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10>‘이장이 된 교수’ 고려대 강수돌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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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교수는 “모든 사람이 땅을 파면서도 땅을 존중하는 사회가 우리의 미래다”라면서 “수직적 사다리 질서가 아닌 수평적 원탁형 질서가 구축될 때 새로운 길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
말로는 소통을 이야기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수많은 담을 쌓아 놓고 있는 게 이즈음의 우리 사회 지도자들의 행태다. 말과 글로는 차원 높은 이상을 제시하면서도 현장에서는 실천하지 않는 지식인이 적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신안1리 이장인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와의 만남은 그래서 한없이 즐거웠다. 강 교수는 연대와 소통을 이야기하는 학자이면서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첫 지방 취재였지만 가는 내내 들떴다. 소통을 논하면서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지식인을 만난다는 설렘에서다.
# “살림의 경제학이 필요하다”
최근에 배움터 이름을 새롭게 한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상관을 찾았다. 강의실과 연구실이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는 경상관에는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강의실 몇 곳을 돌아 연구실에 들어서자 나이보다는 더 오래돼 보이는 여유로움과 웃음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강 교수는 시간강사의 대학 교원 지위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김영곤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대학 전임이지만 열악한 시간강사의 처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모습은 그를 보여주는 조그마한 그림이다.
그는 특권층을 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싫어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서울대를 졸업한 공교육의 수혜자이다. 또한 본교는 아니지만 명문 사립대학의 교수로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비정규직과 소수자에게 관심을 갖도록 했을까.
“서울대 경영학과에 들어간 뒤부터 고민을 했지요.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 오로지 효율성의 지배적 원리 하에 돈벌이만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학문’이 아니라는 결론을 맺고, 사람도 살리고 자연적인 것도 살리는 ‘살림의 경제학’을 일구어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다가 독일 유학 중에 만난 지도교수님이 대학 캠퍼스로부터 1시간이 넘는 곳에서 농부처럼 살아가면서 본인의 이론적 입장을 실천하는 ‘언행일치’의 현장을 지켜보게 됐지요.”
강 교수의 삶에서는 ‘남을 이기고 죽이는 경쟁적 삶’을 거부하고자 했던 학부 시절 이래의 고민, 학교 근처에 살면서 양을 키우고 과일나무를 재배하면서 삶 속에서 이론을 실천하는 스승의 모습이 겹쳐진다.
# “가정·학교·직장의 생각을 바꿔야”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로 돌아온 뒤 그는 경기 과천에서 잠시 거주했다. 1997년 고려대 조치원 배움터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부터 근처 농촌마을에서 교사인 아내 및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집터를 구하는 동안 충북 청주에서 잠시 거주한 것을 제외하고는 캠퍼스에서 도보로 30분 내외 걸리는 곳에 계속 살아온 셈이다.
그는 연구원 신분으로 과천에 살 때는 주말농장인 텃밭을 빌렸다. 그곳에서 ‘내가 먹는 것을 내가 경작’하면서 얻는 큰 기쁨을 얻었다. 기쁨은 단순한 경작의 기쁨을 넘어섰다. 흙으로 표현되는 자연을 다시 만나면서 가족은 행복했고, 건강한 삶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시골의 전형적인 마을에서 자란 세 아이는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유독 즐거워했다.
‘나부터 교육혁명‘(그린비)을 내놓은 강 교수는 ‘나의 작은 실천’이 사회를 바꾼다고 역설한다. 그가 말하는 실천과 행동의 맨 앞자리에는 ‘밥상 혁명’이 자리한다.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는 가족부터 건강한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소비하는 건강한 문화가 필요하다. 유기농 먹을거리를 구해 먹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텃밭 등에서 자신이 직접 채소 등을 재배해야 한다. 그도 안 되면 생활협동조합이나 유기농 음식 관련 단체의 회원으로 적극 활동하는 실천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밥상 혁명’이 이뤄지면 ‘교육 혁명’도 가능하다. 일류 대학 진학보다는 부모가 자녀의 개성과 내면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끊임없이 대화할 때만 자녀의 행복한 미래가 그려질 수 있다.
“삼류대학에서도 일류대학 방식의 공부를 할 수가 있습니다. 내면의 실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지요. 스스로 사는 힘도 기르고, 봉사할 수 있는 공동체 심성도 개발해야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대학 갈 때까지만 고생해라’가 아니라 큰 학교(대학)인 대학에서 진정한 공부를 해야 하지요.”
음식과 교육에 관한 실천과 함께 각종 ‘풀뿌리 운동’ 참여는 사회의 건강을 담보해 내는 중요한 과정이다. 마을 이장이나 아파트 동대표로 활동하고, 안 되면 봉사활동에라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마을 단위의 벼룩시장과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공동체를 살리면서 사회에 희망을 불어넣게 한다. 그도 이 철학을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다.
“제자들이 중심이 돼 대학생 팀을 꾸려 제가 사는 신안1리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농촌 아이에게 도움을 주면서 대학생들은 보람을 느끼고, 아이들은 대학생 언니와 형이 자신을 가르쳤다는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실천과 기억이 종횡으로 넘칠 때 사회는 더 밝아질 것입니다.”
그는 올해 5월 8일 ‘어버이 날’을 맞아서는 손수 ‘마을 골목 축제’를 기획하고 이끌었다. 350가구가 모여 사는 신안1리에는 각종 재능을 가진 주민들이 즐비했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바람개비를 잘 만드는 사람, 다듬이 방망이 소리를 잘 내는 분, 조각을 잘하는 청년 등 사람들이 모여 기량을 뽐내면 활기가 넘치거든요.”
마을 인근에 대형 건설회사가 추진 중인 아파트 건설을 막기 위해 2005년부터 이장으로 봉사한 뒤 이룩한 작은 결실이었다. 보람을 느낀 주민들이 내년에도 값진 행사를 위해 앞장설 것임은 충분히 예상된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활동이지만, 그는 이러한 활동이 자신을 돌보는 삶도 된다고 말했다. 강자의 삶에 포섭되고 기존 패러다임에 진입하면 세속적으로 출세할 수 있지만, 인간성은 파괴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팔꿈치 사회’라는 독일 말이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처럼 팔꿈치로 다른 사람을 밀쳐내야 내 존재가 드러나는 경쟁과 분열의 사회를 가리키지요. 모순에 대해 구성원이 문제 제기조차 안 하고 ‘경쟁 이데올로기’를 굳게 믿는 것은 잘못인데, 이를 극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탈 경쟁’이 자아내는 모종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꿰뚫으면서 넘어가고, 그다음에는 ‘연대’의 실천을 통해 그 두려움의 축소를 경험할 수 있어요.”
강 교수는 사람과 자연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공동체 모두를 살리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의 최근 저서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생각의나무)에는 미국의 백인 여성 의사가 쓴 ‘무탄트 메시지’의 설명을 담고 있다. 호주의 원주민 부족 중 하나인 참사랑 부족이 했다는 말이다.
“원래 비즈니스란 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재료를 조달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인데, 오늘날의 비즈니스는 그 자체의 유지와 존속이 목적이 돼 변질하고 말았다.”
bali@segye.com
■강수돌 교수는…
1961년 경남 마산 출생.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로 사회공공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독일 브레멘대학교 경영학 박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내고 위스콘신대 노사관계연구소 객원교수를 지냈다. 노동과 교육, 경제, 생명을 서로 연결된 고리 속에서 푸는 문제를 고심하고 있다. ‘돈의 학문’이 아닌 실천하는 ‘삶의 학문’으로 독자를 찾고 싶어한다.
▲저서
‘일 중독 벗어나기’, ‘지구를 구하는 경제 책’, ‘나부터 교육혁명’, ‘노사관계와 삶의 질’, ‘노동의 희망’, ‘작은 풍요’, ‘경영과 노동’ 등
▲역서
‘광고 이야기’,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 ‘세계화의 덫’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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