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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시사인: '울타리 노동운동'은 지속가능한가
번호 176 분류   뉴스 조회/추천 1987  
글쓴이 사회공공연구소    
작성일 2009년 04월 10일 09시 24분 09초
‘울타리 노동운동’은 지속가능한가
노조가 민주노총을 떠난다.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는 혁신적 노선을 내세웠으나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새로운 노동운동’을 주장하는 세력의 등장으로 노동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82호] 2009년 04월 06일 (월) 13:13:52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촛불 문화재 모습.
진부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지만, ‘노동운동계에 유령이 떠돌고 있다’. 유령의 이름은 ‘새로운 노동운동’이다. 그러나 정말 ‘새로’운지 그리고 ‘노동’운동으로서 온전한 형태를 갖출 수 있을지는 아직 매우 불분명하다. 지금까지 ‘새로운 노동운동’이 보여준 ‘실력’은, 이른바 민주노동운동에 대한 원한과 반감·경멸뿐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을 전율케 하는 이 유령이, 원혼으로 남을지 아니면 시대정신으로 발전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최근 잇따르는 단위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이다. 인천지하철 노조는 3월 초에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했으나 부결되었다. 그러나 4월에 재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NCC 노조, 영진약품 노조, 승일실업 노조, 진해택시 노조, 그랜드호텔 노조 등은 이미 3월에 민주노총 탈퇴를 선언했다. 기아자동차에서는 이 회사의 노조를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역지부’로 전환하는 데 반발하는 조합원 찬반 투표가 진행 중이다. 서울메트로 노조 역시 민주노총 탈퇴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반이념·반투쟁·회사 울타리 안에서’ 공통점


‘새로운 노동운동’을 선언하는 노조에게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반이념’ ‘반투쟁’ ‘회사 울타리 안’이다. 기존의 민주노동운동이 ‘회사 내’에서 ‘사회 전체’로, 심지어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는 확대지향형이었다면, ‘새로운 노동운동’은 ‘회사 내’로 그것을 좁히는 축소지향형이다. 4월 중순 민주노총 탈퇴 투표를 실시하는 서진운수 노동조합 윤병호 위원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택시 근로자는 이념이나 투쟁보다는 돈 버는 것이 목적이다. …조합원의 복리후생을 제쳐놓고 이념적인 투쟁만 강조하는 민주노총을 탈퇴하기 위해 조합원 찬반 투표를 추진하게 됐다.”

   
<민주노총 충격 보고서> 출간 기념회에서 연설 중인 신지호 의원.
기아차 노조원 중 상당수가 금속노조 지역지부 전환에 반발하는 것도, 현대차 울산3공장 노조원들이 금속노조의 ‘공장 간 물량 전환수용 방침’에 대해 “일감을 빼앗긴다”며 반발하는 것도 같은 흐름에 속한다. 지난달 민주노총 탈퇴를 선언한 승일실업 노조의 김삼성 위원장도 “회사 울타리 안에서 해보고 싶어 탈퇴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노동운동’이 현재 노동운동 세력구도의 횡선(橫線)이라면, ‘제3노총 설립 움직임’이라는 종선(縱線)도 있다. 이 종선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서울메트로 정연수 노조위원장처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정부 교섭 틀”을 구상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뉴라이트 노동운동처럼 반민주노총 세력화 차원의 제3노총 설립운동이다. 일각에서는 뉴라이트 세력과 이명박 정부, 보수 언론이 배후라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뚜렷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반이념과 반투쟁 그리고 회사 울타리 안이라는, ‘새로운 노동운동’과 뉴라이트 세력 간의 교집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노동운동’이나 제3노총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동안 민주노총의 행태나 사회적 반감에서 그 정당성을 찾는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반감의 대상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기자가 만난 민주노동운동 관계자들은 스스로 “민주노총이 산하 노동조합들의 ‘자기 이익 지키기’를 위한 조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라고 인식했다. 현재의 노동운동은 조합원의 고용이나 임금 수준이 위협받을 때나 개입하는 ‘보험상품 노조’, 선거 때 표를 얻는 대신 조합원의 요구를 그때그때 수용하는 ‘자판기 노조’를 양산할 뿐이라는 가혹한 평가도 있었다.

그런데 이는 ‘민주’노조 체계에서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딜레마다. 예컨대, 단위 노조의 집행부는 소속 조합원들의 이익(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선출될 수 없다. 민주노총 같은 상급 조직 역시 이런 단위 노조의 지지를 받아야 생존이 가능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노총은 조합원들의 이익에 ‘올인’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군다나 민주노총의 경우 소속 조합원들의 절대다수가 대기업 정규직이다. 

문제는 이런 딜레마를, 어렵지만 극복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은 “한국 노동운동은 늙어버렸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노동운동이 현존 정규직 노조 편만 들면, 미국 자동차항공우주농업기계노동조합(UAW)처럼 자멸의 길을 면할 수 없다. UAW 소속 노조원은 1985년 80만명에서 현재는 13만명으로 축소되었는데, 이는 조합원의 정년 유지, 퇴직 이후 생활보장 등에만 주력하면서 젊은 노동자들을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민노총이 버림받은 이유와 그 딜레마


민주노총은 2006년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의 일환으로 비정규직 투쟁기금 50억원을 모으기로 했으나 20억원대에서 그쳤다. 민주노동당이 제안했던 사회연대 전략이 민주노총에서 부결된 것에 충격을 받은 활동가도 많다. 사회연대 전략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인 640만여 저소득층에게 지원하는 연금보험료 중 일부를 노총 소속 조합원들로부터 갹출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에서 이 프로젝트는 “정규직에게 소외층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행위” “임금 양보론에 불과” “노동투쟁을 회피하기 위한 기회주의” 따위 겉으로는 매우 ‘좌파적’인 논리에 따라 부결되었다. 이와 관련해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노동자 집단 내부에서 분화가 심화되면서, 민주노조운동이 전체 노동자 및 사회 구성원들에게 기여한다는 ‘자기 가치’를 찾는 데 결국 실패했다”라고 평가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반감의 대상이 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위는 4월1일 열린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
‘자본과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대항의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2006년 민주노총을 탈퇴한 코오롱 노조의 김홍열 위원장은 <한국경제> 좌담회에서 “노동운동 하는 사람이 왜 사용자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애쓰느냐는 어처구니없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관행들은 ‘노동자는 착취당하는 약자’라는 민주노동운동의 기본 사고방식과 관련성이 짙다. 예컨대 노동자는 자신이 노동하는 만큼의 대가(임금)를 자본가로부터 받지 못한다. 노동자는 그 존재 자체로 ‘착취당하는 약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이 할 일은 결국 ‘우리 조직의 몸값 올리기’로 제한되어도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가 사회적 약자인데 누구를 돕고 연대할 것인가. 또한 우리를 착취하는 기업의 생산성을 올려줘서 왜 더 착취당해야 한단 말인가.

좌파적인 노동가치론과 단위 노동조합의 보신주의가 행복하게 결합한 사례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새로운 노동운동’이나 뉴라이트 운동이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전태일은 우파다”


민주노조운동의 문제점이 명분으로는 ‘회사 밖’을 지향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는 반면, ‘새로운 노동운동’은 노골적으로 ‘회사 울타리 안’을 지향한다. 이 새로운 운동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자기 기업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밖에 없다. ‘새로운 노동운동’은 비정규직이나 다른 사업장의 노동조건, 노동자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정치 및 제도적 사안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는 순간 자신들이 그토록 반대해온 이념·투쟁적 노동운동으로 ‘전락’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는 ‘사회연대 노총’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위는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
한편 뉴라이트 신노동연합 따위 세력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에 개입해 제3노총으로 이끌고 싶어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이념이다. 한국 뉴라이트식의 시장주의 이념에서 노동조합이나 제3노총 같은 상급 단체는 허용해서는 안 되는 조직 형태다.

그 이유는 시장근본주의적 관점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독점 조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용과 임금 수준은 기업의 노동 수요와 노동 공급 간 양적 차이에 따라 외부 개입(노동조합이나 정부) 없이 자연스럽게 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계약은 노조가 아니라 ‘노동자 개인’과 기업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정당하다. 이런 과정이 외부 개입 없이 전개되면, 고용과 임금 수준이 적정한 수준에서 결정되고, 시장의 원활한 작동으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즉, 뉴라이트 논리에서는 단위 노동조합도 시장을 왜곡하는 ‘외부 개입자’에 지나지 않는다. 산별 조합이나 노총 같은 상급 단체는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고 권용목씨와 함께 <민주노총 충격보고서>를 낸 바 있는 뉴라이트 전국연합 최진학 정책실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뉴라이트의 시장주의와 노동조합운동이 공존할 수 있는가?
노동자가 판매한 노동을 자본가가 구입한다는 발상 자체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단체를 형성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우며 불가피한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그 단체의 활동을 투명하게 하는 운동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결국 ‘필요악’인가?

노동조합이 필요악이라는 표현까지 쓸 수는 없는 것 같다. 필요하다는 생각은 한다. 노동자들도 자기 생각을 실현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 이익을 실현하려면 회사가 잘 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 국가경쟁력이 올라가고, 우리 사회의 ‘파이’가 커진다. 이걸 위해 노동조합이 나서야 한다.

고 권용목씨의 마지막 작업에 참여했는데.
권용목씨는 전태일과 비슷하다. 전태일은 우파라고 본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는 노동 법률을 준수하라는 것 아닌가. 권용목은 전태일노동상 제1회 수상자이며, 새로운 노동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2005년 초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 대회에서 노사정 참여 문제를 놓고 이수호 위원장(가운데) 주변에서 몸싸움하는 노동자들.
최 실장의 발언을 음미해보면, 뉴라이트는 노동자와 자본 간에 어떤 이해 대립도 상정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노동조합의 필요성도 흔쾌히 긍정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허용될 수 있는 것은 기업별 노조지만, 그 역할은 자기 사업장의 문제를 푸는 데 국한되어야 한다. 사실 ‘뉴라이트 신노동연합’이라는 단체 이름부터 ‘뜨거운 얼음’처럼 모순적인 용어다. 뉴라이트의 시장주의 관점에서 ‘노동이 연합’하는 것은 시장을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혁신 가능한가

물론 뉴라이트 세력이 주장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노동운동(조합)의 경제성장에 대한 공헌’ ‘노동자의 숙련 향상’ 등은 민주노조운동  진영에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국내 노동운동에서는 금기지만 국제 노동·정치에서는 이미 여러 맥락에서 연구가 진행되어온 주제들이다. 그러나 뉴라이트 노동운동 세력의 목적이 단순히 ‘민주노총 파괴’가 아니라면, 자신들의 이념과 실천(노동조합 운동) 사이의 괴리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

4월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임성규 신임 집행부는 기자회견에서 “낮은 곳에 기준을 둔 사회연대에 기반한 노동운동으로, 사회연대 노총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민주노총의 혁신 다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무엇보다 소속 지부와 조합원들을 어떻게 설득해 사회연대를 이룰 것인가가 문제다. 분명한 것은 민주노총의 ‘목숨을 건 도약’이 실패하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되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에 힘입어 노동운동계의 분열과 혼란이 본격화하리라는 점이다. 내년은 노동조합운동 춘추전국시대의 원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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