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공연구소 Public Policy Institute for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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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경향: 나라 살림까지 사유화하나
번호 53 분류   조회/추천 1093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0년 12월 17일 16시 37분 04초
[시론]나라 살림까지 사유화하나

내년 예산안이 또 날치기로 통과됐다. 일각에서는 정부 마음대로 예산을 정하면 그 만큼의 본 때를 국민들이 보여줘야 한다며 ‘납세거부’ 운동을 역설했다.

정부 예산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이뤄진다. 행정권력이 의회로부터 정당한 동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이 돈을 사용한다면, 이는 나라살림을 사유화하는 행위이다. 이번 예산안 사태는 우리나라 재정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와 여당이 공공연하게 국민 세금을 자신의 호주머니 돈으로 여기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한번도 아니고 집권 3년 내내 야당의원들을 강제로 끌어내리며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부자감세, 4대강사업, 복지지출 통제 등을 두고 앞으로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어서 이러다간 5년 내내 날치기가 벌어질 것 같다. 게다가 이번에는 본회의를 통과하는 예산안의 구체 내역이 알려지지 않은 채 의결됐다. 과거에 날치기가 있는 경우에도 최소한 사전에 세부 논의를 거친 후 최종 결과에 대한 공방을 벌였다. 그런데 이번 날치기에는 서해5도 전력보강, 경로당 난방비 지원 등 사전에 여야가 합의한 증액 외에 무려 3000억원 안팎의 예산이 밀실에서 추가됐다. 반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여야가 합의했던 약 80개 사업, 1조원의 복지증액분은 한순간에 증발해 버렸다.

국가재정을 관리하는 기본 틀이 무너지고 있다. 공기업을 활용한 사실상 분식회계 편법이 대표적인 예이다. 정부 말대로라면, 4대강사업은 국가하천의 홍수와 재해를 예방하고 복구하는 지출성 재정사업으로, 비용을 시장에서 보전해야하는 공기업이 맡을 사업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총 22조원의 4대강 예산 중 약 8조원을 한국수자원공사에 넘기며 나라살림에서 이 금액을 누락시켰다. 이렇게 되면 국가재정을 구성하는 기본 수치가 달라지고, 국가재정을 믿을 수도 없게 만든다.

행정부의 예산편성 체계를 따라가지 못하는 국회도 문제다. 2006년 국가재정법이 제정되면서 정부 예산은 부처 편성과 동시에 16개 국정분야로 계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내년 복지지출 86조4000억원은 보건복지부 예산뿐만 아니라 9개 부처의 복지관련 지출을 모은 것이다. 국회는 당연히 복지분야 전체 금액을 심의테이블에 두고, 복지로 분류된 사업들이 진짜 복지인지, 전체 사업 중 증액되는 것과 감액되는 것은 무엇인지를 총괄적으로 심의해야 한다. 그런데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가는 순간 복지지출은 부처별로 쪼개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복지분야 논의는 복지지출의 40%만을 차지하는 보건복지위원회 심의로 축소돼 버리고, 정부의 일방적 홍보자료가 검증되지 않은 채 여론을 호도한다. 행정부의 예산편성은 신식 모델인데 국회는 여전히 구식에 안주하고 있는 셈이다. 시급히 국회가 분야별 예산안 심의체계를 갖추지 않는 한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감시하기 어렵다.

이번 날치기 휴유증이 클 듯하다. 근래 국가채무, 무상급식 등으로 나라살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재정민주주의를 침해하는 노골적인 날치기가 행해졌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 사용처를 불투명하게 정할 때 생길 수 있는 후폭풍을 두려워하지 않는, 참 대담한 정권이다.

야당쪽에선 내년 예산안 수정안을 제출하겠단다. 수정안이 아니라 아예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이렇게 나라살림까지 사유화해 간다면 정말 국민이 거리도 나설지 모른다.

<오건호 |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입력 : 2010-12-13 19:27:37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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