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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경향: 복지국가를 말한다. 공정시장 공정임금
번호 508 분류   뉴스 조회/추천 1183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1년 07월 22일 15시 18분 03초
[복지국가를 말한다](3부) 복지, 어떻게 바꿀 것인가 ① 공정시장, 공정임금

ㆍ하루 10시간 야근 반복해도 ‘정규직 월급의 절반’
ㆍ잘못된 노동시장 개혁 않고 빈곤층에만 복지 혜택

다시 야간조다. 10시간을 꼬박 지새우는 용접 작업. 아침 8시까지 시간당 30개씩 머플러(차량 엔진의 소음을 줄이는 장치)를 용접하고 나면 손마디가 저린다. “해야지, 해야지. 다른 도리가 있나.” 강진욱씨(46·가명)는 나오는 한숨을 억눌러 참는다. 그는 현대자동차에 머플러를 납품하는 경북지역의 한 2차 하청업체 정규직이다. 5년 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길 가는 현대차만 봐도 ‘내 손으로 만든 부품이 들어갔겠구나’ 싶어서 뿌듯했다. 하지만 자부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현대차 신입사원의 초봉은 4200만원. 그는 잔업과 야간교대를 반복해도 1년에 2800만원밖에 손에 쥐지 못한다. 월급날 2만원짜리 아귀찜 하나 포장해와 집에서 아내와 소주잔을 기울이다보면 하청업체의 설움에 울컥한다. “열심히 일해도 원청과 하청의 봉급이나 대우 차이가 너무 나니까 이젠 길 가는 현대차만 봐도 싫어지더군요.”

그나마 하청업체라도 정규직인 그의 형편은 낫다. 현대차의 또 다른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그의 아내는 지난해 13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현대자동차가 5조2670억원으로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낸 해다. 하청업체 직원과 비정규직 입장에선 동의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일하다보면 가끔 전화국 돈 벌어주기 위해 태어난 건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박정필씨(39·가명)는 주택, 사무실을 돌며 인터넷을 깔아주는 일감을 KT로부터 받아 일한다. 일주일에 엿새를 일한다. 아침 8시20분에 전화국에 도착해 조회하고, 물건 챙기고, 9시 전후해 전화국을 나서 하루 할당량을 숨가쁘게 채우고 난 뒤 7시에 퇴근하는 생활. 일에 치여 끼니 거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 달에 한 번은 일요일에도 출근한다. 하지만 오토바이 기름값, 통신비 등을 빼고 나면 올해로 업무경력 10년 차인 그가 손에 쥐는 돈은 월 180만원 내외. 미혼이라서 버틸 만하지만, 결혼해 자녀를 둔 동료들은 소주값 1만원의 여유조차 없다.

“다른 업종의 비정규직을 봐도 처지들이 비슷해요. 우리는 모두 날품팔이가 되려고 태어난 건가 싶죠. 왜 우린 정규직보다 더 ‘빡세게’ 일을 하고 정규직의 50%밖에 안 되는 임금을 받느냔 말이죠. 그렇다고 여건을 개선할 법적인 방법도 없고요.” 박씨의 깊은 한숨이 담배연기와 함께 새나왔다.


한국은 일한 만큼의 대가를 얻는 사회가 아니다. 외국도 사정이 다르진 않지만 정도가 더 심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유연성이 심화되면서 부당한 보수와 처우가 만연해졌다. 전체 가구의 약 40%를 차지하는 중산층은 고용불안정과 비정규직의 증가로 휘청이고 있고, 열심히 일을 해도 빈곤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워킹푸어)은 209만명, 경제활동인구의 10%에 달한다(보건사회연구원, 2009년). 가정경제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중 가족이 직접 일해서 번 ‘시장임금’이 무너진 탓이다. 국가가 세금을 가족에게 재분배하는 ‘사회임금’으로 상징되는 국가복지가 취약해 한국의 가정은 지난 반 세기 동안 시장임금이라는 ‘외기둥’에 크게 의존해왔다. 임금의 붕괴는 곧 빈곤으로의 추락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복지를 논의하면서 불공정한 경제구조와 양극화한 노동시장의 문제까지 짚어야 하는 것은 국가복지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갈수록 열악해지는 가족들의 삶을 개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복지로 가족을 보조하는 동시에 일단 가족들이 자신이 일한 만큼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것이 건강한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첫 걸음이다. 하지만 대기업은 높은 수익을 올려도 노동자들은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경제구조는 개선되지 않고 되레 악화되는 양상이다.

“내가 답답해서 계산기를 두들겨 봤거든요.” 지난해 3월까지 8년 가까이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 이신철씨(52·가명)는 비정규직을 고용해 대기업 현대차가 남기는 이윤에 대해 말했다. “엔진부만 봐도 메인 컨베이어벨트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는 공정에 배치되는 게 비정규직이에요. 일은 많이 하고 월급은 적게 받죠. 현대차가 비정규직을 대략 1만명 써서 인건비를 아낀다 치면 1년에 남기는 돈이 5000억원쯤 됩디다. 그게 원래는 비정규직들 월급 아닙니까.”

현대차는 생산직 5명 중 1명이 이씨와 같은 사내하청이다. 포스코도 생산직 사내하청 직원이 절반(52.26%)을 넘어섰다. 비정규직과 같은 일을 시키고도 임금은 적고 해고도 쉽고 기업복지 비용은 없어도 된다. “사실 정말 심각한 건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일하는 사람들이 입바른 소리라도 할라치면 계약해지를 해버리죠.” 이씨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경제 살린다면서 비정규직을 늘려놨잖아요. 그런데 경제위기가 지나갔는데도 왜 계속 이런 식인가요. TV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을 보면 힘 센 동물들이 염치도 체면도 없이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게 꼭 대기업이 하청 뜯어먹는 우리 공장 풍경 같더란 말입니다.”


거시 지표로만 보면 한국 경제는 풍요롭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에서 독일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고, 현대·삼성·SK·LG 등 4대 재벌은 2008~10년에 자산은 29%, 매출액은 19.8%, 순이익은 27.5%, 계열사는 15.6% 증가했다. 10대 대기업의 지난해 사내 유보금은 57조원에 달한다. 정부의 각종 세제혜택과 환율정책에 힘입어 호황을 누린 덕이다. 하지만 배부른 것은 대기업뿐이다. 전체 일자리의 90%를 제공하는 중소기업들은 말라가고 있다. 비용절감과 이익 극대화를 노리는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소위 ‘단가 후려치기’로 쥐어짠다.

“한 달에 순수익이 많으면 500만원 정도입니다. 지난 석 달은 적자였어요.” 대기업에 전자부품을 납품하는 한 하청업체 사장이 푸념했다. “직원이 12명인데 총 월급이 퇴직금 포함해서 평균 1800만원 정도밖에 안 돼요. 직원들 월급, 올려주고야 싶죠. 그런데 그럴 여력이 없어요. 우리 공장에서 쓰는 구리며 철 같은 원자재 가격이 지난해 40% 이상 올랐는데 단가 후려쳐서 수익 내는 대기업에서 이런 하청업체 사정을 봐주냐는 말입니다. 우린 납품 끊기면 회사 문 닫아야 하니까 불공정거래 횡포에도 냉가슴만 앓죠.” 지난 2008년 한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던 중소기업 사장이 업체의 횡포로 인해 부도를 맞자 이에 항의하며 매장에서 분신자살한 사건은 중소기업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대기업이 시장지배적 위치를 악용해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대가를 치르지 않는 구조는 대다수 서민들의 시장임금에 악영향을 미친다. “원청인 대기업이 몇 조원을 벌어 사상 최대 순이익을 내든 말든 우리 가족한테는 별나라처럼 먼 얘기일 뿐”(강진욱씨)인 이들이 대다수다. 전체 국민소득 중 노동자들이 시장에서 얻는 소득의 비중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세다. 2007년 61.1%였던 수치는 3년 만에 59.2%로 떨어졌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도 심각하다. 국제노동기구가 지난해 발간한 ‘글로벌 임금 보고서’에 따르면 2007~2009년 기준 한국은 선진국으로 분류된 나라 중 저임금 비율이 25.6%로 제일 높았다.
가계부채 수준이 높은 것도 따지고 보면 낮은 임금 수준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9% 늘어났고, 총액으로는 937조원에 달한다. 경제를 위협하는 ‘시한폭탄’ 수준이다. 시장임금과 사회임금 모두 부족한 가족들이 ‘빚’을 내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시장이 왜곡되는 동안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한국의 경제정책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재벌들과 관료들이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거죠. 정부의 기본 입장이 기업가편입니다. 70~80년대 경제발전에 대기업이 큰 역할을 했으니까 헤게모니가 그 쪽에 있는 거죠.” 장경섭 교수(서울대)의 지적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지난 5월 “경제 정책 일선에 있는 공무원들이 대기업에 너무 충성하는 경향이 있어서 동반성장 정책이 잘 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대중 정부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재벌개혁’을 내걸었지만 큰 성과를 보지 못했고, 노무현 정부 당시의 고환율 정책이 재벌 배불리기 효과를 낳은 것도 근본적으로는 친재벌 행정의 영향이다.

“고환율 정책으로 외채가 급증하면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한국은 아시아 신흥 개도국 중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김태동 성균관대 교수)지만 이 때에도 정부는 재벌의 편의를 봐주는 정책으로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을 모색했다.

대기업의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했고, 상호출자와 채무보증 제한 기준을 완화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2009년 귀속분부터 25%에서 22%로 낮아졌다. 2012년에는 20%까지 추가 인하된다. 그러나 정부가 주장해온 ‘트리클 다운’ 효과(정부가 투자증대로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를 자극하게 된다는 이론)는 나타나지 않았다. 거대한 재벌과 가난한 중소기업으로 시장의 양극화는 심화됐다. 중소기업이 일군 시장은 대기업이 자본력과 유통망을 내세워서 고스란히 빼앗아가는 현실이다.

재벌이 부를 독식하면서 한국의 경제는 허약해지고 있다. “중국이 제조산업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한국 경제는 재벌 의존의 경감과 나머지 경제부문의 강화가 긴급한 정책적 과제”(영국 파이낸셜타임스)라는 지적 등 한국 경제구조에 대한 경고성 기사들이 요즘 외신에서 심심찮게 나온다. 내수를 살리지 않으면 수출의존적 경제구조는 더욱 심화되고 경제는 외부 충격에 취약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복지에 재정을 쏟아붓는 것은 효과를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국가 재정 자체에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이상호 연구위원은 “노동시장에서의 소득 증대는 빈곤층 확대에 따른 미래의 복지지출을 줄이고 재정능력을 향상시키는 만큼, 공정한 노동소득은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형성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지적한다. 복지재원을 마련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세금을 꼬박꼬박 낼 수 있는 튼튼한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2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고, 4명 중 1명이 저임금을 받는 한국의 노동시장은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세금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스웨덴이 노동시장을 아우르는 복지를 지향하는 것도 ‘복지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은 좋은 일자리에서 나온다’는 인식 때문이다. 서강대 문진영 교수는 “한국은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 여기서 탈락해 빈곤층이 되는 이들에게 뒤늦게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이런 구조에서는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세금을 많이 내는 반면 복지혜택은 하층계급이 받게 되므로, 세금을 내는 주체와 받는 주체가 달라져 정치적으로 지지를 받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생활이 유지가 안 되는 임금을 받는데 그 외의 복지를 이야기하는 건 허구죠.” KT 비정규직인 박정필씨가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비정규직 임금이 업종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평균이 150만원쯤밖에 안 되잖아요. 임금은 낮고, 고용은 불안한데 복지가 다 뭡니까. 난 복지문제의 핵심은 쥐꼬리만한 임금 문제라고 봐요. 원청이 기본적으로 주는 비용이 너무 낮아요. 원청에서 하청으로 주는 임금을 높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기도의 식료품 하청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김모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지난 3월에 정부가 ‘초과이익공유제’를 내놓는 거 보고 또 생색내기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단가 후려치기’만 안 해도 하청업체들의 숨통이 트이는데, 대기업이 기왕 가져간 이익을 다시 돌려받아서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나눠주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공정한 단가와 공정한 임금’. 시장의 개혁 논의 없이는 복지도 없다는 것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하지만 이 같은 논의가 ‘선(先) 노동시장, 후(後) 복지정책’과 같은 구도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무상의료도 필요하고 안정된 일자리도 확보돼야 하지만, 어느 하나가 부족하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허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할 뿐”이라며 “복지를 주창할수록 노동시장 개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노동개혁이 절실한 만큼 복지 확충에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헌 ILO 연구조정관은 “비정규직 사용과 저임금을 통해 노동비용을 절감하는 기업들의 태도가 바람직하진 않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한 두 당사자 사이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게 옳은지는 의문”이라며 “노동시장 정책과 복지 정책을 좀더 통합적으로 운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최민영·송윤경·유정인 김지환·박은하 기자
■ 블로그 welfarekorea.khan.kr
■ 이메일 mi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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