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서 논란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최대 기관 투자자다. 국내 주식 투자 규모가 34조원에 이른다. 그런 국민연금이 배당과 경영진 문책 요구, 이사 파견 등 주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나서자 국민연금을 주요 주주로 모시고 있는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국내 상장사는 140여개, 삼성전자와 LG전자, KT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언론의 반응이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일부 경제지들은 국민연금의 경영간섭을 경계하고 있다. 수익성을 높이려면 적극적인 권리행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정부의 관치를 우려하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보수진영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진보진영에서도 견해 차이가 발견된다. 수익성과 경영 간섭, 국민연금의 사회적 역할 등이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잦아지면 기업경영을 간섭하는 거대 공룡으로 변질될 수 있고 정부가 민간기업들을 사실상 지배하는 ‘연금 사회주의’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황인학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의 말을 인용해 “이미 많은 기업들이 국민연금의 눈치를 보고 있다”며 “지분율이 더 높아지면 연금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영석 서강대 교수는 서울경제에 실린 칼럼에서 “국민연금은 주주로서의 권한을 의결권 행사에만 국한하지 말고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의 관심은 수익률 확대에 있다. 박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와 주식수익률은 비례관계에 있다”면서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수익률을 높이려면 투자기업의 지배구조 수준을 투명화·선진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는 비교적 중립적이다. 이 신문은 “국민연금, 투자기업 시어머니 되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민연금은 대표적인 장기 투자자인만큼 장기간 회사와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주식시장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사회적 책임투자 등의 기준을 강화하게 되면 기업들도 결국 이 방향에 맞게 경영을 바꿔 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경향신문에 실린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칼럼은 진보진영의 복잡미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낸다. 김 교수는 최근 국민연금이 KB금융지주에 사외이사를 파견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주어진 주주권도 행사하지 못하는 국민연금 등의 기관투자가를 참여시켜 사외이사를 견제하겠다니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결국 당국의 의사를 실현할 관치의 통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주주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이른바 주주 행동주의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경향신문이 지적한 것처럼 관치의 통로가 될 우려도 있지만 오히려 사회적 책임투자의 성격을 더욱 강화할 필요도 있다. ‘거수기’에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관치를 경계하되 수익성에 매몰되기보다는 사회적 책임이 우선돼야 하겠지만 언론 보도는 대부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사회공공연구소 오건호 실장은 “주주자본주의의 수익성 극대화 논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 실장은 “관치 논란을 피하려면 투명하고 공정한 의사결정 구조를 정립하는 게 우선”이라면서 “공공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국민연금 운영위원회를 상설화하고 가입자 대표 비중을 늘리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