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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워킹페이퍼

제목 워킹페이퍼 12-05: 궤도산업에서의 안전패러다임 전환
번호 152 분류   이슈/워킹페이퍼 조회/추천 2454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3년 02월 25일 10시 36분 54초
링크 첨부   [PPIP워킹페이퍼2012_05]궤도산업_안전패러다임_전환.pdf(1.05 MB)
< 궤도산업에서의 안전패러다임 전환:‘징계 중심’에서 ‘원인 규명 위주’로 >


□ 연구 배경
∙ 2011년 2월 광명역 KTX 탈선 사고를 기점으로 지난 2년여 동안 언론은, 이전까지는 ‘철도사고’로 규정되지도 않았던 되돌이 운전을 비롯한 사소한 ‘운행 장애’마저도 큰 사고인듯 기사화했다. 선정적 언론 보도 속에 사용자들은 열차, 운영, 제어, 보수, 인적 요소 등이 얽혀 있는 궤도사업장 전체 안전 시스템을 점검하기보다는 사고 책임자를 찾아, 징계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징계 남발과 정신모멸적 교육, 업무상의 피로, 통제적 노무관리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2012년엔 4명, 2013년엔 1명의 기관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그러나 사고에 대한 징계 중심의 대응은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글은 궤도산업과 같이 사소한 실수가 중대사고로 전이되기가 쉬운 고위험산업에서 그동안 유지되어 온 전통적 안전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인적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으로 전환해 나가야 함을 주장한다.


□ 테크놀로지 중심의 전통적 안전 패러다임: 설비 자동화와 통제적 노무관리
∙ 테크놀로지 중심의 안전 패러다임은 설비의 자동화를 통해 인적 오류를 감소시키려는 방식이었다. 즉 작업과정을 인적 오류가 개입되지 않는 자동화된 설비로 교체함으로써 안전을 달성하려 했다.
∙ 기술적 차원에서 안전을 달성하려 했던 흐름은,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엄격한 규율’을 통해 인적 오류를 예방하려는 전통적 노무관리방식과 시기상으로 중첩된다. 특히 징계중심주의는 통제적 노무관리의 주된 양상이다. 항상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의 실제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책임자를 찾아내 징계하고, 이들을 작업장에서 배제하는 것이 사용자의 방식이었다.



□ 사회적 관계의 개선을 통한 안전 확보: 고신뢰조직
∙ 하지만 현재 테크놀로지와 통제 중심의 전통적 패러다임은 조직 내 인적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안전을 달성하려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즉 조직 문화와 구조가 안전을 확보함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안전 문화’ 혹은 ‘고신뢰조직’ 등의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다.
∙ 고신뢰조직에서는 구성원의 실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실수로부터의 적극적 학습을 강조한다. 이러한 대응은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사소한 오류일지라도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역량 부족이나 실수가 아니라 조직적 차원에서 발생한다. 즉 인적 실수는 전체 시스템의 특정 부문이 취약해졌다는 안전 문제의 징후이기에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것이다.
∙ 고신뢰조직은 실수에 대한 징계보다 보고를 우선시한다. 실수로부터 학습하기 위해서는, 실수가 보고되어야 한다. 보고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고 원인은 규명되지 않으며, 해당 오류는 현장에 잠복되어, 중대사고로 발전할 수도 있다. 사고 원인규명보다 징계를 중시하는 조직에서, 구성원들은 징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사고에 대한 보고 자체를 꺼리게 되며, 이는 안전 문화 형성의 걸림돌이다.
∙ 또한 고신뢰조직은 수평적인 의사소통, 현장 노동자의 자율성 등을 강조하며, 직무 설계와 기계설비에 있어서 잉여성(redundancy)를 중요한 안전 요소로 삼고 있다.



□ JR 서일본과 JR 동일본의 안전 정책 비교
∙ 2005년 107명이 사망한 JR 서일본의 후쿠치야마선 사고는, 징계중심의 노무 관리가 낳은 대표적인 사고 사례이다. 당시 사고 기관사는 오버런과 운행 시간 지연 등의 실수를 범했는데, 이로부터 예상되는 가혹한 징계(인격모멸적 교육, 근무평가로 인한 승진기회 박탈, 임금 삭감)를 피하고자 제한속도가 시속 70km인 구간에서 120km까지 과속하였다가 탈선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징계 중심의 JR 서일본은 1990년대 이후 대형사고가 두 차례나 발생한 유일한 일본 내 궤도회사이다.
∙ JR 서일본과 달리 JR 동일본에서는 노동조합이 ‘책임 추궁보다 원인 규명’이라는 기치 아래 사용자를 강하게 압박하여 궤도 사업장을 안전한 고신뢰조직으로 바꿔놓았다. JR 동일본 노조는 사고 발생시 사고 발생현장의 모든 조합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원인규명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다양한 의견집단의 시각에서 사고를 분석한다. 이후 분석 결과를 경영진과 논의함으로써 사고예방활동을 진행한다. 그 결과 JR 동일본은 현재 일본 내에서 가장 안전한 작업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 한국 궤도 산업의 현 주소: 전통적 안전 패러다임 고수
∙ 한국 궤도사업장은 징계 중심 노무관리, 노동강도의 심화, 성과주의 등 안전을 위협하는 여러 조직적 문제를 내장하고 있다. 현재 여러 궤도 사업장들에서 JR 서일본에서와 유사한 인격모멸적인 일근교육 등이 교자행되고 있다. 또한 인력 감축, 기관사 1인 근무, 여러 형태의 수익적 경영논리로 인해 일선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심화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피로도와 스트레스 증가가 수반되고 있다.
∙ 공공부문 작업장에 효율, 경쟁, 성과주의를 강제하는 경영평가는 고위험산업인 궤도산업에까지 그대로 적용되었다. 현재 책임사고 건수가 경영평가 대상이다. 경영평가는 기관 차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별로도 평가가 이뤄진다. 사고 건수가 많은 부서나 개인일수록 연말 성과급에서 큰 격차가 생겨날 수 있다. 결국 현장에서는 사고가 벌어졌을 때,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생겨난다. 해당 소속장에게 보고하더라도 소속장 선에서 적당히 무마되는 것이다. 궤도 작업장에서 현행 경영평가와 같은 획일적 평가방식은 안전을 심각히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에, 산업적 특수성을 반영한 새로운 방식의 평가틀을 강구해야만 한다.
∙ 궤도 작업장의 안전 수준이 후퇴하고 있음에도, 정부의 ‘2차 철도안전종합계획’은 여전히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Top-down 방식의 관리체계로 짜여져 있다. 안전 문화를 언급하긴 하나, 거의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며, 작업장 내 규율적 통제 문화와 성과주의에 기반한 노무관리가 초래하는 안전문화의 저해는 관심밖인 상황이다. 나아가 정부는 사전적 위험도 평가, 안전 모니터링 등을 중심으로 한 안전관리체계를 수립하려 하지만, 현장 작업자들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수렴하는 구조는 누락되어있다.
∙ 요컨대 징벌주의, 성과주의 등 여러 측면에서 한국 궤도 작업장들은 JR 동일본보다는 JR 서일본과 대단히 유사하다. 영국, 미국 등 해외 여러 철도 선진국들은 자국 궤도 사업장에서 안전 문화와 같은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을 진작부터 강조해 왔다. 그에 반해 한국 궤도 작업장은 지금도 전통적인 안전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다.



□ 한국 궤도 산업의 안전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
∙ 따라서 한국 궤도산업은 ‘징계 중심’의 전통적 패러다임에서 ‘원인 규명 위주’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개별 궤도작업장 내 인적 과정에 대한 실태 조사를 통해 안전 문화 조성에 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궤도 작업장에서의 사고는 곧바로 이용자 피해로 직결되기에, 런던트래블워치(London Travel Watch)와 같은 이용자 위원회 조직 신설을 통해 작업장 내의 안전 정책, 노동강도 수준 등을 모니터링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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