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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이코노미인사이트: '세금폭탄 대 복지증세' 반가운 싸움
번호 60 분류   조회/추천 9559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1년 03월 04일 14시 00분 59초
‘세금폭탄 대 복지증세’ 반가운 싸움
[Issue]
 
[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오건호 economyinsight@hani.co.kr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대한민국에서 복지 논쟁이 시작됐다. 과거에는 ‘복지’를 이야기하면 ‘비효율’이나 ‘복지병’ 딱지가 따라붙곤 했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이 누리길 바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전에는 분배를 주장하면 ‘성장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하던 보수 세력조차 요사이는 ‘맞춤형으로 가자’며 자신도 복지 대열에 서 있음을 드러내려 한다.


이는 지난 반세기 성장우선주의가 지배했던 대한민국에서 의미심장한 변화다. 2008년 촛불 광장에서 외친 ‘함께 살자 대한민국’과 작년 지방선거를 강타했던 ‘무상급식’ 등에서 확인되었듯이, ‘시장과 경쟁’을 넘어 ‘연대와 공존’의 가치가 확산되고 있다. 대한민국 민심의 진보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래도 보수 세력의 복지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하다. 최근 야당의 복지 행보가 빨라지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복지 포퓰리즘, 세금복지’ 등으로 날을 세우고 있다. 그만큼 복지 물결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지난 1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복지는 세금이다’ 토론회에서 (왼쪽부터)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정동영 민주당 최고의원,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도시락’으로 열린 보편 복지의 상상력


복지에 대한 기대와 세금에 대한 부담 중 과연 어느 것이 국민에게 더 강할까? 필자는 복지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고 판단한다. 지난해 5월 한겨레신문 창간 22돌 기념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2%가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모든 국민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국민은 시장만능주의에 지쳐 있다. 아무리 일해도 개선되지 않는 생활, ‘88만원 세대’로 출발해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노후 빈곤으로 전락해야 하는 세상에 절망하고 있다. 동시에 지난 촛불 광장에서 시장만능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잠재력도 확인했다. 이제 무상급식을 계기로 ‘보편 복지’를 자신 있게 말하게 되었다. 처음에 무상급식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점심 도시락’이었지만, 이 도시락을 통해 국민은 공적 조직을 통한 ‘복지’를 체험했다. 도시락이 보편 복지를 향한 진보적 상상력을 확산시켰다.


우리나라는 총량에서 복지국가를 구현할 부를 이미 가졌다. 중간 계층 이상의 사람들이 시장 부문을 통해 지출하는 보육·교육·의료·노후 비용은 막대하다. 만약 이 재원이 공공복지에 사용된다면 우리나라 역시 복지국가로 작동할 수 있다. 선진국은 한국의 경제력 수준에서 이미 복지국가를 이룩했다. 2006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만8천만달러, 공공복지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7.3%였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1만8천달러 시점에서 사용한 공공복지 지출 비중은 평균 18.9%였다. 우리나라에 부족한 것은 경제력이 아니라 복지국가를 구현할 정치적 세력이다.


복지 지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고령화 변수를 감안하면 어떨까? 2011년 한국의 고령화율은 11.3%, 공공복지 지출은 GDP의 약 9%다. OECD 국가 중 1980년 이후 고령화율 11.3%에 도달한 11개 국가의 공공복지 지출은 평균 GDP 16.3%였다. 고령화율을 통제해도, 한국의 공공복지 지출은 비교 국가 복지지출의 55% 수준에 불과하다. 금액으로 계산하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GDP 7.3%포인트, 약 90조원을 복지 분야에 더 지출해야 OECD 비교 국가 대열에 설 수 있다(2011년 명목 GDP 1240조원 기준).


최근 등장한 보편 복지 비판 논리가 ‘2050년 복지국가 자연도달론’이다. 기획재정부는 “2010년 우리나라 OECD 기준 공공복지 지출 비중은 GDP 8.9%로 OECD 평균 19.3%(2007)에 비해 낮지만, 고령화 속도가 빨라 복지제도가 성숙됨에 따라 복지지출 규모가 2050년에는 선진국 수준인 GDP 21~25%까지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특별히 복지를 늘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2050년 저절로 복지국가 된다?


장기 재정 전망은 향후 40년 뒤 미래를 예상하기 위해 인구·경제성장·임금 등의 변수를 잠정적으로 가정하는 불확실한 작업이다. 정부가 미래 ‘참고자료’를 현재의 취약한 복지 실태를 정당화하거나 그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게다가 향후 복지지출 규모는 정부 재정 전망에 미치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이를 충당할 수 있는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2050년 복지지출이 GDP 20%를 넘을 것이라 말하면서도 세입에선 ‘부자 감세’를 유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21.0%였던 조세부담률은 올해 19.3%로 낮아졌고, 2010∼2014년 중기 재정운용 계획에도 여전히 19%대에 머물러 있다. 지금 상태를 유지한다고 치면, 2050년에는 전체 조세수입을 모두 복지에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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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 확충 방안이 신속하게 마련되지 않으면 향후 복지 급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2007년에 미래 재정 여력을 이유로 국민연금 법정 급여율이 60%에서 40%로 낮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앞으로도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현행 65살에서 67살과 70살 등으로 상향되면 국민연금 지출액은 더욱 줄어들고, 고령의 기준을 65살에서 70살로 올릴 경우 기초노령연금 지출액도 감소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점진적으로 늘어왔으나, 이명박 정부 2년차인 2009년을 전환점으로 GDP 9%에서 정체 혹은 감소하고 있다. 정부의 복지지출 증가율이 GDP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증세 없이 보편 복지 가능한가


복지 논쟁에서 핵심 논점은 ‘어떻게 복지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에 있다. 우선 ‘비(非)증세론’을 살펴보자. 연이어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을 발표한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는 가능한 한 ‘증세 없이’ 복지를 이루겠다고 한다. ‘한국형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박근혜 의원의 지난 대선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공약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 부자 감세의 원조다.


이들이 내놓는 주요 재원 방안은 비과세 감면 축소, 재정지출 개혁 등이다. 이 주장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올해 비과세 감면 예상액은 31.3조원으로 국세 수입 188조원의 14.3%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언뜻 보면, 비과세만 축소해도 상당한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 하지만 비과세 감면 대부분이 사회복지·보건·농림수산 등 서민 생활과 관련된 것으로, 각각 나름의 사연이 있다. 줄일 수 있는 항목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필자가 보기에 축소 논의가 가능한 건 경제개발 분야인데, 종종 논란이 되는 임시투자세액공제(1.4조원)는 사실상 폐지하는 것으로 방향이 잡혀 있으므로, 추가로 손볼 수 있는 건 주로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연구·개발(R&D)비 세액공제(2.8조원) 정도다. 재정지출 개혁에선 국방(31.4조원)과 사회간접자본(SOC·24.4조원) 분야가 대상인데, 국방은 한반도 평화체제 진행과 연동돼 독자적인 예산 논리를 가졌고, SOC 지출은 근래 민간 투자사업으로 대체되면서 재정 대비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


결국 보편 복지가 필요로 하는 재정 규모를 감안하면 비과세 축소, 재정지출 구조 개혁과 함께 국가재정 규모를 키우는 증세를 논의해야 한다. 2012년 대선에서 복지 논쟁의 핵심은 재원 방안이 될 것이다. 국민은 이전과 달리 복지를 ‘실제 가능한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냉정하게 재원 방안을 검증할 것이다. ‘비증세’론은 국민이 지닌 조세 저항을 피해보려 하지만, 끊임없이 재원 방안을 해명하느라 복지 논쟁에서 수세적 지위로 몰릴 수 있다.
 
‘복지동맹’을 두텁게 하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 정당들은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신설, 사회복지세 제정 등 증세를 주장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긴 호흡으로 보면 긍정적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지만, 증세론이 넘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미래지향적 추진을 위해 세 가지 제안을 붙인다.


첫째, 한나라당의 세금복지론에 대해 ‘과연 세금 부담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적극적인 대응이 요청된다. 2009년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자 1430만 명 중 40%가 면세자다. 이들은 원천적으로 증세 대상이 아니다. 소액의 세금을 내게 될 중간 계층의 경우 부담액에 비해 복지 수혜액이 크므로 혜택을 보게 된다. 결국 누진 방식으로 진행되는 증세에서 대부분의 재원은 상위 계층에서 나온다.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들이 걱정하는 납세자는 일반 국민이 아니다.


둘째, 재정지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감안할 때, 세입과 지출을 결합하는 ‘복지 증세’가 효과적이다. 내가 낸 세금이 ‘4대강 사업’에 유용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복지로 지출이 정해진 사회복지세, 국민건강보험 재원인 건강보험료 등이 좋은 예다. 복지 논쟁에서 증세는 ‘복지’ 증세임을 분명히 하자.


셋째, 복지 증세에는 부자와 대기업이 복지 재원을 모두 책임지라는 ‘내라!’ 방식과 시민들도 재원 마련에 참여하는 ‘내자!’ 방식이 있다. 민주노동당의 2004년 부유세와 상위 집단에게만 부과되는 진보신당의 사회복지세가 전자라면, 가입자·기업·국가가 각각 지금보다 3분의 1씩 더 내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제안, 모든 과세자가 누진적으로 납부하도록 설계된 민주노동당의 2007년 사회복지세 대선 공약이 후자다. ‘내라’는 우리 사회 양극화의 책임을 분명히 명시하는 효과를 지니고, ‘내자’는 보편 복지 기대를 가진 시민들을 직접 복지 재원 확충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강점이 있다. 복지국가 운동의 핵심이 복지동맹 주체를 만드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내자’ 방식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2012년 대선을 향해 갈수록 복지 논쟁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굴 것이다. 이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된다면,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연대’와 ‘공존’이 지배하는 새로운 역사로 진입할 수 있다. 복지 논쟁에서 우리 사회의 도약을 고대한다. mrok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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