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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경향: 복지국가를 말한다. 시장논리를 넘어서
번호 509 분류   뉴스 조회/추천 1276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1년 07월 22일 15시 19분 17초
[복지국가를 말한다](3부) ② 시장논리를 넘어서

ㆍ저소득층 연금·고용·산재보험 ‘사각’… 국고 지원 늘려야

사회보험이 중심인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사각지대가 광범위하다는 뜻이다. 보험료를 낼 여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을 소외하는 ‘시장논리’가 우리 복지를 지배한다.

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에 따르면 빈곤층(경상소득 중간값의 50% 이하인 계층) 가운데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집단의 비율이 비빈곤층에 비해 2배가량 높다. 정규직 노동자에게 더 높은 혜택을 주고 정작 혜택이 필요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배제되는 방식으로 짜여 있는 것이다. 노대명 보사연 연구위원은 “현재 한국의 복지제도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불리한 제도”라며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이 복지에서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위기의 여파가 몰아치던 2008년 11월 실업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안정센터를 찾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5월 중순 대전 유성구의 한 보습학원. 10년차 학원강사 김상운씨(가명·37)가 중학교 3학년 학생들 앞에서 교재를 펴고 질문을 던졌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여기 빈 칸에 들어갈 말은?”

정답은 복지다. “아프거나 일자리를 잃었을 때, 그리고 늙었을 때 생기는 문제를 국가가 대비해 주는” 사회보장제도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김씨는 씁쓸해졌다. 사회보장제도를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제도 바깥에 있는 현실이 떠올라서다.

그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다. 고용보험,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사업자라고 해봐야 지금껏 가장 많이 받아본 월급이 130만원에 불과하다. 사교육시장을 벗어나 대학원이나 사설 아카데미에서 공부해 출판사나 평생교육원 등에 취업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자기계발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을 그만둘 경우 문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노동자는 전체 취업자 2338만명 가운데 40.5%(946만명·2010년 3월 기준)나 된다.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학원강사, 학습지교사, 레미콘 기사 등과 영세자영업자가 여기에 포함된다.

‘1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라는 가입조건에 맞아도 급여가 적고 일자리가 불안할수록 가입비율이 낮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중위임금(전체 노동자를 임금 순으로 줄세웠을 때 가운데 있는 노동자의 임금)의 133% 이상을 버는 고임금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10명 중 7명(69.5%)이다. 반면 중위임금의 67% 미만인 저임금 노동자의 가입률은 10명 중 3명(33.5%)이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가입률은 25.7%이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입률은 33% 정도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안전망에서도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발적 실업일 경우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등 수급조건도 까다롭다. 여기에 기존 소득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급여 액수도 문제다. 사무보조원으로 1년짜리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송모씨(31)는 최근 자신의 실업급여를 확인해보고 깜짝 놀랐다.

월 70만~80만원에 불과했던 것. 그는 “이 급여를 가지고는 밤마다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생활이 유지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실업급여의 하루 상한액은 4만원이다. 1995년 고용보험 도입 당시 3만5000원이었던 것이 10년 뒤 5000원 오르고 6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근본원인은 고용보험의 특성과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 간 괴리에 있다. 고용보험은 노사가 보험료를 부담하기 때문에 보험료 감당이 가능한 정규직 노동자가 다수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제도다. 그러나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등 고용·임금이 불안정한 노동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고용상황에 맞는 고용안전망이 아닌 것이다.

이 때문에 저소득·불안정 노동자에겐 정부가 보험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공공연구소 오건호 연구실장은 “한계상황의 저소득 노동자·기업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이들 보험료는 낮은 편이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고용이 안정적인 정규직 노동자와 이들을 고용한 대기업들의 부담을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수준의 실업급여가 지급되려면 기금이 지금보다 더 쌓여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이상동 경제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의 고용보험료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이라면서 “누진세와 마찬가지로 소득이 안정적인 계층에 대한 소득 대비 보험료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청년실업자, 장기실업자, 영세 자영업자 등 제도적으로 고용보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현금을 지급하는 ‘실업부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모씨(51)는 21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딸을 홀로 키워왔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제대로 내본 기억이 없다. 그러니 연금 수급은 포기한 지 오래다.

근근한 밥줄이던 문구점을 2007년 닫은 뒤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골목에도 파고든 대형마트가 문구류까지 취급하면서다.

“노후 대비라고는 계속 일할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뿐이에요. 지난해 11월 딸애가 대형서점에 취직하면서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강보험료 부담은 덜긴 했는데…. 아직은 연금에 들 형편까지는 안 돼요.”

국민연금이 만 27세 이상에게 의무적으로 적용된 것은 12년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자는 1923만명에 달한다. 60세가 돼 연금을 타기 시작한 수급자가 300만명을 돌파했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이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후 소득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이 같은 평가는 무색해진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가입자의 24%에 달하는 510만명이 ‘보험료를 납부하기 힘들다’고 신고한 납부예외자다. 실직과 사업중단, 그리고 생활곤란이 주된 이유였다. 이들은 주로 영세 자영업자이거나 사측이 보험료 분담을 해주지 않는 비정규직들이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고용주가 보험료 절반을 부담하는 직장가입자 등록비율은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78.4%였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38.1%에 불과했다. 고용·임금이 불안정한 이들은 수급망 바깥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가난한 이들이 보험료를 꼬박꼬박 낸다 해도 국민연금이 노후안전망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엄모씨는 서울 청계천 부근의 한 건물에서 매일 밤 네 시간씩 경비원으로 일한다. 그는 1년 전 이곳에 취업하면서 4대 보험의 적용을 받게 됐다. 하지만 “사회안전망에 들어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가 1만8000원인데 나중에 받아야 얼마나 받겠습니까.”

반면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국민연금이 수익성 좋은 ‘재테크 상품’ 대접을 받고 있다. 2009년 말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의 주부 임의가입자(의무가입 대상이 아니지만 신청해 가입한 사람) 가운데 서초·강남·송파구 주부들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 같은 상황은 근본적으로 연금의 보험료가 워낙 낮은 데서 기인한다. 중앙대 김연명 교수(사회복지학)의 계산을 보자. 한국의 국민연금 구조에서는 평균소득을 버는 노동자가 20년 동안 보험료를 낼 경우 나중에 받을 연금액이 1인가구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거나 약간 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사회 합의를 거쳐 보험료율을 올리되 저소득층에게는 정부가 보험료를 지원해 이들을 ‘노후안전망’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현재 노후안전망 바깥에 있는 50~60대 인구에 대한 대책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오는 대안이 기초노령연금의 강화다. 현재 만 65세 이상 노인의 70%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의 금액은 월 9만 1000원인 탓에 “용돈 연금”이라 불리는 신세다. 이 지급액을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연명 교수는 “안정된 사람들만의 노후를 챙겨주는 국민연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형태의 기초연금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양재진 교수(연세대 행정학)도 “국민연금의 층을 두 개로 만들어 1층은 기초보장연금으로 만들고, 중산층 이상에게는 낸 만큼 받아가는 소득비례연금을 얹어주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노령연금의 지급액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재원이 필요하다. 현재 전액 국고로 지원되는 기초노령연금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5% 수준만을 연금액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 수준을 높이면 다시 국고부담이 늘어난다. 이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보편복지의 재원 논란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장기적 대안으로 제시되는 ‘보험료 인상’ 역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도’를 고려하면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결국 국민연금에 대한 장·단기 대안 모두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한 사안인 셈이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헐거운 노후안전망을 앞에 두고 정부는 여러 대안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는 소홀하다. 정부는 대신 “(연기금의) 운용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기금 소진 시기를 9년 늦출 수 있다”(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는 등 투자수익만을 강조한다.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연금제도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 특별취재팀 최민영·송윤경·유정인·김지환·박은하 기자
■ 블로그 welfarekorea.khan.kr
■ 이메일 mi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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