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발 '무상복지'가 진보와 보수세력간에 뜨거운 감자인 '증세' 문제까지 무대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민주당이 최근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등 보편적 복지를 위한 '무상 시리즈'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여야의 공방전이 치열하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무상복지는 재원대책도 부족한 선거를 위한 표 장사다"라고 깍아내리고 있다.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는 시대정신이다. 무상보육 등은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때 공약한 것이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한나라당의 포퓰리즘 공세는 시대정신에 뒤쳐진다는 지적이다. 6.2 지방선거에서 보편적 복지인 무상급식은 범국민적 지지를 받은 받 있다. 또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 심화로 분배보다는 성장을 선호하던 국민 인식도 분배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무상복지, 재정마련 대책 놓고 논란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무상복지를 둘러싼 여야의 포퓰리즘 공방은 증세 문제로 까지 번지고 있다. 민주당이 약속한 보편적 무상복지가 한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재정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일부 의원들도 민주당의 무상시리즈는 "대책 없는 무상복지"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민주당은 비과세감면 축소, 부자감세 철회, 낭비예산 절감, 불필요한 토건사업의 복지예산으로의 전환으로 무상복지에 소요되는 재정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 영구적인 무상복지를 위해서는 좀더 근본적인 재정대책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증세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복지국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등은 이미 증세 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벌이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대표적이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는 "지금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주장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를 제도적으로 추진하고, 공정한 경쟁을 위한 산업정책,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을 펴려면 올해 기준으로 최소 연간 100조원 이상의 재정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상이 대표는 구체적으로 "GDP 대비 4.4%에 불과한 소득세의 비중을 OECD 국가 평균(9.4%) 수준으로 높일 경우, 2010년 GDP를 약 1100조 원으로 보면, 소득세에서만 약 55조원의 추가 세수가 발생한다"라며 "소득세에 일정세율을 누진적으로 부가하는 방식의 '사회복지 목적세'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학규, 가능한 증세없이 복지실현...정동영 "복지재원 마련위해 당당하게 세금 얘기해야"하지만, 정치권에서 증세는 금기와도 같은 말이었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정부와 한나라당은 감세가 정책기조이고, 민주당도 국가에 대한 불신이 큰 국민정서상 증세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복지정책과 관련한 재정문제에 논란이 있지만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면 된다"라며 "우리 재정 구조에서 세입세출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대책을 마련하고 저희가 제시한 복지정책을 보완해 나가면 복지정책 시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능한 한 증세없이 약속한 복지정책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지도부 일원인 정동영 최고위원이 증세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증세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17일, 18일 연 이틀동안 "세금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룰 것"을 주문했다. 지금은 "역동적 복지국가로 갈 것인가, 신자유주의 시장만능국가로 갈 것인가" 기로에 서 있는 현실이라며 "민주당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당당하게 세금을 이야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최고위원은 순자산기준 최상위계층에 사회복지를 위한 목적세인 부유세를 부과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이 증세, 부유세 부과를 주장하고 나서자 한나라당은 '세금폭탄론'을 들고 나왔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무상복지 시리즈에 대해 '세금폭탄'이라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한나라당 또 '세금폭탄론'부유세 방식, 보편적 증세 방식 모두 세금폭탄 아냐..."본질은 부자책임 회피론"홍준표 최고위원은 17일 "민주당의 무상복지 정책시리즈는 세금폭탄 시리즈고 거짓말 시리즈다. 국민을 현혹하는 이러한 무책임한 무상 복지정책은 옳지 않다"라며 "한나라당이 취해야 할 정책은 서민복지정책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선택적 복지정책이어야 한다. 그래야 부자에게 자유를 주고, 서민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주는 공정한 복지사회로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자산가에게 중과세 하는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자 보수언론과 함께 세금폭탄이라며 저항해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시킨 바 있다.
보편적 무상복지 재원확보를 위한 증세는 두 가지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정동영 의원 주장과 같이 고소득층에게 부과하는 '부유세' 방식과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주장과 같이 소득세율을 높이는 보편적 증세 방식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도 한나라당의 주장과 같이 세금폭탄이라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부유세 방식은 세금부담이 소득 최상위계층으로 한정되고, 보편적 증세 방식도 누진적 방식이기 때문에 중간계층의 세금부담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일단 전체 근로인구의 40%가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이고, 모든 과세자가 세금을 내도록 설계하더라도 중간계층부터 내게 될텐데 이들은 소액의 세금을 내고 복지혜택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실장은 또 "국민들이 재정지출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에 (증세한 부분을) 복지로 돌아오는 목적세 방식으로 하면 중간계층의 (증세) 동의도 얻을 수 있다고 본다"라며 "보편적 증세방식도 논의할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질적으로 대한민국을 괴롭혔던 세금폭탄의 실체에 대해서 국민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 복지는 분배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는 사람과 수혜를 받는 사람이 다르다"라며 "세금폭탄론은 보편적 복지의 재원을 충당해야 하는 부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서민을 앞세우는 것에 불과하다. 본질은 부자 책임 회피론"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