하고 정책 로드맵을 갖추었을 때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힘은 복지 체험을 통해 사람들이 갖게 되는 열망과 자신감이다.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국가인 독일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인들이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한겨레21 박승화
 
 
 

세 번째 논점은, 내가 복지 논쟁에서 가장 주목하는 ‘복지주체 형성’이란 과제다. 보편 복지를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이 돈이 제대로 쓰이려면 복지공급 체계를 정비해야 하지만, 정작 이 모든 일을 추진하려면 대중적 복지세력이 존재해야 한다.

 

보편 복지는 수혜와 부담 계층이 다르기에 이해관계 집단 사이의 갈등을 초래한다. 부자 증세, 비과세 감면 축소, 복지공급 체계 개편 등 모두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미 보수 언론은 ‘세금폭탄론’으로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 이 갈등을 헤쳐나갈 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대중적 복지주체 세력 혹은 복지동맹을 만들어갈 것인가?

 

서구 복지국가의 경험을 보면 노동조합이 중요한 복지주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 복지 논쟁에서 가장 멀리 머물고 있는 주체가 노동계다. 노조조직률이 낮은데다 핵심 노동조합들은 기업복지 틀에 갇혀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나름의 역할을 다하겠지만 일반 시민을 조직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가와 기업에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 가입자도 월평균 1만1천원씩 보험료를 더 내 무상의료를 이루자는 ‘건강보험하나로 시민운동’이 그나마 풀뿌리 시민을 조직하는 중요한 실험이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조만간 복지주체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길 바란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정치세력은 복지국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민주당의 약진이 돋보인다. 반면 애초 복지를 대표적 상표로 보유하고 있던 진보세력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마저 나온다. “민주당이 복지 논의를 주도하고 있으니 진보는 차별성을 지닌 다른 의제를 찾아야 한다.” “평화가 빠진 복지는 환상이다.” 노동계 일부는 ‘일자리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의젓하게 일침을 가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과연 국방비를 축소하지 못하면 복지를 주장할 수 없을까? 지금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다고 무상보육과 무상의료가 의미 없는 것일까? 평화와 일자리는 복지의 선결 조건이 아니라 병행 추진해야 할 필수 과제다. 어느 쪽이 앞서면 이를 격려하며 더욱 분발할 일이다. 평화를 원할수록, 괜찮은 일자리를 강조할수록 복지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복지재원이 필요하다며 국방비 축소를 주장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 일자리 만들기를 더 요구할 수 있다.

 

진보세력이 진취적으로 복지 논쟁에 나서기를 바란다. 지금 같은 수세적 자세는 곤란하다. 2004년 이후 진보세력이 원내 경험을 쌓고는 있지만 여전히 ‘정치적 소극성’이라는 전통적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왜 민주당이 ‘좌클릭’하고 있는가? 진보적 방향으로 이동하는 민심에 부응하려는 것 아닌가? 세상이 복지를 원하는데 정작 진보세력은 이를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역동적 ‘복지 정치’

 

 

요사이 한 동료가 내 표정이 밝아졌다고 칭찬한다. 무엇보다 대통령 선거까지 펼쳐질 역동적 ‘복지 정치’에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욕망을 사로잡았던 ‘부자 되세요’ 구호 대신 ‘연대와 공생’의 가치가 대한민국에서 힘을 얻고 있다. 복지국가를 만들기에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내년 이즈음 훨씬 많은 수강생들이 나의 질문에 힘껏 손드는 강연장을 상상해본다.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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