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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경향: 당신의 미소를 보여 주세요!
번호 49 분류   조회/추천 1025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0년 10월 18일 23시 54분 46초
[경제와 세상]“당신의 미소를 보여 주세요!”

“이제 당신이 가진 최고의 미소를 보여 주세요. 당신의 미소가 대한민국의 표상이 됩니다.” ‘G20 준비위원회’가 오는 11월에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홍보를 위해 지하철역 등 공공장소에 붙인 벽보 내용이다. 피겨의 국가 대표 김연아와 축구의 국가 대표 박지성이 홍보대사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들처럼 우리 국민도 “최고의 미소”를 보여 주어야 국가 이미지가 좋아진다는 취지다. 좋은 이야기다.

G20 정상회의 손님들과 거리감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느낌이 묘하다. 원래 미소란 사람의 자연스러운 느낌이 우러나 표현되는 것이지 생각해서 보여주는 게 아니다. 예컨대, 해맑은 얼굴의 꼬마들이 부모와 함께 공원에서 뛰놀 때, 사랑하는 남녀가 마주보며 행복해할 때, 농민이나 노동자가 땀과 눈물의 결실을 얻어 만족스러워할 때, 노인이 손녀의 재롱을 볼 때처럼 내면의 행복한 느낌이 미소로 우러난다. 그런데 ‘위대한’ 20개국 최고 지도자들이 온다고 모든 국민은 으레 미소를 띠어야 한다? 사실, 손님을 환대하는 건 사람이 가진 최고 미덕 중 하나인지 모른다. 이반 일리치 선생도 평소에 우정과 환대만이 인간사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말이라 강조했다.

그러나 요즘 전국 곳곳의 홍보 포스터를 보노라면 이상하게도 그런 우정과 환대의 자세로 손님을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거리감이나 어색함은 어디서 오나? 곰곰 생각건대, 우선은 G20 정상회의에 초대되는 사람들과 일반 국민 사이엔 ‘천지 차이’가 있다. 손님들은 20대 강국의 정치·경제계 최고위급 인사들이다. 일반 민초들이 말을 걸 수도 없다. 게다가 보통 우리가 손님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미소를 짓는 경우는 자신이 주체로 초대했을 때다.

그러나 G20의 손님들은 ‘높은 분들’이 초대했고, 일반 국민은 ‘나라에서 큰 행사를 한다 하니 하는가 보다’라고 하는 정도다. 대개 우리가 누군가를 초대하면 친목 도모든 보은 차원이든 일정한 마음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런 큰 행사를 맞아 정작 미소를 지어야 할 민초들 자신은 무얼 하는 행사인지도 잘 모른다. 안타깝게도 제법 돈을 들여 만든 저 벽보조차 주목을 받지 못한다. 사람들이 포스터를 보고 비로소 미소를 지을 것이라 기대해 만든 것 같지도 않다. 특히, 민초들의 삶의 현실은 가정·학교·직장을 가리지 않고 온통 스트레스다. 강대국들이 강요하고 지배층이 강제한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의 결과다. 그 속에서 환한 미소가 갑자기 나올까?

그렇다. 진짜 큰 손님들이 와서 세계경제의 미래를 논하고 지속가능한 균형 성장과 금융개혁을 말한다면 그 의제에 대해 웬만한 국민들도 잘 알아야 한다. G20 준비위원회 홈페이지엔 “과거 세 차례 정상회의가 ‘경제위기 탈출’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서울 G20 정상회의는 미래를 위한 방향이 제시되는 자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각급 학교들에서 세계의 미래를 위한 구체적 의제들이 자유로이 토론돼야 한다. 일반 민초들도 각종 모임이나 단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그런 사안들을 편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결과 민주적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그런 여론들이 자연스레 국론으로 수렴되어 정상회의에 반영돼야 한다. 바로 이런 민주적 과정들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우리 국민들은 박지성이나 김연아처럼 환한 얼굴로 손님들을 환대할 수 있다.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국민적 공감 없는 감정노동 부담

그런데도 여느 회의와 마찬가지로 이번 회의도 민주적 여론 형성이 생략된 채 국민들은 단지 외국의 큰 손님을 맞이하는 데 “당신이 가진 최고의 미소”를 선물해야 할 역사적 사명만 띤다. 마치 백화점 직원이나 종합병원 간호사들이 고객 만족을 위해 “최고의 미소”로 감정 노동을 수행하는 것처럼, 이제는 국민 모두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브랜드 가치와 국격을 높이기 위해 집단적 감정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삶의 스트레스에 충만한 국민들이 대다수인데 과연 누가 그러한 감정 노동을 충실히 제공할 것이며, 그 결실은 과연 누가 거두게 될 것인가?

<강수돌 | 고려대 교수·사회공공연구소장 ksd@korea.ac.kr>


입력 : 2010-10-14 21:23:41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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