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공연구소 Public Policy Institute for People
leftmenu notice
leftmenu bottom
notice
칼럼

제목 경향논단: '나쁜' 균형재정
번호 72 분류   조회/추천 593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1년 09월 26일 19시 11분 26초
[경향논단]‘나쁜’ 균형재정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균형재정을 국정의 핵심 목표로 제시했다. 가계와는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정부 재정 역시 적자구조는 바람직하지 않기에 ‘균형재정’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균형재정이라도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라면, 이는 ‘나쁜’ 균형재정이다. 재정이 수행할 원래 목적은 사라지고, 부자감세라는 정책 과오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경축사에서 등장한 균형재정이 그렇다.

균형재정은 세입과 세출의 크기를 동등하게 맞추는 일이다. 만약 균형이 깨졌다면, 두 항목 중 어디가 문제인지를 진단해야 한다. 대통령은 세출이 문제란다. 과연 우리나라 재정에서 세출이 그렇게 문제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올해 우리나라 정부총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31.2%로 OECD 평균 43.7%에 비해 무려 12.5%포인트가 모자란다. 금액으로 약 150조원인데, 이 중 120조원 이상이 복지분야 부족분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재정지출을 더욱 통제하겠다고 선언하고 복지 요구에 복지포퓰리즘 딱지를 붙이는 건 국정 최고책임자의 언사로서 적절치 못하다. 재정지출을 개혁하려면 만성화된 거품이 있는 토목 분야를 대상으로 삼아야 함에도, 그토록 균형재정을 강조하면서 4대강 사업은 강행하니 앞뒤가 더욱 맞지 않는다.

세입은 어떤가? 올해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합친 정부세입이 GDP의 25.2%로 OECD 평균에 비해 약 10%포인트 적다. 누진구조를 지닌 소득세목에서만 GDP의 5% 이상, 무려 65조원을 덜 걷고 있다. 이렇게 세입이 적다보니 재정지출이 빈약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균형재정을 추구해야 할까? 적은 세입을 방치한 채 복지 지출을 통제하는 균형재정인가. 아니면 세입을 늘려 보편 복지에 부응하는 균형재정인가. 대통령은 전자를 강요한다. 부자감세로 빈약한 재정을 더욱 악화시키고도 염치를 모르는 ‘나쁜’ 균형재정이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애초 계획을 1년 앞당겨 2013년에 재정균형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청사진은 예산안의 형태로 2012년 가을 국회에 제출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 한복판 때다. 보편 복지를 주장하는 후보에 대항하는 공세적인 카드로 균형재정론을 사용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일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조세 불신을 활용해 세금폭탄을 투하하고, 다른 나라들이 겪고 있는 재정위기를 복지 탓으로 몰아간다면 승산이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나라가 제 역할을 다하려면 재정이 재정다워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자신의 역할을 잃지 않는 ‘좋은’ 균형재정이다. 결국 관건은 세출이 아니라 세입에 있다. 나쁜 균형재정은 향후 복지 지출을 문제삼지만, 좋은 균형재정에는 재정 확충이 승부수다.

그렇다면 조세 저항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세입을 늘려야 할까? 이것이 보편복지를 원하는, 그만큼 좋은 균형재정을 지지하는 사람들 앞에 놓여진 과제이다. 올해 초부터 보편복지 세력을 중심으로 복지재정 방안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 얼마가 마련돼야 하는지 좀처럼 논의가 모아지지 않는다. 급식, 보육, 의료, 등록금, 일자리 등 보편복지 요구는 계속 확장되고, 그에 필요한 재정 규모는 이미 재정지출 내부개혁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수준을 넘고 있는데도, 재정방안은 당위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민주당은 내부 작업팀이 방안을 낼 것이라며 반년이 넘도록 침묵하고, 진보정당은 부자가 책임지라면서도 이를 위한 활동은 보여주지 못한다. ‘우린 증세하지 않는다’는 민주당이나 ‘부자들이 내라’는 진보정당 모두 보수세력이 던진 세금폭탄론 안에서 맴돌고 있다.

세입이 승부수라면, 이제 시민들과 직접 증세전략을 논의해야 한다. 실질적인 재정방안이 구체화되지 못하면, 보편복지 요구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보편복지 세력의 분발이 필요하다. ‘나쁜’ 균형재정은 2013년 청사진을 들고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오건호|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입력 : 2011-08-23 21:17:49수정 : 2011-08-23 21:17:50

  
쓰기 목록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