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처음으로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된 인천공항철도. 2007년 개통 2년 만에 빚더미로 전락한 채 철도공사에 떠넘겨 졌다. 국토해양부가 지난달 30일 공항철도의 민간 건설업체의 출자 지분 88.8%를 철도공사에 넘겨 운영토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2001년 3월에 공항철도를 민간투자사업으로 하는 협약에 도장을 찍은 장본인(당시 철도청장)이다. 사실상 철도 민영화 실패를 의미하는 ‘철도공사의 공항철도 인수’ 이전에 철저한 책임규명이 필요한 이유다.
21일 운수노조와 철도·지하철 안전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노동 네트워크가 공동주최한 ‘인천공항철도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무엇보다 공항철도 부실에 대한 진상조사가 급선무”라며 “부실 책임을 규명하고 정부가 공항철도를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민자철도 건설 정책이 실패로 드러난 만큼 민간투자 사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가재정사업의 ‘대형사고’ 된 공항철도
인천공항철도에 투입된 건설비용은 모두 합쳐 4조995억원이다. 정부가 1조885억원을 부담했고 현대건설 등 민간 건설회사가 3조110억원을 투자했다.
공항철도 민간투자는 '수익형 민자사업(BTO)방식'으로 이뤄졌다. 민간투자자들은 현재 공사 중인 2단계(김포공항~서울역) 준공을 마무리한 후, 공항철도를 정부에게 이관하고 대신 30년간 운영권을 가지는 방식이다. 민간투자자들이 자신이 투자한 약 3조원을 매년 운영수익으로 회수하는 식이다. 그런데 예상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면 결손분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최소 운영수입 보장’ 항목이 협약에 포함돼 있다. 예측수요의 90%까지 정부가 보조하도록 돼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최소 운영수입 보장 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 결과, 정부는 2007년에는 1천40억원, 지난해에는 1천666억원을 민간투자자들에게 지급했다. 이렇게 건설회사 주머니로 들어갈 세금은 2031년까지 총 13조8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설회사는 ‘무위험 고수익’ 투자를 보장받지만 정부로서는 재정운영의 ‘대형사고’다.
오건호 실장은 “결국 정부가 철도공사에 부실 공항철도를 인수하라고 결정했는데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진상규명은 없다”며 “찜찜한 과거를 빨리 덮어버리려는 것은 아닌지 의혹이 든다”고 말했다.
재정부담 덜기 위해 빚더미에 앉은 철도공사
공항철도가 ‘세금 먹는 하마’가 된 이유는 예측수요가 빗나갔기 때문이다. 2007년 공항철도를 이용한 승객수는 1만3천명이다. 민간투자자들에게 최소 운영수입 보장을 위한 협약수요(21만명)의 6.3%에 불과했다. 2008년 역시 1만7천명으로 7.3%에 머물렀다. 2031년이 된다 해도 지금 상태라면 32.7%에 머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공항철도가 부실로 판명되자 민간투자자들은 지분매각을 서둘렀다. 지난해 4월 현대건설 등 민간투자자들은 지분의 88.8%를 금융권에 매각하겠다는 내용의 ‘출자자 변경 및 자금재조달’ 승인 신청을 국토부에 냈다.
정부가 수익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앉아서 돈 버는 사업’임에도 건설회사들이 손 털고 빠지려 했던 배경에 대해 오 실장은 “공항철도 건설비용 부풀리기로 충분히 이익을 실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 30년간 천문학적인 혈세가 계속 들어갈 경우 사업 타당성과 투명성에 대한 조사 요구가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미 투자 이상의 수익을 회수한 민간투자자들로서는 귀찮은 사건에 휘말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서둘러 지분매각을 추진한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민간투자자들의 계약변경을 승인하지 않고 대신 철도공사가 지분을 인수해 운영토록 결정했다. 최소운영수입보장율을 현행 90%에서 58%로 낮춰 재정부담을 7조1천억원 절감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공항철도 인수대금은 약 3조원 가량. 지금도 연간 7천억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하는 철도공사로서는 빚더미 위에 앉아 빚더미를 끌어안는 셈이다.
“진상규명 후 정부가 인수하라”
오 실장은 “공항철도 인수를 둘러싼 손익계산을 따져 보면 민간투자자들은 이윤 회수 후 책임을 피해가고 정부는 재정부담이 줄어들어 둘다 이익”이라고 말했다. 대신 철도공사는 적자가 눈덩이로 불어나고 철도 이용자 역시 당장 요금은 줄어들 수 있지만 애초에 부담하지 않아도 될 세금을 민간자본에게 특혜로 준 꼴이 된다.
따라서 공항철도 인수 이전에 진상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항철도 건설사업의 타당성부터 빗나간 수요예측과 부풀려진 건설비용, 이 사이에 ‘대가성 뇌물’이 오고가지는 않았는지 철저한 책임규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공항철도를 인수하고, 현재 민간투자로 건설 중인 원주-강릉 노선과 전라선 일부 구간 사업 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성순 민주당 의원도 적극 동의했다. 그는 “정부가 공항철도 민간지분을 인수한 후 철도공사에 위탁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영훈 전 철도노조 위원장도 “정부가 내년까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철도를 민영화하겠다고 하면서, 적자덩어리인 공항철도를 철도공사에 떠넘기는 것은 모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철도 민영화 정책이 실패로 판정났기 때문에 철도공사가 공항철도를 인수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 전제로 최소한 철도 선진화정책은 철회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