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법인화 공공성 훼손”
ㆍ연극인들 문화부 방침 반발 “부실원인 배우들에 전가”
국립극단 법인화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립극단 법인화 계획’에 대해 연극인들의 반론이 쏟아졌다. 지난 19일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열린 ‘국공립 예술기관 공공성 확보 및 국립극장 발전방향 토론회’에서다. 공공서비스노조에서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연극계 원로 평론가인 이태주·유민영씨를 비롯해 이형환(중앙대 국악대 교수), 정회천(전북대 교수·전 국립창극단 단장), 김석만(한예종 교수·서울시극단 예술감독), 성기숙(한예종 교수·한국 춤평론가 협회장), 박정훈(사회공공연구소 연구원)씨 등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이 우선 강조한 것은 국립극단의 공공성 훼손에 대한 우려였다. 이태주씨(76)는 “법인화는 민영화의 전단계”라면서 “공공성 우선주의에서 경쟁, 성과, 수익을 중시하는 시장원리로 바뀌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립 예술단체의 중요성은 공공성의 가치 때문인데, (법인화된 국립극단은) 상업과 예술 사이에서 서성이면서 정체성을 잃고 말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문화부가 법인화 기대효과로 내세우는) 독자적, 자율적 극단 운영은 법인화 이전에 이미 확보했어야 할 기본사항”이라면서 “그동안 국립극단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었던 근본 이유는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관(官) 주도의 운영시스템, 미미한 지원, 정치적 배려에 의한 인사 정책이었다. 그런데도 배우들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는 방식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유민영씨(73·단국대 석좌교수)는 “국립극장은 돈을 쓰면서 좋은 작품을 국민에게 보급하는 곳”이라고 강조하면서 “(부실의 원인은) 그동안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제도적 허술함, 능력없는 예술감독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 사전·사후 조치없이 (국립극장) 전속 단체를 갑자기 법인화한다는 문화부 방침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면서 “법인화 시도에서 다분히 징벌적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단원 정년제가 대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문화 선진국들을 보라. 예술가에게 정년이 어디 있는가”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예술단체의 정년제 금지는 4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사항”이라면서 “만약 결격이 있는 단원이 있다면 엄격한 오디션으로 걸러내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기숙 교수도 “법인화 이후 공공성과 상업성이 심하게 충돌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작품의 생산·소비를 시장에 맡길 경우 작품의 질적 저하가 우려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정훈 연구원도 “과거에도 예술단체를 선별적으로 법인화한 사례가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무차별적이고 전면적인 법인화를 펼치고 있다”면서 “관료와 스타 예술감독의 독재를 심화시키고 예술노동자의 권익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형환 교수도 “(정부가 내세우는) 자율성과 책임성이라는 명분에 공감할 수 없다. 조직이 커지면서 자리만 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토론회는 법인화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 우세했다. 반면에 유민영씨는 “법인화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대폭 업그레이드하는 쪽으로 쇄신할 필요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아 다른 참석자들과 약간의 온도차를 보였다. 법인화와 관련해 국립극장 측은 ‘중장기 발전계획 및 사업계획’을 26일 발표할 예정이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입력 : 2010-01-21 17:38:49ㅣ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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