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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매노:예술가의 정리해고, 시민의 문화양극화
번호 40 분류   조회/추천 5807  
글쓴이 연구소    
작성일 2010년 03월 25일 10시 41분 29초
[오피니언-그루터기] 예술노동자는 정리해고, 시민에게는 문화양극화
 
국립극단 법인화 배경과 전망
 

박정훈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여러분들 가운데 자신의 해고사실을 어느 일간신문의 기사 속에서 발견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해고사실을 통보하는 기업의 반인간적 행위가 노동자들의 공분을 산다는 소식은 들어 봤지만, 신문기사를 통해 해고사실을 알렸다는 소식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그런 일이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예술기관인 국립극단 예술단원들에게 벌어졌다.

언론보도 통해 해고 통보

지난 1월14일 조선일보는 “국립극단, 죽느냐 사느냐 고뇌는 끝났다”는 제목 아래 국립극단 예술단원들이 모조리 ‘죽게 될 것’임을 알리는 기사를 실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국립중앙극장 전속단체에서 재단법인으로 바뀌는 국립극단의 예술단원(총 24명)들을 전원 해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국립극단 창립 60주년을 맞아 기념공연 준비에 한창이던 예술단원들은 아연실색했다.

집권 초부터 이명박 정부가 국립중앙극장(공연장)과 국립중앙극장 전속4단체(국립극단·국립국악관현악단·국립무용단·국립창극단)를 법인화한다는 소문은 무성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법인화 결정의 정책적 근거도, 법인화의 구체적인 방안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극단 법인화가 관료가 주도하는 밀실에서 추진되고 있고, 예술단원들을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민주적인 토론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립극단의 법인화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국립중앙극장 측은 이달 31일부로 예술단원의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통보했다. 문화부는 국립극단 예술단원들과 서너 차례 면담을 갖고, 출범할 재단법인 국립극단의 신입단원을 선발하는 오디션에 응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예술성 위기와 국가부담 부르는 법인화

그렇다면, 문화부가 법인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식적인 이유는 ‘국립극단의 예술성 향상’이라고 한다. 문화부 소속기관에서 민간기관으로 전환돼 개인과 법인의 기부를 활성화하면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물론 정부 재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재원도 다양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화부의 이 같은 목표는 달성되기 힘들다. 지금까지의 국립예술기관 법인화 사례를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법인화하겠다는 것은 국립예술기관을 민간기업처럼 수익성을 우선시하며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수익을 위해 공공예술기관이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공연에 몰두하게 된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재정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지 않고,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2000년 법인화된 국립발레단과 국립합창단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 준다. 법인화 이전인 99년부터 2008년 사이에 국고지원금이 약 2~5배까지 급증했다. 정부 재정 의존율도 여전히 61~74%에 이른다. 법인화 이후 정부의 재정지원이 대폭 늘어났음에도 여전히 정부의 재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구조다. 이에 따라 재단법인의 당연직이사로 참여하는 문화부 관료의 발언권은 강력하다. 각 단체의 경영자인 예술감독 인사에 대한 문화부의 입김도 막강하다.

법인화가 이뤄졌는데도 정부 재정에 대한 의존율이 높은 이유는 문화예술 분야가 척박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악화되는 예술향유 양극화 현상은 예술관객층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관객층을 창출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시간적인 여유도 경제적인 여유도 없는 시민들에게 예술은 여전히 특정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다수의 시민들을 예술향유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물론 예술에 대한 후원문화의 정착도 가로막고 있다.

문화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4월 문화부가 작성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 법인화 검토회의 자료’에는 법인화가 ‘예술성 위기’를 야기하고, 국가의 경제적 부담만을 가중시켜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 노동시장 유연화의 전주곡

문화는 국립극단 법인화를 계기로 예술단원들의 권익을 대폭 후퇴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미 예술단원에 대한 정리해고로 시작된 법인화는 노동유연성과 노동통제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부는 노동유연성을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도입할 계획이다. 조기정년제를 도입해 일반단원은 만 50세, 직책단원은 만 55세에 은퇴시키려고 한다. 일반 공무원의 정년과 비교해 형평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은퇴 후 소득보전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는 이 결정은 예술단원의 노동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또한 단원 직제 차등화 제도를 도입해 평가결과에 따라 하위 직제로 강등시키는 무한경쟁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로써 예술단원들은 '연수단원(1년 계약)↔준단원(2년 계약)↔정단원(정년까지 계약)'으로 수시로 옮겨 다녀야 한다. 고용안정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준단원과 연수단원의 수를 크게 확대시켜 2년 미만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부는 예술단원의 노동통제 강화조치를 도입할 예정이다. 현행 호봉제를 성과급이 반영되는 연봉제로 대체해 단원 개인들과 단체 간 경쟁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현행 상시평가제도에 오디션제도(일시평가제)를 결합해 평가제도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평가결과를 성과급·계약기간과 연계시켜 단원 간 실적경쟁을 더욱 강화시키는 시스템도 도입할 것이다. 단원 평가제도를 통해 보수·고용을 조정하고 단원의 노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예술감독의 권한을 대폭 신장시키고, 사실상 평가제도를 주도할 계획이다.

미래의 단원들은 더욱 나빠진 노동환경에 처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전속단원제(고용안정제도)가 완전히 폐지돼 아예 작품별로 월단위의 초단기 고용계약을 맺으려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전속단원제가 완전히 폐지된 재단법인 국립현대무용단이 올해 출범할 예정이다.

법인화는 국립극단 기관운영의 부분적 민주화 성과마저도 무위로 돌리게 된다. 지난해부터 문화부는 국립극단이 속해 있는 국립극장과 함께 현행 단체협약의 개악을 추진했다. 올 들어서는 단체협약이 인정하고 있는 노사협의기구인 공연문화발전위원회조차 부정하고 있다. 비록 예술감독에게 최종결정권이 있지만 예술단원과 예술감독이 함께 단체운영을 논의해 오던 민주적 전통은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국립극단 법인화가 국립예술기관의 예술노동자들에게만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 국립예술기관이 수익창출에 몰두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도 전가된다. 입장료가 대폭 오르고 시민을 위한 공연활동도 줄어들며,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신장시키는 활동도 급격히 축소된다.

가령 국립극단 예술가들이 그동안 아홉 차례에 걸쳐 총 300여명의 청소년에게 직접 연극을 가르쳐 온 동해청소년연극캠프사업은 축소 또는 폐지될 것이다.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방의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양극화 현상은 심각하다. 2008년 기준으로 월평균 가구소득이 400만원 이상의 가구원이 1년에 한 번 이상 예술행사를 관람하는 비율은 80.6%에 달한다. 반면 월소득이 100만~199만원인 경우엔 48.3%로 줄어들고, 100만원 미만의 경우엔 19.3%로 추락한다. 계층에 따른 예술행사관람률의 격차가 현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예술기관이 수익창출에 몰두한 나머지 문화양극화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지 않으면, 문화소외계층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고 예술은 특정한 계층과 집단의 배타적 전유물로 전락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법인화를 국립극단뿐만 아니라 국립국악관현악단·국립무용단·국립창극단은 물론 국립중앙극장(공연장) 자체는 물론이고 국립현대미술관까지 확산하려고 하고 있다.
 
박정훈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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