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공연구소 Public Policy Institute for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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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경향: 돈벌이 인재만 인정하는 '인적자본론'
번호 63 분류   조회/추천 860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1년 05월 16일 16시 42분 56초
[경제와 세상]돈벌이 인재만 인정하려는 ‘인적자본론’

어느 일류 대학이 있다. 영재만을 뽑았다. 모든 과목을 영어로만 강의한다. 전액 장학금을 준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있다. 성적이 우수해야 한다. 성적이 일정 수준 아래면 장학금을 뱉어내야 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공부를 잘하면 돈도 번다는 것. 반대로 공부를 못하면 ‘벌금’을 낸다. 문제는 누군가 늘 하위 그룹에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적 때문에 고민하던 대학생이 자살을 했다. 벌써 4번째다.

‘행복보다 성적’만 외치는 교육
경영이나 경제 분야에서 상식처럼 통용되는 것에 ‘인적자본 이론’이란 게 있다. 교육을 많이 받아 지식이나 기술이 높은 사람이 보상도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다. 현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점에서는 상당 정도 맞다. 그러나 그런 것이 얼마나 바람직하냐 하는 점에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우선은 우수한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줄거나 경쟁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그 혜택을 받는 이들은 상위 20%도 안 된다. 나머지 80%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와 연결된 다른 문제는 그런 식으로 소수만 혜택을 받는 사다리꼴 경쟁 사회가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 속에 양극화를 낳는 점이다. 이것이 진짜 나쁜 까닭은 이른바 ‘중산층의 몰락’이라기보다 상층부는 상층대로 기득권을 누리면서 중독되고, 하층은 하층대로 기득권에 한이 맺혀 중독된다는 점이다. 상하층 모두 중독 경향인 점에서 병적이다. 결국 이것이 전 사회를 점점 비정상으로 몰고 간다. 마침내 비정상이 정상처럼 보이고 정상이 비정상처럼 보이는 기괴한 일이 벌어진다. 치명적 질병이 오거나 죽음이 기다린다.

앞의 대학생 자살도 비정상이 정상 행세를 하는 병적 상황의 결과다. 부도 직전의 건설 사업들도, 핵발전소 문제도, 한번도 모자라 또 시도하려는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비친 결과다. 그 끝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다.

캐나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부모·교사 면담이 있었다. 부모의 편의에 따라 이른 오후든, 저녁이든 선택해 미리 알려준다. 학교 현관엔 고학년 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와 학부모들을 맞이한다. 알파벳순으로 학생 이름을 찾아 면담표를 준다. 자녀 이름 아래 면담 교사들 이름과 장소만 적혀있다. 면담장소에 가니 10명 내외의 교사가 큰 방에 앉아 학부모를 기다린다. 교사 이름을 물어 그 앞에 찾아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부모와 교사도 인격적으로 만난다. 아이 때문에 인위적인 웃음을 짓는 일은 없다. 대화는 자연스레 아이 문제로 이어진다. 아이가 수업 시간에 어떻게 하는지, 시험 등 결과는 어떤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자상하게 설명한다. 특이한 점은 아이의 생활과정이나 수행평가를 부모에게만 말하되, 결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거나 석차를 매기지 않는다. 오로지 아이가 해당 과목에 얼마나 흥미를 느끼는지, 노력의 결과 변화가 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따위를 체크할 뿐이다. 이 교육적 면담에서 대화의 핵심은 아이의 성적이 아니라 아이의 행복이다. 이것이 정상이다. 이것이 사람 사는 사회다.

사다리꼴 경쟁이 자살 불러와
인적자본을 양성하여 돈벌이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는 게 핵심이 아니다. 아이가 행복하게 생활하고 학습의 즐거움을 알아가게 돕는 것, 그것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인간적 능력이 향상되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이 원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한, 앞 대학생의 죽음, 나아가 수시로 반복되는 초·중·고생의 성적 비관 자살 행렬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부모부터 중심을 잡고 아이가 진짜 행복한지 관심을 기울이자. 또, 지자체 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아이를 인적자본이 아니라 인간행복의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도와줄 사람을 뽑아야 한다. 형식적 학교운영위원회를 넘어 교육 전반에 풀뿌리 민주주의가 필요한 까닭이다. 더 이상 아이들을 죽이지 않으려면.

<강수돌 고려대 교수·사회공공연구소장>


입력 : 2011-04-21 19:07:26수정 : 2011-04-21 1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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