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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시사인: 관료통제 강해진 거꾸로 문화정책
번호 366 분류   뉴스 조회/추천 1595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0년 02월 23일 09시 47분 32초

관료 통제 강해진 거꾸로 문화 정책

문화부가 문화계 인사들을 물갈이한 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낙하산 인사’ ‘특혜 나눠주기’는 물론이고, 이제는 산하 기관장 인사와 지원금 배분에 이르기까지 문화부의 통제가 한층 강화되었다.

[126호] 2010년 02월 06일 (월) 00:03:29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해임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2월1일 다시 출근한 김정헌 위원장(왼쪽)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문에서 직원들과 얘기하고 있다.

 

2010년 2월 첫째 주, 대한민국 문화계는 두 가지 일로 시끌시끌했다. 2008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로부터 강제 해임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김정헌 위원장이 2월 첫날부터 ‘출근 투쟁’을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는 ‘전 위원장’이었지만, 지난 1월26일 법원에서 해임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이후 ‘현 위원장’이 되었다. 그 바람에 문예위는 문화부가 새로 임명한 오광수 위원장까지, 졸지에 ‘한 지붕 두 위원장’을 두게 됐다.

같은 날 오전. 문화부 산하 준공공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이 불공정했다는 의혹을 반박하려 급하게 꾸린 자리였다. 그간 ‘미디액트’와 ‘인디스페이스’로 운영되던 두 사업 공간이 정부의 입맛에 맞는 보수 단체의 손에 넘어갔다는 비판이 일던 참이었다. 의혹을 해명하겠다며 연 기자회견이었는데도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을 중간에 자르고 자리를 떴다. 심사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증거들은 기자회견 이후에도 속속 쏟아져나왔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해임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2월1일 다시 출근한 김정헌 위원장(왼쪽)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문에서 직원들과 얘기하고 있다.

두 가지 사건은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이미 예고되었다. 2008년부터 문화 관련 공공기관장들은 잇달아 자리를 잃어갔다. 김정헌 문예위 위원장, 정연주 KBS 사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문화부로부터 해임 명령을 받은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자진 사퇴하라는 회유와 협박을 받은 후 거부하면 감사원이 출동하고, 문화부는 감사원이 밝혀낸 ‘사진전을 위해 틈틈이 사진 찍으러 나가는 근무지 무단이탈죄’ 따위를 빌미로 강제 해임 절차를 밟았다. 이같이 무리한 교체 탓에, 문화부는 지금 사법부의 ‘해임 무효 판결’ 포환을 맞고 있는 것이다.

영진위를 둘러싼 갈등은 영진위가 각종 지원사업을 지정위탁제에서 공모제로 전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영진위는 “사업을 운영하는 분들에게 법률적인 지위를 드리려는 좋은 의도이다”라고 전환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사실상 2008년 영진위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촛불 집회에 참석한 독립영화 단체에 지원금을 줬다”라고 질타받은 뒤 이루어진 결정이어서, 많은 영화인이 ‘정부 코드에 맞는 단체에 사업을 몰아주려는 꼼수’라고 의심해왔다. 공모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한 2010년 2월, 그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져 드디어 터진 것이다.

불붙은 문화계, 느긋한 문화부

문화 공공기관장들을 갈아치우고 정부 지원 사업을 공모제로 돌리는 것에 대해 많은 문화계 인사들은 “낙하산 인사와 특혜 나눠주기를 위한 사전 작업이다”라고 비판해왔다. 그러면 반대편에서는 이렇게 맞받아친다. “너희도 지난 10년간 그랬잖아.” 자칫 밥그릇 다툼으로 비화될 수 있는 갈등 구도다. 사회공공연구소 박정훈 연구위원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이명박 정부의 문화시장화 비판과 진보적 문화시민권 모색> 연구보고서를 내고 이명박 정부 이후 문화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조금 다른 지점에서 비판했다.

‘관료주의 심화’가 그 첫 번째 지점이다. 예산은 지원하되 운영은 자율에 맡긴 지난 10년간 문화정책과 달리, 이번 정부 들어서는 산하 기관장의 인사나 지원금의 배분에 문화부 관료의 통제가 한층 강화됐다는 것이다. 한 예로, 공공기관장들이 교체된 후 문화부는 운영의 자율성이 보장된 예술기관 7개 기관에 수차례 ‘지침’ 형식의 공문을 보냈다. 그간 시민사회와 정부 기관이 협치를 이루는 좋은 사례로 일컬어지던 영상미디어센터·독립영화전용관·시네마테크 사업도 공모제 전환으로 선정·평가·감독의 주체가 완전히 문화부 관료에게 넘어가버렸다.

시민이 보편적으로 향유해야 할 문화적 권리, ‘문화시민권’을 대폭 축소한 것도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간 정부가 문화시민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추진해온 사업 중 대표적인 것이 영진위의 ‘영화 향유권 강화’ 사업이다. 장애인 관람 환경 개선, 찾아가는 영화관 운영과 더불어 이번에 문제가 된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지원도 그 사업의 일환이다. 이 같은 사업들의 예산이 지난해 40억5500만원에서 올해 15억6500만원으로 61.4%나 깎였다.

최근 문화부가 “재정자립도가 높아지고 운영의 자율성도 강화될 것이다”라며 강하게 추진하는 문화예술 기관들의 법인화도, 사실은 문화계 관료주의를 강화하고 문화시민권을 축소시키는 움직임이라고 박 연구위원은 말했다. 문화부는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극단을 올해 4월까지 법인화하겠다고 밝히고, 올해 관련 예산 50억원을 책정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 움직임도 급물살을 탔다.

박 연구위원은 “기부 문화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 법인화된 문화 공공기관은 재정자립도가 높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정부 지원에 더 기대게 되어 관료 통제가 한층 강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수익성 압박이 심해져 객석·대관료가 올라가고 ‘무료 어린이 음악 캠프’ 같은 문화시민권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2004년 ‘문화예술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세종문화회관이 법인화 과정을 겪고 난 후 대극장 대관료는 97만원에서 240만원으로, 특석 입장료는 1만5000원 선에서 5만원대로 훌쩍 뛰었다.

문화계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지만 정작 문화부 관료들은 아주 여유롭다. 유인촌 장관은 ‘한 지붕 두 위원장’을 겪게 된 문예위를 두고 “그렇게도 한번 해보고… 재미있지 않겠어?”라고 말했다. 신재민 문화부 차관은 영진위의 기자회견 뒤 의혹이 더 커진 영상미디어센터·독립영화전용관 사업 공모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영진위가 잘 해명했고 아직 특별한 문제점은 찾지 못했다”라고 느긋해했다. 이제 ‘낙하산 인사’ 혹은 ‘특정 단체 특혜’라는 비판만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을 따라잡기 힘들다. 2년 동안 문화계 안에서는 벌써 많은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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